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승계 앞둔 코오롱 4세, 눈앞은 ‘가시밭길’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4 08: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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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열 전 회장 퇴임으로 이규호 전무 행보 주목…코오롱인더 실적 악화 후 2분기 반등 주목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다. 오너 3세인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은 지난 2018년 23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창업에 매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었다. 이후 그룹의 주요 현안은 계열사 사장단이 참여하는 ‘원앤온리(One&Only) 위원회’를 통해 결정되고 있다. 그룹 측은 이 위원회가 의사결정 기구가 아니라 협의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코오롱인더) 전무가 만 36세이니만큼, 4세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일종의 과도기적 조직으로 보고 있다.

3세 경영자인 이웅열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 4세인 이규호 전무의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3세 경영자인 이웅열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 4세인 이규호 전무의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4세 경영 앞두고 그룹 이익 적자 전환 

주목되는 사실은 코오롱그룹의 최근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실적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의 매출은 2013년 처음으로 10조원대의 벽을 깼다. 하지만 이듬해 다시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매출은 9조23억원으로 전년 대비 3% 감소했고, 순이익은 -86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소폭이지만 그룹의 자산 역시 최근 3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보사 사태’까지 불거졌다.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주’의 성분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이 전 회장은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룹 측은 “이 전 회장이 그룹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너 공백’를 우려하는 시각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당장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나 인수·합병(M&A)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오너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 전무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전무는 2012년 코오롱인더 차장으로 입사하며 그룹 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코오롱글로벌 부장(2014년), 코오롱인더 상무보(2015년), (주)코오롱 상무(2017년)로 승진했다. 2018년 말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전무로 승진했다. 

이 전무는 현재 코오롱인더 패션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그룹의 패션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곳에서 성적을 보여야 무난하게 대권 고지로 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부 재벌가의 후계자들처럼 자질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 전무는 지난 2년여간 오프라인 위주의 유통망을 온라인과 모바일로 확대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와 소통하기 위해 ‘솟솟618’과 ‘솟솟상회’를 오픈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코오롱인더 패션부문의 실적 역시 최근 몇 년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9730억원으로 1조원대가 무너졌다. 영업이익은 135억원으로 전년 대비 65.4%나 감소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분기 매출은 17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40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당장 주가가 요동을 쳤다. 최근 3년간 코오롱인더의 주가는 7만3000원에서 3만8800원(9월16일 기준)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이 전무는 현재 공유주택(Co-Living) 회사인 리베토의 대표도 겸임하고 있다. 공유주택은 개인 방을 가진 입주자들이 주방과 거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주 형태다. 2018년 코오롱글로벌의 자회사인 코오롱하우스비전의 셰어하우스 브랜드인 ‘커먼타운’을 인적분할해 세워졌다. 최대주주는 코오롱글로벌(41.66%)이다. 이 전무는 회사 설립 과정에서 36억원을 출자해 지분 15%를 획득했고 대표이사에도 취임했다.

 

코오롱 측 “후계 구도 논하기 아직 일러”

하지만 이 회사의 경영 상황 또한 좋지 않다. 설립 초기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과 청담동, 반포 서래마을, 여의도 등 젊은 직장인이 선호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쳤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35억원으로 소폭 성장했지만 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세(이웅열) 체제에서 4세 체제(이규호)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고지가 많은 것이다.

이 전무가 어렵게 패션사업 부문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다고 해도 승계에는 걸림돌이 있다. 코오롱그룹은 현재 지주회사인 (주)코오롱이 코오롱인더와 코오롱글로벌 등을 통해 나머지 40여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주)코오롱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49.74%의 지분을 보유한 이 전 회장이다. 이 전무의 경우 (주)코오롱과 코오롱인더, 코오롱글로벌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4세 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지분을 증여받아야 하는데, 세금 부담이 만만치 않다. 최근 몇 년간 (주)코오롱의 주가가 하락했다고 하지만, 이 전무가 이 전 회장의 지분을 직접 증여받을 경우 1000억원에 육박하는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승계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네오뷰코오롱(현 코오롱아우토)이 승계구도의 한 축으로 한때 거론됐다. OLED 업체였던 네오뷰코오롱은 10년 넘게 적자를 이어갔지만, 모회사인 (주)코오롱이 매년 유상증자 형식으로 수천억원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경영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네오뷰코오롱은 2016년 OLED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이후 사명을 코오롱아우토로 바꾸고 (주)코오롱이 보유한 아우디의 딜러 사업권을 넘겨받았다. 당시 그룹의 수입차 사업은 코오롱글로벌이 전담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왔다. 4세 승계 과정에서 코오롱아우토에 역할을 주기 위해 산소호흡기를 달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이 아직까지 행사하지 않은 (주)코오롱과 코오롱인더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이 행사 가능한 주식 수는 (주)코오롱 49만8750주, 코오롱인더 134만3987주다. 워런트를 행사하게 되면 (주)코오롱의 지분 4.1%와 코오롱인더 지분 4.5%를 확보하게 된다. BW의 만기일도 2039년으로 아직 여유가 있다. 이 때문에 이 BW를 활용해 이 전무의 초기 승계구도를 구축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코오롱그룹은 오래전부터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운영돼 왔다. 후계구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내부적으로 논의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전무가 총괄하는) 패션부문의 실적 하락은 업계 공통의 문제다. 오히려 2분기 들어 패션부문 실적이 반등하면서 흑자로 돌아선 만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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