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레임덕을 또 봐야 하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4 14: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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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尹 갈등’과 ‘부동산 혼란’으로 지지율 하락
민심 경청 위해 귀 열고 다가가야

지난 4월 치러진 21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역대급 압승으로 끝났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공룡 여당의 힘이 야당을 압도하는 환경에서 국정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 같았고, 결코 흩어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존재는 그러한 전망에 설득력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8개월이 지난 지금, 국정은 혼돈의 늪에 빠져버렸고 문 대통령의 지지층 또한 이탈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12월 들어 실시된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면서 집권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41.08%였음을 감안하면,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한 것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일편단심을 마냥 믿을 수만은 없는 상황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1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바라보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작 무엇을, 왜 사과한 것인지는 알 길 없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추락시킨 양대 악재는 추미애-윤석열 갈등과 부동산 민심이다. 먼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1년 가까이 계속되며 국정의 블랙홀이 되었는데도 문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임명한 두 사람이 그토록 대립해 온 나라가 극심한 분열의 아수라장이 되고 있음에도 이를 조정하고 해결할 대통령의 리더십은 작동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자신이 책임을 지고 사태를 진즉에 매듭지어야 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우리 추 장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결국 추 장관이 윤 총장 직무정지와 징계의 칼을 빼들었다가 여론이 더욱 악화되어 자신의 지지율까지 추락하기에 이르자,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추 장관의 뜻대로 윤석열 징계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정작 무엇에 대해 왜 사과한 것인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그다음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을 가져온 것은 부동산 대란으로 인해 등 돌린 민심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24번의 대책이 나왔음에도 전세난과 집값 상승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전셋값과 집값이 오르는 ‘머피의 법칙’을 국민들은 성난 표정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논리에 무지한 규제 만능주의 정책이 낳은 필연적 결과였음은 정부와 여당만 모르는 진실이었다. 전세와 매매 모두, 매물이 시장에 나올 수 없는 정책이 반복되는데 전셋값과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부동산 대란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내내 보여왔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조기숙 교수가 “문 대통령이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곧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 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대통령이 참모로부터 과거 잘못된 신화를 학습했구나, 큰일 나겠다 싶었다”는 쓴소리를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올해 7·10 대책과 8·4 대책이 나온 뒤에는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고 있다”고 자평했는가 하면, 임대차 3법을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켜 전세난이 심각해지자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하기도 했다. 애당초 대다수 전문가들은 공급 대책이 부재한 문재인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것이며, 특히 임대차 3법은 심각한 전세난을 초래할 것임을 경고했었다.

결국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아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돌아갔고, ‘대통령의 의지’로 시장을 다스리려던 문 대통령은 번번이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말았다. 물러난 김현미 국토부 장관만 탓할 것이 아니라, 부동산 대란의 원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의 정책 능력이 문제였던 셈이다.

12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여당 단독 처리에 항의 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레임덕 막을 사람은 문 대통령 자신뿐

문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을 가져온 악재들이 앞으로도 호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내걸고 추 장관과 함께 ‘윤석열 리스크’를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지만, 설혹 해임 같은 중징계가 내려진다 해도 윤 총장의 법적 대응으로 사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악화된 여론은 ‘윤석열 해임’이라는 결론이 날 경우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과 추 장관으로서는 이겨도 지는 싸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난과 집값 상승은 문 대통령 임기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내정자가 등판했지만, 획기적인 공급 대책 없이 현재의 정책기조가 유지된다면 부동산 대란은 계속될 것으로 시장 분석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는 씨가 말랐고 부르는 게 값이 되어 폭등해 버렸다. 전세가가 급등하니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겠다는 매수심리가 확산되어 집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발상의 전환 없이 실패한 정책들을 반복하는 한 임기 마지막 날까지 집값은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고,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대란의 한복판에서 내년 4월 보궐선거와 2022년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했다. 그러나 임기 중반까지 어떤 악재가 있어도 유지되던 40%의 지지층은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30%로 하락했고,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급기야 한 자리 숫자로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물론 문 대통령 지지층의 경우 정치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편이라 그런 급락이 있지는 않겠지만, ‘촛불 정부’를 자처하던 문 대통령에게는 30%대의 국정 지지율도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민주당이 내년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에서 모두 패하는 경우,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남은 1년4개월여의 시간은 산 넘어 산이다. 여러 난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거대 여당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고 한들, 민심이 등 돌리면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지금처럼 민심이 등 돌리고 있을 때,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민심을 경청하러 귀를 열고 다가가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불통’을 그렇게 비판하던 문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서는 것을 피하고 ‘수보회의’에서 준비된 원고만 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슬픈 일이다. 레임덕으로 들어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문 대통령 자신뿐이다. 그 길은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는 데 있다. 우리는 왜 촛불을 들었던가? 다시 법치와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며 던져지는 그 처연한 질문들에 문 대통령은 이제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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