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되살아나는 일본의 ‘자살 공화국’ 오명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31 10:00
  • 호수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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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명 연예인의 잇단 자살로 몸살 “코로나 관련 사망 더 늘어날 듯”

지난 9월27일 여배우 다케우치 유코의 사망 소식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였던 그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배우다. 1995년 광고로 데뷔한 그는 2002년 방영된 드라마 《런치의 여왕》의 주연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몇 차례나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까지 증명받은 배우였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만난 상대 배우와 결혼해 2005년 첫 아이를 얻었지만 2008년 이혼했고, 지난해 초 재혼했다. 올해 1월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기도 했다. 출산 후 겨우 8개월 만에 전해진 비보였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현장 상황을 바탕으로 자살이라고 판정했다.

최근 일본 연예계에서 자살 사례가 부쩍 자주 보도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인기 배우 미우라 하루마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해 2007년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연공》의 남자 주인공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력도 인정받은 배우였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었고 드라마도 한창 촬영 중이었던 30세 젊은 배우의 자살 소식에 많은 사람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월27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우 다케우치 유코 ⓒ다케우치 유코 인스타그램 캡쳐

가정폭력·육아 고민, 코로나로 더 심각해져

원로배우 후지키 다카시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9월20일 숨진 채 발견된 그는 “배우로서 계속해 나갈 자신이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소속사에 따르면 “3월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일이 줄어든 데다, 80세라는 연령도 있어 외출도 피해 왔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며 코로나19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외에도 배우 아시나 세이, 가수 쓰노 마이사 등의 극단적 선택도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다.

일본 연예인의 경우 일정한 급료를 받는 급료제 또는 성과급제로 계약한다. 다케우치 유코와 아시나 세이의 경우 급료제에서 성과급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성과급의 경우 단가가 높은 광고를 계약하거나 다수의 드라마·영화에 출연하할 경우에는 더 좋은 조건이지만 코로나19로 일본 연예계 사정도 나빠졌고 이후 계약과 수입에 대한 불안이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긴급사태가 선언된 기간이었던 지난 5월에도 유명인의 자살로 떠들썩했었다. 유명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테라스 하우스》에 출연하던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가 자살하면서 프로그램 방영이 중단됐다. 자살 원인으로는 인터넷상의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 꼽힌다. 방송에서 기무라 하나는 다른 출연자와 갈등을 일으켰는데 그 태도를 비난하는 악의적 댓글들로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촬영이 중단되고 악플에 대한 고민이나 괴로움을 나눌 상대도 없이 고립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명인의 자살은 사회적 파장이 크다. 실제로 다케우치 유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는 자살과 관련한 상담 요청이 급격히 늘어났다. SNS로 무료 상담을 하는 도쿄의 한 NPO(비영리단체)의 경우 하루 평균 300건 정도였던 상담 액세스가 다케우치 유코 사망 당일에는 1400건, 그다음 날에는 1800건에 달했다. 그리고 8월부터 꾸준히 늘어나고 있던 상담 건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0월27일 일본 정부는 2020년판 자살 대책 백서를 각의 결정했다. 2019년 자살자 수는 2만169명으로 전년에 비해 671명 줄어 10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 10년여 동안 경기가 호조를 보여 ‘경제나 생활 문제’로 의한 자살이 줄어든 것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자살 대책 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자살 예방을 위해 힘써온 일본 정부의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20년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자살자 수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7월 이후에는 늘어나고 있다. 8월 자살자 수는 1854명으로 작년에 비해 251명 늘어났다. 젊은 여성층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8월 남성 자살자 수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0%가 증가한 데 비해, 여성은 45%나 늘어났고, 30대 이하 여성은 193명으로 지난해 8월에 비해 74%나 늘었다. 10대는 3.6배나 증가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가족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쉽고, 주위 사람과 만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분석에 의하면 동거인이 있는 여성, 직업이 없는 여성의 자살이 많은데 이는 가정폭력이나 육아 고민이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긴급사태가 선언된 4월 이후 “일하던 바(bar)가 문을 닫아 생계가 어렵다” “일자리를 잃은 동거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다” 등의 상담 전화가 늘어났다고 한다. 10대 여성의 경우에도 가정 문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부모가 신종 코로나 감염 예방에 신경질적인 태도로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유명인의 자살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계층이기도 하다.

9월17일 도쿄에서 코로나19 확산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표지판 앞을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AP연합

“자영업자의 자살, 연말에 늘어날 위험” 경고

일본 경시청이 발표한 9월의 자살자 수는 1805명으로 8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8.6%나 늘어난 수치다. 음식점 경영자나 자영업자의 자살이 연말에 늘어날 위험도 경고하고 있다.

10월28일 현재 일본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1732명이다. 하지만 올해 일본 내 자살자 수는 9월까지 총 1만4974명이다. 작년까지 꾸준히 감소하던 자살자 수가 올해 다시, 특히 긴급사태 선언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코로나의 영향이 분명하다. ‘코로나 관련 사(死)’는 자살뿐만 아니라 고독사를 포함해 코로나 사태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 등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코로나 관련 사’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일본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인구 대비 감염자 수나 사망자 수를 보면 언뜻 일본 정부는 신종 코로나 대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살을 포함한 ‘코로나 관련 사’ 예방에는 실패한 듯하다. 여행과 외식 장려 캠페인 ‘Go To’를 전개하는 데 투입되는 1조원이 넘는 예산의 일부분이라도 이러한 ‘코로나 관련 사’ 방지에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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