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에서 스가까지…일본은 ‘설명 부족’ 정권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5 14: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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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 때의 ‘벚꽃 스캔들’ 검찰 수사 들어가…스가 총리 “답변 보류”에 내각 지지율 하락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 문제가 스가 요시히데의 새 정권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은 1952년부터 일본 총리가 주최해 온 것으로 개최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점차 비대해지는 행사의 비용 문제가 지적돼 왔고, 2019년에는 아베 전 총리가 세금을 사용하는 공적 행사에 지지자와 여당 관계자 등 사적 인맥을 중심으로 초대 대상을 선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가 처음 제기된 당시에도 야당과 언론은 아베 전 총리에게 지역구 유권자들을 모집했는지, 사적 인맥을 초대한 것은 아닌지, 또 전날 열린 저녁식사 모임에 아베 측이 일부 비용을 충당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으나 국민이 수긍할 만한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5월21일 변호사와 학자들이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해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규정법 위반이 있었다며 당시 총리직에 있었던 아베 전 총리와 후원회 간부에 대한 고발장을 도쿄 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대리인에 의한 고발은 수리할 수 없다”며 고발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고발장을 제출한 변호사는 “정권에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하지 말고, 진상 구명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으나, 총리와 여당 눈치를 본 탓인지 결국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벚꽃 스캔들’은 물론 아베 전 총리를 둘러싼 다른 문제들도 그의 9월 총리직 사퇴 이후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스가 총리가 10월26일 상원 임시국회에서 정책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EPA 연합 

스가 “대답할 입장 아니다” 말만 되풀이

그러나 11월 도쿄지검 특수부가 ‘벚꽃을 보는 모임’ 수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며 아베 전 총리와 자민당, 그리고 스가 신임 총리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이 열리기 전날, 행사에 초대된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 관계자들은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 모임은 아베의 비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아베 신조 후원회’가 주최하는 것으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열렸다. 저녁식사 비용은 1인당 1만1000엔(약 11만6000원) 정도였지만 참가자들이 낸 비용은 5000엔(약 5만2000원)에 그쳤다.

아베 전 총리는 참가자들에게서 거둔 회비로 식사 비용을 지불했다고 설명했지만 차액을 아베 측에서 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차액을 어떻게 충당했는지, 정치단체의 수지보고서에 비용 보전 내용을 왜 기재하지 않았는지 등을 조사하기 위해 비서와 후원회 회계 책임자 등을 불러 몇 차례에 걸쳐 조사 중이다. 정치자금규정법은 정치단체의 수입과 지출 기재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저녁식사 모임과 관련한 수입과 지출은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위법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사무소 측의 비용 보전은 없었으며 보고서에 기재할 필요도 없었다는 설명을 반복해 왔지만 결국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만 유권자에게 기부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위반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위법한 기부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금품을 제공하는 쪽과 받는 쪽이 모두 기부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식사 모임에 참가한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식사가 부실해 회비로 낸 5000엔 이상을 제공받았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현재 열리고 있는 임시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야당은 아베 전 총리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지만 여당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격화돼 11월25일의 예산위원회가 제 시간에 열리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야당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국회에서 아베 전 총리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국회 심의가 우롱당했다”고 비판하며 스가 총리에게 아베의 설명을 요구했지만, “아베 전 총리 자신이 국회에서 누누이 답변한 것은 사실”이라며 출석을 거부했다. 에다노 대표는 당시 관방장관으로 정권 대변인이었던 스가 총리의 책임도 추궁했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한 내용을 본인에게 확인하고 답변해 왔다”며 관방장관 시절 아베 옹호 발언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답변만 반복했다. 이날 스가 총리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보류한다” “대답할 입장이 아니다”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벚꽃을 보는 모임’에 관한 질문에 관해서만 20회 이상 설명을 회피하는 답을 했다.

5월4일 총리 집무실에서 아베 당시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오른쪽) ⓒAP 연합

‘설명 의무 다하지 않는 정부’ 이미지 정착

스가 총리의 ‘설명’ 회피 행태는 정권 초기부터 지적돼 왔다. 먼저 일본학술회의 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제대로 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제껏 일본학술회의가 새 회원 후보를 추천하면 총리는 이를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0월1일 임명권자인 스가 총리는 105명의 후보 중 6명의 임명을 거부했다. 임명을 거부당한 학자 6인은 이전부터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스가 총리는 같은 달 5일 기자회견을 열고 학술회의는 정부기관으로 회원은 공무원이기에 총리가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많은 사람이 수긍할 수 없는 이유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임 당시에는 74%였던 내각 지지율이 한 달 후인 10월말에는 63%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학술회의를 둘러싼 부정적인 평가가 반영된 결과다. 새 회원 후보를 임명하지 않았던 정부의 대응이 ‘불충분했다’는 대답이 70%에 달했고, 임명 거부를 ‘납득할 수 없다’는 대답이 47%로 ‘납득할 수 있다’(32%)에 비해 높았다.

11월에도 여전히 ‘설명 부족’ 행태는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일본 감염자 수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행 장려 정책인 ‘GoTo 트래블’을 계속 추진할 방침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GoTo 정책이 감염 확산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오사카와 삿포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스가는 11월26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단에게 “여러분과 함께 감염 확대를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고자 한다”며 말했지만, GoTo 정책에 관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관저를 떠났다. 제외 지역을 설정한 이유, 취소 수수료는 누가 부담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책 책임자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11월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의 여론조사 결과, 내각 지지율은 다시금 떨어져 58%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증가했고, ‘벚꽃을 보는 모임’에 대한 아베 전 총리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대답이 75%에 달했다. 일본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 ‘설명하지 않는’ 정부, 국민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정부라는 이미지가 스가 총리 취임 약 3개월 만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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