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야구’ NC 다이노스는 다 계획이 있었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8 12: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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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9년 만의 우승 밑바탕 된 ‘데이터 야구’…이동욱 감독 발탁·양의지 영입으로 큰 그림 완성

11월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이 펼쳐지기 직전 NC 다이노스의 타격 연습 시간. 타자들이 공을 치면서 감각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낯선 장비가 눈에 띈다. 배팅볼 투수와 타자들 사이에 놓여 있던 랩소드(이동식 트랙맨) 장비였다.

랩소드는 타구 속도, 발사각, 타구 회전수, 회전 방향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보여주는 장비다. 배팅케이지 뒤에 따로 설치된 태블릿PC로 선수들은 타격 관련 수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호준 타격코치는 데이터분석팀과 함께 실시간 자료를 보면서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했다. ‘데이터 야구’ 옷을 입은 NC 야구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프로야구 ‘9번째 심장’ NC가 창단 9년 만에 첫 우승을 거뒀다. 2018년 꼴찌팀에서 2019년 5위로 도약하더니 올해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거머쥐었다. NC의 우승과 더불어 주목받는 것이 바로 ‘데이터 야구’다. 그동안은 스타플레이어 출신 사령탑의 승부사적 기질이나 A급 선수들의 개인 능력치에 기댄 우승이 많이 나왔던 터. NC는 어떤 과정을 통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11월24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4대2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NC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택진 구단주의 강력한 의지로 야구데이터팀 운용

NC소프트는 다이노스 야구팀을 창단한 2011년, 판교 본사 데이터정보센터 내에 야구데이터팀을 신설했다. 구단주인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이사의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 이를 위해 대기업에 다니면서 종종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에 의거한 분석글을 야구 커뮤니티에 올리던 ‘야구광’ 임선남씨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현재 임씨는 데이터·스카우트팀장을 맡아 NC 야구에 숨을 불어넣고 있다.

NC의 데이터 야구가 처음부터 연착륙한 것은 아니었다. 창단 초기 비야구인으로 꾸려진 데이터팀은 전력분석실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야구인들로 꾸려진 분석팀으로부터 “진짜 야구는 하나도 모르면서”라며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몇 날 며칠 분석한 자료가 그저 숫자 많은 휴짓조각이 되어 버리곤 했다.

일부 야구인은 데이터 야구를 프런트 야구로 착각한다. 데이터를 제시하면 현장에 대한 간섭이나 월권 행위로 생각하기도 한다. ‘야구는 야구인이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인식을 깨뜨리려면 그들이 몰랐던 것을 세밀하고 정확한 수치로 보여주면서 현장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구단은 먼저 NC소프트가 2013년 개발한 모바일 전력분석 시스템인 ‘디라커(D-Locker)’를 선수단에 소개했다. 야구단이 설계했고 개발은 본사에서 한 이 시스템을 통해 NC 선수들은 다른 구단 선수들의 데이터나 동영상까지 볼 수 있다. 지난 2월에는 선수 개개인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해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 확인이 가능해졌다. 상황별·경기별 영상 및 데이터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차곡차곡 축적돼 선수들은 구체적인 수치로 자신의 컨디션 등을 점검할 수 있다. 디라커에는 트랙맨 데이터가 그래픽화돼 있고 데이터팀의 짧은 코멘트 등도 덧붙여져 있다.

예를 들어 올해 NC 선발의 한축으로 성장한 김영규의 경우 투구할 때 팔을 조금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반복 동작으로 볼 회전수나 시속/종속의 차이를 수치로 확인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투구폼을 찾아갔다. 히팅차트에서는 타격할 때 공이 앞쪽에서 맞는지 뒤쪽에서 맞는지 자세하게 그림으로 보여준다. 선수들 스스로 타격 위치에 따른 타구 변화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으니 점점 더 적극적이 됐다. NC 구단은 “우리 선수들은 타 구단 선수보다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전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관전하며 응원전을 펼친 김택진 NC 구단주 ⓒ연합뉴스

무명 이동욱 감독 발탁의 숨은 배경은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

NC의 데이터 야구는 초대 사령탑인 김경문 감독이 중도 사퇴하고, 2018년 말에 이동욱 감독(46)이 부임하면서 더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야구팬들에게조차 생소한 이 감독은 29세에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뒤 열린 사고로 데이터 야구를 받아들였다. NC 측이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을 제치고 무명이었던 이 감독을 2대 사령탑으로 임명한 이유도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NC는 이 감독이 수비코치로 재임하던 시절 4년 연속(2013~16년) 팀 수비지표(DER) 리그 1위를 달성했었다. 한국시리즈 동안 나온 김재환·오재일 등 두산 왼손 타자를 상대로 한 극단적인 시프트(3루수 박석민이 1~2루 사이로 이동하는 것)도 빅데이터 분석에 의한 것이었다. NC 수비수들은 상황별로, 타자별로 조금씩 수비 위치를 이동했는데 이는 실점 위기 때마다 두산 타자들의 기를 꺾었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팀타율은 0.219에 불과했다. 반면 NC 팀타율은 0.295였다. 두산 투수들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한 결과다.

사실 10개 구단 대부분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데이터 분석을 한다. 하지만 이를 실전에서 활용하려면 현장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동욱 감독이 한국시리즈 직후 “아무리 좋은 데이터라도 현장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죽은 데이터가 된다”고 말한 이유다.

이동욱 감독은 정규리그 동안 주 단위, 월 단위로 데이터팀의 보고를 받았으며 그들의 조언에 따라 수용할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감독이 데이터 야구에 대해 정확한 스탠스를 취하자 코칭스태프도 저절로 따라왔다. 이 감독은 “예전보다 데이터팀과의 회의가 많아진 편인데 여러 데이터 중 우리가 쓸 데이터의 방향성을 따진다. 선수단이 데이터를 잘 이해하면서 좀 더 근거 있는 지도를 할 수 있게 돼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NC가 2018년 말 영입한 ‘생각하는 포수’ 양의지도 데이터팀과 결합하면서 투수 리드가 더 노련해졌다.

현재 NC의 데이터팀에는 비야구인 출신 데이터분석가(5명)와 야구인 출신 전력분석원(6명)이 섞여 있다. 김종문 NC 단장은 “세이버메트리션(세이버메트릭스 분석가)만 모아놓으면 그들만의 데이터 세상을 보는데 야구를 하던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 서로 소통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이젠 스카우트팀도 랩소드 장비를 갖고 아마추어 선수 스카우트에 나선다”고 귀띔했다.

NC의 성공으로 야구 트렌드도 바뀔 분위기다. 일단 감독 선임 때부터 ‘데이터에 능한 지도자’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데이터 야구가 프런트-현장 간 갈등을 야기한다는 선입견에서도 벗어날 계기가 됐다. 프런트-현장 간 소통으로 안착된 데이터 야구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NC가 통합우승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터 야구만이 정답은 아니며, 데이터에 휴머니즘(소통)이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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