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이는 홍콩 언론…홍콩보안법 통과로 예고된 ‘충격’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4 16: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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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중 첫 번째 인물, 지미 라이 빈과일보 사주 결국 체포

8월10일 오전, 200여 명의 홍콩 경찰이 홍콩의 청콴오(將軍澳)에 있는 빈과일보 사옥을 급습했다. 홍콩 경찰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청킴훙(張劍虹) 사장, 차우탓쿤 전무 등 임원 4명을 끌고 갔다. 같은 시간 빈과일보의 사주인 지미 라이(黎智英)와 아들들은 각각 자택에서 체포됐다. 홍콩 경찰이 그들을 체포한 혐의는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7월1일부터 시행된 ‘홍콩보안법’이 그것이다. 홍콩보안법은 외국 세력과 결탁한 국가의 분열, 정부의 전복, 테러리즘 행위 등을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실제 지미 라이는 외국 세력과의 결탁, 선동적인 언행, 사기 공모 등의 혐의를 받았다. 청 사장은 외세와 결탁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린 혐의로, 차우 전무는 사기 공모 혐의를 각각 적용받았다. 지미 라이의 아들들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다. 이에 홍콩의 야당은 일제히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홍콩 언론계를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라며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고 성토했다. 공민당도 “경찰이 백색 공포를 조장해 언론의 자유를 억누르고 시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8월10일 ‘반중’ 성향의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가 홍콩 경찰에 의해 전격 체포되고 있다. 이틀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홍콩 언론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AP 연합
8월10일 ‘반중’ 성향의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가 홍콩 경찰에 의해 전격 체포되고 있다. 이틀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홍콩 언론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AP 연합

톈안먼 사건으로 인생 경로 바꿔 언론에 투신 

홍콩 야당에서 이런 우려가 나온 것은 지미 라이와 빈과일보가 홍콩 언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지미 라이는 본래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1948년에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태어나, 12세에 낚싯배를 타고 홍콩으로 밀입국했다. 10대부터 불법 노동자, 사무보조원, 영업사원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일했다. 그 와중에도 주경야독으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1981년에 프랜차이즈 의류전문점 ‘지오다노(Giordano)’를 창업했다. 지오다노는 단시일 내에 홍콩의 저가 캐주얼 의류시장을 장악했다.

지미 라이는 그 여세를 몰아 중국에 진출했다. 지오다노는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중국 시장에 안착했다. 하지만 1989년 지미 라이의 인생 경로를 바꾼 사건이 터졌다. 중국 정부가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을 탱크로 진압해 버린 것이다. 톈안먼 사건을 목도한 지미 라이는 지오다노를 통해 홍콩의 시민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지오다노의 중국 사업이 위기를 맞게 되자, 회사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그 뒤 1990년 창업한 기업이 미디어 업체인 ‘넥스트디지털(壹傳媒)’이다.

지미 라이가 언론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했다. 톈안먼 사건을 통해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가 중요하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미 라이는 우선 시사주간지인 ‘넥스트매거진(壹週刊)’을 창간해 경험을 쌓았다. 1995년에는 종합일간지인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빈과일보는 화려한 컬러 인쇄를 앞세우고, 중국 정부의 비리와 문제점을 폭로해 단시일 내에 큰 인기를 끌었다. 하루 최대 발행부수가 창간 첫해 70만 부에 달했다. 대만에도 진출해 2001년엔 시사주간지를, 2003년엔 일간지를 각각 창간했다. 2010년에는 케이블방송인 넥스트TV까지 개국했다.

이렇듯 홍콩과 대만에 미디어제국을 건설한 덕분에, 지미 라이는 중화권에서 손꼽히는 언론재벌이 됐다. 현재 그의 자산은 1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다만 홍콩인인 지미 라이가 대만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데 반감을 느낀 대만 언론계는 2012년에 ‘반넥스트디지털운동’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대만에서의 영역 확장은 중단된 상태다. 2014년에는 또 다른 일이 지미 라이를 곤경에 빠뜨렸다. 당시 일어났던 우산혁명에 빈과일보 사장인 지미 라이가 직접 뛰어들었던 것이다. 지미 라이는 우산혁명을 이끈 시민단체의 간부로 적극 참여했다.

 

홍콩, ‘차이나 워치’ 위상도 약해질 듯   

따라서 홍콩 경찰은 그를 공공질서를 혼란시킨 혐의로 기소했다. 이로 인해 그해 12월 빈과일보 사장과 넥스트디지털 회장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런 곤욕을 겪었으나 지미 라이의 투쟁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홍콩에서 장기간 송환법 반대시위가 일어나자 시위대열에 적극 참여했다. 빈과일보도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그로 인해 중국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빈과일보의 지면에서는 광고가 사라졌다. 기업들이 광고 게재를 꺼렸기 때문이다. 2019~20년 회계연도에 빈과일보는 4억1530만 홍콩달러의 손실을 냈다.

지미 라이에 대한 중국의 적개심은 상당하다. 지난해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해외판이 지미 라이를 ‘홍콩에 재앙을 주는 4인방’ 중 우두머리로 규정했을 정도다. 따라서 홍콩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홍콩에서는 그의 체포를 어느 정도 예견했었다. 체포될 가능성이 큰 민주파 인사 54명의 명단을 담은 블랙리스트가 떠돌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지미 라이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전격적인 체포는 의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언론의 자유는 홍콩의 장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콩에는 친중·중립·반중 언론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 12일 새벽 지미 라이는 보석금과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석방되긴 했지만, 자산이 동결되고 여권을 빼앗긴 상태여서 사실상 구속만 안 됐을 뿐 모든 활동이 금지된 상태에 놓여 있다. 

언론 자유의 환경 아래 서구 언론은 아시아본부를 홍콩에 두어왔다. 게다가 홍콩은 ‘차이나 워치’라는 독특한 지위를 오랫동안 누려왔다. 중국 지도부의 권력다툼, 중국공산당의 흑막, 중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 등을 홍콩 언론이 독점으로 보도해 왔던 것이다. 이는 중국 내 광범위하고 촘촘한 네트워크를 가진 홍콩 언론이 쉴 새 없이 특종을 쏟아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는 중국인 특유의 관시(關係)문화가 작용한다. 서구 언론은 중국인과 끈끈한 관시를 맺기 힘들다. 또한 지도부나 공산당 내 파벌 싸움 아래 중국 고위 관료가 은밀한 정보를 홍콩 언론에 흘려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홍콩보안법으로 인해 차이나 워치의 위상을 유지하기 힘들 전망이다. 홍콩보안법의 처벌 대상과 범위가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가능하고, 소급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미 라이의 체포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콩 언론인들은 홍콩보안법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외국 언론인들은 이미 행동의 제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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