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비관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5 10:00
  • 호수 16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와 방역 사이 저울질하던 정부…회복세 문턱에서 다시 생존 위한 분투로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세가 올해를 넘겨 내년 초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해외에선 사태 진정을 2022년 중반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화되자 나오고 있는 진단들이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에 위와 같은 상황을 ‘비관 시나리오’, 즉 최악의 경우로 가정하고 시나리오별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 바 있다. 이제 비관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애써온 정부도 부쩍 줄어든 선택지에 당황한 모습이다. 

ⓒfreepik

‘마이너스 전망치’ 더 낮춰야 할 판 

당장 한은은 높여놓았던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낮춰야 할 판이다. 한은이 11월26일 전망한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은 -1.1%다. 이는 지난 8월27일 전망치(-1.3%)보다 0.2%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수출 회복세와 함께 사회적 거리 두기 1.5~2.0단계가 내년 초까지 지속되는 상황을 가정한 전망이었다. 하지만 그 뒤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급증하면서 수도권의 거리 두기 단계는 12월8일부로 기존 2.0단계에서 2.5단계로 올라갔다. 오는 28일까지 3주간 경제 3요소 중 한 축인 소비가 더욱 쪼그라들게 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실 거리 두기 단계 격상보다 확진자 수 증가 속도가 실물경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면서 “최근 확진자 증가세만 쭉 봐도 상당한 경제 타격이 현실화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12월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올해 국내 성장률 전망치는 한은보다 0.3%포인트 낮았다. 수출 등 일부 지표의 개선에도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인해 성장률이 -1.4%를 기록할 것으로 한경연은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7일 발표한 ‘12월 경제동향’에서 “11월 중순 이후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방역 수준이 강화됨에 따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다시 위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KDI는 11월 중순 이후 신용카드 매출액 감소폭이 확대됐다는 점을 들었다. 신한카드 매출을 토대로 추정한 11월17~29일 중 전체 신용카드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줄어들어 11월 감소폭 1.3%보다 컸다. 

지난달까지 해외 투자은행(IB)이나 기관들도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터라 코로나19 3차 확산은 더욱 야속하게 다가온다. 11월 기준 바클레이즈,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 씨티,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JP모건, HSBC, 노무라, UBS 등 해외 IB 9곳이 예상한 올해 한국 성장률은 평균 -1.1%로 한은 전망치와 같았다. 10월의 -1.2%에서 0.1%포인트 증가한 전망치다. 11월15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낸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미 달러화 기준) 전망치는 1조5868억 달러로 세계 10위다. 지난해의 12위보다 순위가 두 계단 상승했다. 코로나19발(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것이 순위 산정의 한 이유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10일 청와대에서 제8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비 진작책 펼칠 상황 아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12월1일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은 효과적인 방역 조치로 회원국 중 올해 GDP 위축이 가장 작은 국가”라고 언급했다. 다만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지난 9월의 -1.0%에서 0.1%포인트 낮춰 -1.1%로 제시했다. 6월 -1.2%, 8월 -0.8%, 9월 -1.0%, 12월 -1.1%로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들쑥날쑥하게 전망했다. 

악화일로인 방역 상황과 국내외 예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올해 한국의 마이너스 성장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가 실제로 역성장을 경험한 해는 1980년(-1.6%), 1998년(-5.1%) 두 차례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한은이 마이너스(-1.6%)를 예상했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실제 성장률은 0.2%였다. 

코로나19가 ‘슈퍼갑’이 되다 보니 ‘방역도 방역이지만, 경제 위축을 최소화해야 한다’던 일각의 주장도 다소 힘을 잃었다. 성태윤 교수는 “여전히 감염 확산에 대한 통제가 안 되는 상태에서 터진 이른바 ‘3차 대유행’은 경제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끌고 가고 있다”며 “지금은 소비쿠폰 사업 등을 할 때가 아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통제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봉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도 “효과나 바람직한 방법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방역 조치 자체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가 여기서 더 퍼질 경우 정말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대위기 봉쇄를 위해 경제가 희생되는 국면으로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언제 잡힐지 모르는 코로나19 확산세 앞에서 우리 경제는 얼마나 더 희생돼야 할까. 일단 내년까지는 살얼음판·가시밭길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은 비관 시나리오에 따른 내년 국내 성장률을 2.2%로 예상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올겨울 내내 지속되다가 이후에 국지적·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세계적으론 내년 중후반 이후 점차 진정될 것이라는 ‘기본 시나리오’상 전망치(3.0%)보다 0.8%포인트 낮다. 비관(3.4%)-기본(4.8%) 시나리오상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의 격차는 1.4%포인트로 훨씬 더 크다. 그야말로 코로나19에 전 세계 사람들은 물론 경제의 운명이 달린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세계 성장률 ‘하방 시나리오’를 11월12일 제시했다. 한은의 ‘비관 시나리오’와 비슷한 개념이다. KIEP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며 실물과 금융 부문이 동시에 위축되면 내년 세계 성장률은 2.2%에 그칠 수 있다. ‘기준(기본) 시나리오’상 전망치(5.0%)와의 격차가 2.8%포인트나 된다. 아울러 KIEP는 대외 경제정책 전문가 57명을 대상으로 10월30일부터 11월5일까지 ‘코로나19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물어 평균을 내보니 ‘1년10개월’이 나왔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감당할 수 없는 대유행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내년 하반기쯤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경제 규모를 달성하겠지만, 2차 충격이 일어난다면 2022년 상반기쯤에야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9월24일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마련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상담 창구 ⓒ연합뉴스
9월24일 서울 중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마련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상담 창구 ⓒ연합뉴스

전문가들 “장기화 국면…‘핀셋 지원’ 절실” 

코로나19 3차 확산에 대한 원활한 대처가 내년 이후 국내 성장률을 가르는 핵심 변수란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핵심은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도 경제 회복 탄력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 강도에 따른 소비 침체 정도, 그리고 세계경제 흐름과 수출 경기 향방이 앞으로 한국 경제의 방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경제 활력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절체절명의 난국에 어떤 시도가 필요할까.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확진자를 ‘제로(0)’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당분간 우리 의료체계가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방역에 치중하되 확진자 수가 충분히 떨어지면 신축적으로 경기 부양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생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요즘은 피해를 입은 쪽이 견뎌낼 수 있도록 돕는 게 특히 중요하다. 경제 순환이 끊겨선 안 되기 때문”이라며 “중장기적으론 기업들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게 구조조정 등도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태윤 교수도 코로나19 확산세 진정이 아직은 요원한 만큼 ‘장기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온다 해도 수많은 사람에게 충분한 양을 공급하는 문제가 기다린다”며 “코로나19가 장기화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오히려 지금을 비대면 소비, 탄력근무 등 새로운 트렌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코로나19 피해 지원에 ‘3조원+α’를 투입할 예정이다. 지원 대상은 내년 1월초 코로나19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확정할 방침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격상에 따라 영업상 손실을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성 교수는 “직접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과 고용취약계층·저소득층 등에게만 딱 지원하는 등 역시 장기적 관점을 바탕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고 전봉걸 교수는 말했다. 전 교수는 “서비스업종은 백신·치료제 개발 이후 회복되리란 희망이라도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갑작스레 유동성 문제에 직면한 기업들은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면서 “경쟁력 있고 장기적으로 지불 능력도 탄탄한 기업들에 대해 경제부처에서 단기 유동성 위기를 해소해 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기업, 특히 우리 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을 놓쳐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