‘시대’ 잃은 통합당, 리더십 의문 확산
  •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7 10: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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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失政에만 기대기엔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

미래통합당은 시대를 잃었다. 시대는 민심 또는 여론을 담는 그릇이다. 정당에 시대는 삶의 터전이자 존재 이유다. 통합당은 시대를 잃게 되면서 존립 근거도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통합당은 지난 4월15일 21대 총선 패배 이후 주호영 원내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를 출범했다. 그로부터 꼬박 두 달이 지났다. 7월 임시국회가 끝난 후 주 원내대표-김 비대위원장 체제가 받은 성적표는 ‘무기력’과 ‘속수무책’이다.

이미 4년 전인 20대 총선은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이 시대와 멀어지기 시작한 신호탄이 됐다. 당시 총선 결과는 예상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의 승리, 국민의당의 돌풍, 새누리당의 패배였다. 20대 총선 직후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2016년 4월19~21일 1004명 대상, 자세한 개요는 한국갤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5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40%에 그쳤다. 반면에 국민의당 30%, 민주당 15%를 나타냈다. 양당의 합은 새누리당보다 많았다.

2016년 총선에서 이미 50대는 보수를 벗어난 것이다. 그들은 민주당 또는 제3당을 선택했다. 새누리당 패배는 50대 이탈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50대가 보수정당을 선택하는 시대가 저문 것이다. 그동안 50대는 대개 보수정당에 투표해 왔다. 5060으로 묶여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기도 했다. 통합당은 이미 4년 전에 50대를 잃은 것이다. 통합당은 올해 총선에서도 50대의 지지, 즉 숨은 표를 기대하며 선전을 자신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7월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안건 상정을 반대하며 퇴장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7월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안건 상정을 반대하며 퇴장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촛불정국→정치 참여 확대→2040 투표율 상승

2016년 촛불·탄핵정국을 거치며 국민 정치의식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그중에서도 젊은 층 투표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촛불을 사이에 두고 2017년 대선에서는 1.4%포인트,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4%포인트, 2020년 총선에선 8.2%포인트 올랐다. 50대 이상에선 비슷하거나 소폭 하락했지만, 40대 이하에선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았던 20대 후반, 30대 초반에선 두 자릿수 내외의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총선 연령별 투표율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40대 이하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았을 가능성이 크다.

촛불·탄핵정국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촉발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하자 국민은 광장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머뭇거리는 정치권을 끌고 스스로 민주주의 복원에 나섰다. 선거 때마다 투표 참여가 늘어났다. 대통령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국회의원 등 모든 기득권이 국민에 의해 강제로 교체됐다.

기득권 교체는 근본적인 정치사회 변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마침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구시대 인물과 시장 만능 정책들의 퇴장, 권력 독점의 해체, 탈권위주의와 수평적 리더십, 사회안전망 강화와 복지제도 확충, 온라인 사회의 주류 진입, 대중 대신 개인의 등장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은 형성되고 유통됐다. 통합당은 여전히 교체 대상 기득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람은 대체로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동년배 집단(cohort group)을 이루며 성장한다. 동년배 집단은 특정 역사적 환경을 거치며 경험을 공유하고 확산한다. ‘386세대’는 20년이 지나 ‘586세대’가 되었지만 진보 성향을 유지한다. 렉서스나 볼보를 타고 투표장으로 나가 진보정당에 투표하기도 한다.

대다수 사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는 그만큼 빨리 변한다. 6·25 전쟁과 지독한 가난, 그리고 산업화 신화를 직접 경험한 연령은 75세 이상이다. 60대도 부모 세대와 각종 재교육 기관, 대중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뿐이다. 그만큼 ‘묻지마 보수’ 성향으로 분류할 수 없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60대 민주당 지지율은 어느 때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다.

2016년 이래로 올해 총선까지 통합당은 60대 이상에서만 우위를 지켰다. 최근 5년간 진행된 네 차례 선거에서 같은 패턴이 되풀이됐다. 선거 패배 이후 지도부 사퇴와 비대위 설치, 백서 발행과 숱한 반성문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통합당을 채우고 있는 인물과 정책, 이념좌표, 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이미지는 60대 이상에서만 통한다. 산업화 신화가 지배하는 시대에나 통할 법한 근대적 리더십이 계속되고 있다.

 

60대에 의존하는 근대적 리더십에 ‘한계’

주호영 원내대표,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는 많은 기대를 안고 출범했다. 역대급 총선 패배 이후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보수 재건의 마지막 희망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새 국회 임기 한 달간을 파행으로 몰아가며 강경하게 버텼지만 상임위원장 18개가 모두 민주당 몫으로 돌아갔다. 부동산 관련법과 공수처 후속법 처리에서도 제1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7월 임시국회 막판 “저는 진짜 임차인”이란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늘어나고 있다. 그는 당을 쇄신하고 대선주자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기본소득, 전일제 보육을 거론할 때만 해도 모두들 전략적 고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치고 빠지기처럼 보였다. 당내 대선주자들을 끊임없이 평가절하면서도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9월엔 정기국회가 열린다. 12월까지 국회의 시간이다. 연말연초는 어수선하다. 김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4월이지만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잃어버린 시대를 찾는 것이 통합당의 당면 과제다. 우선 통합당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필요하다. 다음은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원내외 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주 원내대표-김 비대위원장 체제는 성공했다는 평가받을 수 있다. 지금 통합당 수준에서 아무리 좋은 대선주자를 찾는다 해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 여권의 실정(失政)에만 기대기에는 시대는 너무 멀찍이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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