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깜짝 우승’ 김아림, 내년 LPGA로 방향 틀까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9 12: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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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코리아 오픈’ 된 US여자오픈
박세리 이후 최근 23년간 한국 선수 11번 우승

75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내셔널 타이틀 US여자오픈에서 극적으로 또 한 명의 코리안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마지막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주인공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장타자로 소문난 김아림(25)이다. 김아림은 12월15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 골프클럽 사이프러스 크리크 코스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최종일 경기에서 하루에 4타를 줄여 합계 3언더파 281타를 쳐 공동 2위 고진영(25)·에이미 올슨(미국)을 1타차로 제치고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전날 4타차 공동 9위로 출발한 김아림은 이날 버디 6개, 보기 2개를 기록하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이번 우승으로 김아림은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US여자오픈에서 김아림이 세계여자골프랭킹 94위로 우승한 것은 2006년 랭킹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순위의 선수가 우승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번 우승으로 김아림은 세계랭킹이 30위로 무려 64계단이나 껑충 뛰었다. 김아림은 한국 선수로는 10번째 US여자오픈 우승자로 기록됐다.

또한 LPGA투어 첫 우승을 US여자오픈에서 거둔 역대 20번째 선수가 됐고, 한국 선수로는 7번째 선수가 됐다. LPGA투어 첫 우승을 US여자오픈에서 거둔 선배들은 김주연·박인비(32)·유소연(30)·전인지(26)·박성현(27)·이정은6(24) 등이다. 한국 선수로는 34번째 LPGA 메이저대회 우승자로 등록됐고, 지난 10년 동안 처음 출전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14년 에비앙 챔피언십의 김효주(25), 2019년 AIG 여자오픈의 시부노 히나코(일본)에 이어 3번째다. 김아림은 이번 우승으로 LPGA투어 출전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무려 6라운드나 거쳐야 하는 LPGA Q시리즈 과정을 피한 것이다.

김아림 ⓒJeff Haynes
김아림 ⓒJeff Haynes

강도 높은 근력 훈련을 통해 키워낸 장타력 일품

“처음 출전하는 대회니만큼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는데, 경기가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났던 것 같다. 우승을 차지했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고 꿈만 같지만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김아림의 우승 소감이다. 이번 대회 우승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장타력이다. 사실 미국골프협회(USGA)는 가급적 선수들의 변별력을 판단하기 위해 코스 세팅의 난이도를 높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더파가 잘 안 나오는 이유다. 이번 대회 장소 역시 코스 길이가 매우 길었다는 게 선수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 날씨까지 심술을 부렸다. 당초 6월에 열리던 경기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12월로 조정되면서 추워졌다. 선수들이 패딩에다 털모자까지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최종일 라운드는 번개와 천둥, 그리고 폭우로 인해 중단돼 하루 연기되기도 했다.

김아림은 이미 소문난 장타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KLPGA투어 장타랭킹 1위에 올랐다. 3년간 평균 비거리가 260.4야드로 2위와는 10야드 안팎의 차이가 난다. 장타는 세컨드샷에서 좀 더 짧은 아이언으로 정확하게 그린을 공략할 수 있고, 이글이나 버디를 잡을 확률을 높여준다. 이런 장타력이 이번 US여자오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번 대회 첫날 평균 268야드, 2라운드 259야드, 3라운드 260야드, 4라운드 236야드를 날렸다. 이런 장타력을 앞세워 4일간 버디를 16개나 잡아냈다.    

이런 장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바로 근력이다. 근력이 탄탄해지면서 아이언의 샤프트 강도를 높였고, 그린 적중률이 10위권으로 올라갔다. 드라이버도 페이드나 드로 등 기술샷을 원하는 대로 하고 있다. 김아림의 근력은 강도 높은 체력훈련에서 나온다. 175cm, 70kg의 균형 잡힌 체격이 한몫한다. 그는 시즌 중에도 일주일에 3~4일은 체육관에서 체력단련을 한다. 특히 2018년부터 겨울에 전지훈련 대신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인터벌 유산소운동, 그리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스트레칭을 한다. 오죽했으면 동료선수들로부터 복싱선수 같다는 말을 들었을까. 그는 “잘 다듬어진 근육의 양과 질, 그리고 체형의 균형은 장타력뿐 아니라 모든 스윙 기술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다”고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우승의 단초는 또 있다. 마음의 평정심이다. 대회에 함께 동행한 어머니 덕이다. 그는 “평소에 한식을 좋아한다. 그러데 어머니께서 한식 요리를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챙겨주셨다. 경기는 미국에서 치렀지만 한식을 잘 챙겨 먹었던 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골프에서 필수불가결한 ‘멘털 게임’에서 승리한 것이다. “우승이 다가올수록 엄청 긴장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긴장감을 잘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높은 긴장일수록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결정적인 스위치를 켜면 주변이 고요해지면서 몰입할 수 있다”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강한 멘털을 실감할 수 있다.

 

우승 직후 롤모델인 안니카 소렌스탐과 영상통화

김아림은 2013년 7월 프로에 데뷔해 3부 점프투어에서 뛰었지만 우승이 없는 ‘무명’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이 ‘변곡점’이 됐다. 체력 보강이 원동력이 됐다. 장타력이 힘을 발휘해 아이언 정확도를 나타내는 그린 적중률과 퍼트가 10위권으로 올라가면서 KLPGA투어 첫 우승을 따냈다. 그해 상금랭킹 6위에 올랐다. 2019년에도 1승을 추가하며 상금랭킹 11위로 선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올해는 무관에 그쳤고, 톱10 진입도 세 번밖에 못 해 상금랭킹이 21위로 밀려났다. 그렇게 국내 대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의 한 방’을 날리며 전 세계 골프팬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우승을 확정하고 나서 USGA가 마련해 준 영상을 통해 그는 자신의 롤모델인 스웨덴 출신의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과 우승 축하 영상통화를 했다. 12월16일 ‘금의환향’한 김아림은 14일 동안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LPGA투어 진출을 위한 또 다른 인생의 장기 플랜을 설계한다. 김아림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와우매니지먼트그룹의 이수정 본부장은 “김아림의 내년 일정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미국에 진출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뒤 김아림 선수와 의논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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