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사회] 정은경 ‘흔들림 없는 코로나 방역의 파수꾼’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9 10: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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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질병 위기 관리의 중요성 일깨운 방역 전문가

2020년 올해의 인물을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종 경합을 벌였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올해의 사회 인물’로 선정됐다. 본지 편집국과 독자 의견을 취합했을 때, 사회 분야에선 단연 압도적이었다. 2020년은 ‘코로나의 해’다. 코로나19가 인류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전 세계는 코로나19와 길고 지독한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코로나19와 맞서는 상징적인 인물로 모든 이가 정 청장을 주목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현재 ‘방역 사령관’으로 코로나19와의 전쟁의 전면에 나서 있다.

정 청장은 ‘K방역’이 전 세계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을 당시 외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해외 언론들도 연말을 앞두고 정 청장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미국 타임), ‘올해의 여성 100인’(영국 BBC), ‘올해의 인물 50인’(미국 블룸버그) 등으로 선정했다. BBC는 “바이러스 사냥꾼으로 표현되는 정 청장은 한국의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이끌었다”며 “첫 여성 질병관리본부장인 그는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보인 침착한 태도와 투명한 발표로 잘 알려졌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외신들도 정 청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올해 초부터 정 청장은 연일 브리핑에 나섰다. 24시간 가동되는 긴급상황센터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대응책 마련을 위해 구성원들과 총력을 쏟았다. 정 청장의 검은 머리는 흰머리가 되어 갔다.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정 청장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이런 공로로 정 청장은 질병관리본부에서 ‘청(廳)’으로 승격된 질병관리청의 초대 청장으로 임명됐다.

정 청장은 감염병 예방 분야 전문가다. 질병관리본부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했다. 정 청장은 학창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1989년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의학 학사를 취득했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보장된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에 관심을 두며 진로를 급선회했다. 이후 서울대 보건학 석사와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공중보건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998년 5월 보건복지부 국립보건원 보건연구관으로 질병관리본부에 첫발을 디뎠다. 첫 보직은 2002년 국립보건원 전염병정보관리과장이다. 이후 약 5년 동안은 정책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주로 국가 질병정책 마련에 기여했다.

그에게도 순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 청장 공직생활에서 맞은 가장 큰 위기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였다. 당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정 청장에게 ‘방역 실패’를 이유로 정직을 권고했다. 과거의 업무 성과가 반영돼 인사혁신처의 최종 징계 수위는 감봉 1개월로 낮춰졌다. 그러다 정 청장은 2017년 7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질병관리본부장에 임명됐다.

정 청장에게 지금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겨울 한파가 닥치면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수도권에서 하루 평균 700~8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심 중이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전 지역에 12월23일부터 2021년 1월3일까지 실내·외를 가라지 않고, 5명 이상의 사적 모임이 금지된다.

그동안 특정 장소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왔지만, 최근에는 무증상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역학조사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역 당국은 지역사회 무증상 감염자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무증상자까지 무료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해 주는 임시선별검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청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어느 순간 정 청장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동안 정 청장이 언론에 나타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 청장이 부상을 입으면서, 병가를 내 입원했기 때문이다. 정 청장은 12월1일 자택 침대에서 내려오던 중 넘어져 어깨를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 일주일 만인 12월8일, 서울시청에서 영상회의 방식으로 열린 ‘수도권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점검회의’에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앉아 있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내 관련 컨트롤타워들이 산재해 있는 탓에 정 청장이 신속하게 코로나19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 중 하나인 대만의 사례를 보면, 일견 이런 주장에 수긍이 간다. 대만 당국은 4월12일 이후 해외 유입을 제외하면 12월22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한 건도 없었다가 지난 23일, 253일 만에 처음 국내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외신들은 대만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코로나19를 막아내는 일등공신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1월에 대만은 한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위생복리부를 컨트롤타워로 하는 중앙질병지휘센터를 재빨리 조직했다. 이후 모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며, 책임자인 천스중(陳時中) 위생복리부장(장관)이 전권을 행사했다.

 

“한 사람에게 실권 주고, 강력하게 집행해야”

반면 한국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앙사고수습본부·중앙방역대책본부 등 여러 조직을 두고 있다. 특히 중대본의 경우 각 부처 장관들이 회의에 참석하고, 본부장이 국무총리다. 이 때문에 코로나 대응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실 우리나라 방역체계의 기본 구조는 나쁘지 않다. 다만 여러 조직이 있고, 특히 중대본의 경우 결정권자가 많다. 이 때문에 의사결정이 느린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응급상황이다. 이게 길어지고 있다. 한 사람에게 실권을 주고,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본다. 집행 구조를 좀 더 슬림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과 전문가를 중심으로 ‘컨트롤타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재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을 총리가 총괄하는 코로나19 컨트롤타워의 무게중심을 방역으로 옮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은 정 청장이 방역 전문가로서 좀 더 목소리를 높여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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