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연령 조정이 불러올 ‘대한민국 새판 짜기’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8 16: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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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연금·복지’…‘세대 합의’ 통한 新사회계약 절실

정부가 최근 제시한 인구 대책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현재 65세로 돼 있는 노인 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안이다. 얼핏 보면 노인 연령 기준 변경은 지하철 무임승차 같은 경로우대 기준을 바꾸는 단순한 문제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향후 한국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오히려 지금껏 우리가 해 왔던 사회계약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회계약을 총체적으로 다시 하는 일에 가깝다. 

노인 연령 기준이 상향되면 법정 정년 연장이나 연금 수령 시작 연령도 재조정돼야 한다. 일자리와 연금 문제를 조정하는 문제에는 세대 간 입장 차, 복지와 세금, 빈곤, 기업 부담 등과 같은 갈등 요인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휘발성이 엄청난 고난도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령자 기준을 높이면 정년 기준 상향도 뒤따르게 된다. 정년을 5년 더 늘리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면 ‘노년부양비’ 증가 속도는 9년 늦춰진다. 노년부양비란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노인의 비율로, 한 사회의 고령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정년 5년 연장, 노인 부양 부담 9년 늦춰

올해 노년부양비는 21.7명이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65세 이상 노인 21.7명을 부양하고 있다는 의미다. 노년부양비는 2030년 38.2명, 2040년 60.1명, 2050년 77.6명, 2060년 91.4명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2067년이 되면 102.4명까지 늘어난다. 일하는 인구보다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년이 연장되면 노인 부양 부담 증가 속도는 크게 줄어든다. 정년이 65세가 되면 올해 기준 노년부양비 21.7세에 다다르는 시점은 2029년(21.8명)으로 늦춰진다. 당장 정년을 연장하면 고령인구 부양 부담이 9년 늦게 온다는 뜻이다. 정년 연장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2040년 정년 60세 기준 노년부양비는 60.1명인데 65세 정년 시나리오에선 같은 수준이 되려면 2057년(60.5명)이 돼야 한다. 17년이란 시차가 생기는 셈이다. 노년부양비가 100명을 돌파하는 2065년(100.4명)에도 65세 시나리오에선 68.7명에 그친다. 

하지만 노인 연령 기준 조정은 쉽지 않다. 노인 복지 축소라는 강력한 반론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엔 노후를 제대로 준비한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의 노인빈곤율은 약 47%다. 현재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지하철 요금 등 사회복지가 적용되는 기준연령이 대체로 65세다. 국민연금 지급 연령도 지금은 62세지만 단계적으로 올라 2033년부터 65세가 된다. 노인 연령 상향으로 노인복지 적용 시기가 늦어지면 노동시장 은퇴와 노인복지 사이의 ‘소득 단절 기간’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정년 연장은 ‘노후 격차’를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노인 빈곤 정책의 타깃이 돼야 할 ‘폐지 줍는 노인’에게 정년 연장은 의미가 없다.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선 지금의 60세 정년도 큰 의미가 없다. 정년 연장의 혜택을 공공부문, 대기업 정규직 등 일부 상층 노동자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 입장에서도 추가 비용이 들어 난색을 표할 수 있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미칠 영향도 문제다. 자칫 잘못하다간 최저임금 인상 때와 유사한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가 다르다는 주장도 있지만,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고령층 재고용 압력에 직면하면 청년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이에 정부는 정년 연장을 검토는 하되 당장 추진하겠다는 뜻은 밝히지 않았다. 대신 ‘일하는 노인’이 가능한 기반을 만드는 작업부터 추진한다. 통계청은 현재 ‘65세 이상’으로 돼 있는 고령층을 ‘65~69세’와 ‘70세 이상’으로 세분화해 취업·고용 통계를 발표할 계획이다. 2024년부턴 70~74세 구간도 새로 만든다. 이를 통해 고령층 대상 맞춤형 고용 모델을 발굴해 70세를 ‘일하는 삶’의 표준모델로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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