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공항, 군공항 이전 합의 후 옮겨야”…이용섭 광주시장의 선택은?
  • 정성환·고비호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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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안 수용’이냐 ‘협약 이행’이냐 놓고 깊어가는 李시장의 고민
“광주시민 80% 민간공항 무안 이전 반대…43.7% 존치해야”

광주시민권익위원회가 광주 민간공항의 전남 무안공항 이전 시기 재검토를 광주시에 권고했다. 시민권익위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정책 권고는 사실상 민간공항 이전 재검토 명분쌓기로 평가받는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내년까지 민간공항을 넘기기로 2년 전 전남도와 맺은 협약 이행과 정책 권고안 수용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결국 ‘시민의 뜻’을 우선 존중할 것인지, 아니면 이웃 전남과의 상생·신의를 우선시 할 것인지 등의 이 시장의 시정철학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광주시민권익위원회(위원장 최영태)의 광주 민간공항 및 군공항 이전에 대한 여론조사 브리핑ⓒ광주시
최영태 광주시 권익위원장(왼쪽)과 서정훈 광주NGO센터장이 11월 11일 오전 광주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광주 민간공항 이전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광주시

시민권익위, 광주시에 ‘정책권고’…뒷말도 무성

광주시민권익위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광주 시민 10명 중 8명 가량은 군 공항 이전이나 합의 없이 민간공항만 전남으로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시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공항 이전 관련 시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간공항의 적절한 이전 시기에 대해 30.1%는 ‘군 공항과 동시 이전’, 49.4%는 ‘군 공항 이전 부지에 대한 전남도와의 합의가 이뤄질 때’라고 답했다. 

시민 79.5%는 민간 공항 이전을 군 공항과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협약대로 내년까지 민간 공항을 전남 무안 공항으로 이전·통합해야 한다는 응답은 11.7%에 그쳤다. 시민권익위는 12일 이 같은 민간공항과 군공항 이전에 대한 광주시민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공항 이전 시기 재검토’를 정책 권고하기로 했다. 

권고안 핵심은 ‘광주시는 전남도와 군 공항 이전 부지에 대한 합의점을 찾은 후 민간공항 이전을 추진하고 전남도, 국방부, 국토교통부와 소통·협력 등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해 이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전남 상생 발전을 위한 노력, 2018년 민간 공항 이전과 군 공항 이전에 관한 합의문 성실 이행 등의 내용도 포함된다. 

시민권익위 권고에 광주시와 이 시장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이행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광주시는 시민권익위 운영 조례에 따라 시민 의견과 국방부, 국토교통부, 전남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부서검토를 거쳐 1개월 이내에 시민권익위에 실행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동안 14차례 정책 권고는 시에서 모두 이행했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11월 2일 오전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광주시 광주 군공항 전투기 이륙 ⓒ공군 제1전투비행단​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11월 2일 오전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 합의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광주시 

“협약 이행이냐 파기냐” 李시장 앞에 놓인 두 개 선택지 

이 시장 앞에는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정책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 ‘광주 시민의 뜻’을 받아들이는 명분에서 시민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시민권익 우선주의’ 시정철학에도 부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민간공항 이전 연기로 군공항 이전 특별법 국회 통과, 이전 지자체 대상 선정 등 국방부와 정부가 적극 나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2018년 8월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에서 서명한 ‘광주 민간공항의 2021년 무안 공항 이전 통합’ 협정문은 파기된다. 따라서 민간공항 2021년 이전이 물건너 가면서 책임소재 논란이 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시도 행정통합,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지역 주요 현안을 놓고 절실히 요구되는 시·도 상생과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을 비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이 시장은 두고두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린 정치인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정책 권고안과 달리 대승적인 차원에서 ‘민간공항 이전’을 추진하는 안이다. 이 경우는 ‘합의’를 지키는 ‘이용섭표 신뢰정치’를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전남도가 화답할 경우 ‘민간공항 이전’과 맞물린 군 공항 이전이 패키지로 해결될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광주 군 공항 이전이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을 앞세운 시민권익위의 민간공항 이전 재검토 권고와 최근 행정통합 논의에 합의하면서 모처럼 상생 분위기를 조성한 전남도와 협약 이행 사이에서 이 시장과 광주시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최근 기자들과 차담회에서 “(시민 권익위) 건의 내용이 오면 시민 의견, 전남도와의 상생, 광주·전남의 번영 등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늦지 않게 결정 사항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시민권익위원회가 정책 권고의 근거로 삼은 여론조사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우선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미리 정해 놓고 상대방에게 질문해 자신이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낸 이른바 ‘답정너’식 설문조사였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남 지역의 반발로 군 공항 이전이 답보하는 상황에서 민간공항 이전에 반대하는 광주 시민의 반응은 뻔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또 ‘군 공항 이전 사업이 지지부진해 민간 공항 이전·통합 계획까지 찬반 논란이 있다’는 등 질문 문구는 선입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2021년까지 광주 공항을 무안으로 이전·통합하기로 한 2018년 8월 광주시, 전남도, 무안군의 3자 협약을 파기하려는 ‘명분 쌓기용’ 설문조사라는 냉담한 평가까지 나온다.

​무안국제공항활성화추진위원회(위원장 박일상)가 11일 무안군 해제면 면사무소 앞에서 광주시민권익위원회 민간공항 이전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 대응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무안군​
​무안국제공항활성화추진위원회(위원장 박일상)가 11일 오후 무안군 해제면 번영회 사무실 앞에서 광주시민권익위원회 민간공항 이전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 대응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무안군​

무안 주민들, 즉각 반발…“협약은 반드시 이행돼야”

광주시민권익위의 정책권고가 나오자 무안군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무안국제공항활성화추진위원회는 11일 즉각 입장문을 내고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제3차 공항 정책 기본계획에 공항 통합 추진 내용을 담아 고시했다”며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에서도 활주로 연장, 청사 리모델링 등 기반·편익 시설에 700억원을 투입해 대비하고 있는 만큼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도록 반드시 협약은 이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진위는 “더는 광주 시민권익위원회의 이름으로 여론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며 “광주·전남의 통합을 말로만 아니라 하나씩 실천하는 광주시의 참모습을 보여야만 한 뿌리, 공동운명체가 됨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민선 7기 출범 직후인 2018년 8월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원회를 열고 민간공항, 군공항과 관련한 두 가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하나는 이 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김산 무안군수 등 3자가 서명한 협정문, 또 하나는 이 시장과 김 지사가 같은 장소에서 사인한 ‘상생 협정문’이다. 

3자 협정문에는 ‘광주시·전남도·무안군은 무안국제공항을 국토 서남권의 거점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 광주민간공항을 2021년까지 무안국제공항으로 통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 시도지사 협정문에는 ‘광주 민간공항이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한다면 군공항도 전남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하고, 전남도는 이전 대상 지자체, 국방부, 양 시·도간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군 공항이 조기에 이전되도록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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