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 흔적 그대로 간직한 섬 강화도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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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부터 고려, 일제 강점기까지 전 시대를 담은 거대한 섬

강화도는 유명하다. 고대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역사적 순간의 주연 또는 조연으로 등장하며 이름을 알려온 섬이다. 하지만 강화도의 특징을 한 마디로 콕 집어 말하는 것은 조금 망설여진다.

강화도 역사 자원의 연대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화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 신화인 단군 설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알려진 ‘참성단’이 강화도 마니산에 있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강화도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강화도를 비롯한 이 지역의 섬들은 간척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됐는데, 고인돌이 위치한 곳들은 모두 옛날에는 해안지대였다고 한다.

강화군 지도. 오른쪽의 가장 큰 섬이 강화도이다. 고인돌 유적지, 강화산성 등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김지나
강화군 지도. 오른쪽의 가장 큰 섬이 강화도이다. 고인돌 유적지, 강화산성 등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김지나

강화 고인돌, 모아이와 함께 대표적 ‘거석문화’

단군이 세운 고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의 기록 시작된 시점으로 보지만, 여전히 신화와 역사의 미묘한 경계에 있다. 익숙한 탓에 그다지 신기함을 못 느낄 수도 있겠으나, 고인돌은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과 함께 고대 ‘거석문화’의 하나로 분류되는 유적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수천 년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환상 같은 이야기들이 이곳 강화도의 실제 장소에 투영돼 있는 것이다.

1232년 몽골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수도를 개성(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군사적 방어 기능을 최우선시한 선택이었다. 이후로 강화도는 약 40년 동안이나 한 나라의 수도로 군림했다. 그런 반면 수도로서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유적지는 많지 않았는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한 고려궁지가 유일했다. 개성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다는 고려궁지의 옛 모습은 그마저도 전란을 겪으며 모두 사라졌고, 조선시대 건물만이 복원돼 있는 상태다. 이 시기에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던 팔만대장경은 조선 태조 때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고려궁지 풍경. 조선시대 건물인 외규장각, 강화유수부동헌 등이 복원돼 남아 있다. ⓒ김지나
고려궁지 풍경. 조선시대 건물인 외규장각, 강화유수부동헌 등이 복원돼 남아 있다. ⓒ김지나

한 시절 강화도에 뿌리 내렸던 고려의 역사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풍화돼버린 듯했다. 경주․공주․부여․김해 등 일국을 호령했던 도시들이 특정한 역사시대를 대표하는 것과 달리, 강화도는 그런 식으로 떠오르는 지배적인 이미지가 없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한 때 고려의 수도였다는 것은 강화도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역사의 단편 중 하나임엔 틀림없었다.

그런 한편, 강화도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가 성사되면서 우리나라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가 됐다. 강화도는 단지 조약을 맺은 장소였지만 ‘강화도 조약’이란 다른 이름이 더 유명해지면서 역사적인 상징성을 갖게 된 셈이었다. 그런가하면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이 강화도에 들어선다. 지금은 카페이자 야외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조양방직’이 그 주인공이다.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전국 최대의 직물산업 도시 중 하나였는데, 선두에는 조양방직이 있었다. 서울 성수동의 ‘대림창고’나 인천 가좌동의 ‘코스모40’ 등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는 종종 있긴 하다. 하지만 강화도의 조양방직은 산업의 기억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현장이란 의미도 더해 있어 특별했다.

강화도 굿즈샵 '진달래섬'에서 판매하고 있는 북한 그래픽디자인 기념품. ⓒ김지나
강화도 굿즈샵 '진달래섬'에서 판매하고 있는 북한 그래픽디자인 기념품. ⓒ김지나

시대의 결 세련되게 전달할 방법 고민해야

최근에는 강화도가 월북의 경로가 되면서 다시 한 번 화두에 올랐다. 강화도는 북한과의 최단거리가 1.4km밖에 되지 않는 접경지역이다. 북쪽으로 가면 한강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로 마주볼 수 있는데, 실제로 황해도 사투리가 강화도에 일부 남아 있기도 하다. 강화도를 모티브로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진달래섬’이란 굿즈샵에서는 북한의 그래픽디자인을 따서 만든 기념품들도 취급하고 있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 그것도 강화도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였다.

강화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섬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강렬하지는 않다. 하지만 ‘인천광역시 강화군’이란 행정지명보다 ‘강화도’라는 이름이 더 자연스럽듯이, 섬이라는 구획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경계성이 분명히 있다. 그 안에 이 많은 역사의 결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 강화도의 특징이고 매력이다. 강화도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강화읍내의 여러 역사 자원들을 연결해 ‘스토리워크’란 도보루트를 만들기도 했지만, 사실 이것들이 반드시 물리적으로 서로 연결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자원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한반도 역사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섬이란 전체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섬을 좀 더 진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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