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생존 콘텐츠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9 15: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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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살아남기' 프로그램 급증
정보와 재미 사이 고민 여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생존’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기 때문일까. 생존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이 최근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공존한다. 여러 종류의 생존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지만, 정보와 재미를 균형 있게 전하는 프로그램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런 딜레마를 만들었을까. 

tvN 《나는 살아있다》는 특전사 출신의 박은하 교관이 6인의 여성에게 생존 교육을 한다는 콘셉트만으로 시작 전부터 시청자들의 기대를 높였다. 주로 생존이라고 하면 마치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것에서 탈피해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인 이유였다. 게다가 김성령, 김민경, 이시영 같은 걸크러시를 제대로 보여줘 온 여성 연예인들이 출연자라는 사실은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tvN 《나는 살아있다》의 한 장면 ⓒtvN

애초의 취지 무색해진 프로그램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나올 즈음 터진 《가짜사나이》 논란은 이런 기대감에 우려 섞인 시선을 더하게 만들었다. 결국 특전사 출신의 박은하 교관이 하는 생존 교육이 군대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한다는 점에서 여성판 《가짜사나이》가 나오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첫 방은 이런 우려를 지워내기 충분할 정도로 ‘생존’에 맞춘 교육을 보여줬다. 화재 시 완강기를 이용해 건물에서 내려오는 법을 배우고, 물에 빠져 가라앉는 차 안에서 탈출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은 ‘생존 교육’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의 생존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군대 훈련의 풍경들이 연출되었다. 목봉 체조를 하거나 바닷가에서 체력 훈련이라며 이어지는 얼차려가 그것이었다. 

이처럼 《나는 살아있다》는 생존 교육과 군대 훈련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산악 생존 훈련’에서 2인1조로 10kg 쌀포대를 지고 1052m 마산봉 고지를 오르는 과정에서 박은하 교관이 20kg 쌀포대를 홀로 지고 함께 오르는 모습은 군대 훈련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무인도에 남겨진 훈련생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주겠다며 바닷가에서 이어진 PT체조와 입수 같은 체력 훈련은 군대 훈련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나는 살아있다》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기대와 우려를 고려해 그 중간 지점의 어떤 수위를 보여주려 한 것이지만, 이런 어정쩡한 위치는 실제 생존을 염두에 두고 보면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 무인도 생존에서 박은하 교관과 6인의 출연자가 각각 나뉘어 생존해 가는 모습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가진 딜레마를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박은하 교관의 나 홀로 생존은 수위가 높고 흥미진진한 면이 있지만, 이와 대비되는 6인의 경우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너무나 어설프게 느껴진 면이 있었다. 결국 박은하 교관이 가진 그 생생한 생존의 진면목과 이를 체험하고 배우는 훈련생들의 어설픔이 효과적으로 섞이지 않은 게 이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였다. 굳이 여성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훈련하기보다는 차라리 박은하가 여성 연예인과 그런 환경에 들어가 함께 생존해 가며 그 방법들을 알려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의 한 장면 ⓒSBS

생존 예능을 일찍이 시도했던 SBS 《정글의 법칙》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촬영이 어려워지자 국내를 선택하고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다시금 꺼내놓은 바 있다. 《정글의 법칙》 ‘와일드 코리아’ 편은 그래서 재난생존이라는 모토로 무인도에 떨어뜨려 놓은 출연자들이 그곳에서 식수를 확보하고 식량을 구하며 요트를 통해 섬을 탈출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았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 국내 편을 시작한 《정글의 법칙》은 그 후로 생존의 취지가 점점 희석되었다. ‘헌터와 셰프’ 편은 임지호 셰프가 등장해 생존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호사스러운 ‘먹방’을 보여주었고, ‘제로포인트’ 편에서는 게임적 요소가 강조됐다. 김수미가 출연했던 ‘족장과 헬머니’ 편은 정글 생존이라기보다 캠핑에 가까웠고, ‘울릉도, 독도’ 편은 ‘탐사 생존’을 내세웠지만 자연 탐사보다는 사냥과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까운 클라이밍, 그리고 역시 캠핑에 가까운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애초 정글에 들어간다는 취지 때문에 《정글의 법칙》은 생존과 더불어 공존의 의미를 강조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곳 원주민들의 삶을 존중하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환경적 의미가 부여됐다. 하지만 점점 ‘정글 먹방’이 자극적인 시청 포인트로 등장했고, 정글에서 벌이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까운 체험들이 나오면서 취지는 흐려져버렸다. 

현재 생존이 시대의 키워드가 된 이유는 환경 파괴로 인해 벌어지는 자연재해나 재난 상황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다. 그런데 《정글의 법칙》이 생존이나 탐사를 내세워 실제로 하고 있는 정글 먹방 같은 것들이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극적인 방송의 코드들이 강조되다 본말이 전도된 생존 콘텐츠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KBS1 《재난탈출 생존왕》의 한 장면 ⓒKBS1

정보 전달은 괜찮지만 재미는 ‘글쎄’ 

KBS도 생존이라는 소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KBS가 새로 시작한 《재난탈출 생존왕》은 공영방송으로서 예능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의 색깔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미 KBS에는 《위기탈출 넘버원》같이 재난이나 재해를 소재로 이에 대한 대처법과 예방법을 알려줬던 장수 프로그램의 전례가 있었다. 10년 넘게 방영되다 지난 2016년 종영한 《위기탈출 넘버원》은 한때 14%(닐슨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재난탈출 생존왕》은 타사의 생존 콘텐츠들과 달리 자연 속에서의 생존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처하게 되는 위기상황에 대한 생존법을 알려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나 화재사고 때 고층건물에서 탈출하는 법 같은 걸 알려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별점은 ‘생존왕’으로 등장하는 최영재의 ‘알아야 산다’라는 코너다. 본래 《가짜사나이》로 화제가 됐던 이근 대위가 출연해 이 역할을 수행하려 했지만, 논란이 터지면서 특수부대 출신인 최영재가 그 대신 출연하게 됐다. 최영재는 이 코너에서 전복된 차량에서 탈출하거나, 불이 났을 때 완강기를 사용하는 법, 부득이한 상황에 공기안전매트 위로 뛰어내리는 방법 등을 실연해 보여준다. 개그맨 이재훈이 ‘보통남’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해 최영재가 알려주는 생존법을 따라 하는 부분은 이 방식을 누구나 활용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하지만 《재난탈출 생존왕》은 정보적으로는 훨씬 유용한 프로그램이지만, KBS 교양 프로그램 특유의 색깔을 지니고 있어 재미적인 요소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코로나19 같은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나 산불 같은 재난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생존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키워놓았다. 하지만 이들 생존 콘텐츠의 정보적인 가치나 재미 요소에 대한 균형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군대 훈련 같은 장면들이 불편함을 야기하고, 재미에 매몰되다 보니 애초 취지가 지워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며, 정보 전달에 치중하다 보니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 요소들이 부족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생생한 실제 위기 상황 속에서 보통 시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정보들을 전문가가 흥미진진하게 실연해 보여주고 또 가이드도 해 주는 그런 생존 콘텐츠는 탄생하기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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