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갈망해 왔던 ‘포스트 박태환’이 드디어 나타났다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8 16: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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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7세 황선우, 100·200m에선 400m 주종목이었던 박태환 기량 앞서

서울체고 2학년 황선우가 11월18일 경북 김천실내수영장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대회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서 48초25의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2014년 박태환이 호주에서 세운 48초42를 0.17초 단축한 것이다. 박태환은 자유형 100m부터 1500m까지 5개의 한국신기록을 갖고 있는데, 황선우가 그 가운데 100m 기록을 처음으로 깨트린 것이다. 48초25라는 기록은 지난해 광주에서 열렸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결선에 오를 수 있는 기록이고, 2020 시즌 세계랭킹 3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다.

하지만 남자 자유형 100m에서 메달을 획득하려면 47초대에 진입해야 한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호주의 카일 책머스가 47초58로 금메달, 독일의 피터르 티머르스가 47초80으로 은메달, 미국의 네이션 에이드리언이 47초85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박태환 ⓒ연합뉴스

황선우는 지난 10월 전국수영대회 남자 고등부 자유형 100m 결승에서도 박태환의 기록에 0.09초 모자란 48초51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자신의 기록을 0.26초나 단축한 것이다. 그는 내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 기준기록(48초57)보다도 0.15초나 더 단축해 올림픽 출전권도 확보했다. 현재 세계신기록은 11년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브라질의 세자르 시엘루 선수가 세운 46초91이다.

수영 자유형은 세 가지 유형의 선수로 분류된다. 50m 전문 스프린터와 100m에 최적화된 단거리 선수, 그리고 지구력이 좋은 400m 이상의 중장거리 선수들이다. 50m 전문 선수들은 21초 안팎에 승부가 가려지는 50m만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m가 주종목인 선수들은 200m까지 출전하기도 하고, 400m 이상을 전문으로 하는 중장거리 선수들은 대부분 200m와 800m 그리고 1500m까지 겸한다.

지난 11월20일 국가대표 선발대회 자유형 50m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한국신기록 22초26을 0.1초 경신하며 다시 신기록을 세운 양재훈이 대표적인 스프린터다. 접영이 주종목인 양재훈은 자유형에서는 스프린터로 활약하고 있다. 박태환과 중국의 쑨양 등은 대표적인 400m 전문 선수들이다. 박태환은 세계선수권대회(2007년, 2011년)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모두 자신의 주종목인 400m에서였다.

200m에서는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08년, 2012년 올림픽에서 모두 은메달에 그쳤다. 국내에서 박태환의 기량이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에 자유형 50m를 제외한 100m, 200m, 400m, 800m, 1500m 전 종목에서 모두 한국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400m가 주종목인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황선우 ⓒ연합뉴스

100m보다는 200m에서 우승 가능성 커

황선우는 자유형 100m 한국신기록에 이어 200m에서도 종전 기록을 0.21초 단축한 1분45초92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호주의 엘리야 위닝튼이 만 18세였던 지난 2018년에 기록한 1분46초13이었다. FINA(국제수영연맹)는 2014년부터 만 18세 이하 수영 유망주의 동기부여 차원에서 ‘주니어 세계기록’ 표준을 만들어 일반 세계기록 현황과 함께 비준하고 관리해 왔다. 한국 선수가 주니어와 시니어를 통틀어 세계기록을 세운 것은 황선우가 처음이다. 이번 황선우의 200m 기록은 박태환이 2010년 세운 1분44초80에는 1초12나 뒤지지만 만 18세 이하 주니어 선수 가운데서는 가장 빠른 기록이다. 황선우가 이제 만 17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황선우가 세운 자유형 100m와 200m 기록을 2016년 올림픽 기록과 비교하면 100m는 7위, 200m는 9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황선우의 가능성은 100m보다는 200m에 더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장거리 선수인 박태환의 100m 기록을 깨트린 것은 박태환이 갖고 있던 5개의 한국신기록 가운데 가장 약한 종목의 신기록 하나를 깨트렸다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황선우가 지금까지는 100m에서 매년 0.5초 내지 1초 정도 단축해 왔지만, 48초25의 기록은 거의 정점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기록을 단축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황선우 자신도 “내년 목표는 100m 47초대 진입, 200m 올림픽 메달권”이라며 200m에 더 치중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50m와 100m는 세계적으로 전문적인 선수가 수백 명이나 돼 경쟁이 매우 치열한 반면, 200m는 100m와 400m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이 부종목으로 하는 경향이 크기에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도 있다. 박태환의 400m 우승에 이어 황선우의 200m 우승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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