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의 1 지지’로 대한체육회장 당선, 이번에도 반복될까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6 08: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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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대통령’ 뽑는 대한체육회장 선거
‘反이기흥’ 후보 단일화 실패로 세 후보 난립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리는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66)이 연임을 시도하는 가운데,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12월29일 마감 4분을 남겨두고 이종걸 전 의원(64), 유준상 전 의원(79), 강신욱 단국대 교수(66) 등 3명이 등록을 마쳐 결국 ‘4파전’ 양상으로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 회장의 연임을 저지하려는 세 후보의 막판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오는 1월18일 선거일 직전까지 후보들의 막판 행보가 주목된다.

이 회장 등 4명의 후보는 지난 12월30일부터 오는 1월17일까지 19일 동안 2180명의 선거인단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은 대한체육회와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분리 문제다. 이 회장은 분리에 반대하고 있고, 이 전 의원 등 다른 후보들은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선거가 사실상 ‘이기흥 대 반(反)이기흥’ 구도로 치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0년 10월15일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시사저널 이종현

연임 노리는 이기흥 회장이 현재로선 유리

현재의 구도만 놓고 본다면 이기흥 현 회장이 유리한 게 사실이다. 이 회장 측이 선거인단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자신하는 가운데, 다른 3명의 후보가 나머지 표를 나눠가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만약 지금의 구도대로 투표가 진행된다면 이 회장 재선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종걸·유준상·강신욱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면, 마지막 개표가 끝날 때까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접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이기흥 회장은 재력이 풍부한 데다, 정치인 뺨칠 정도의 친화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다는 것 또한 강점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또한 현직이라는 프리미엄까지 있어 매우 유리한 입장이다. 오는 7월 도쿄올림픽과 2022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등이 불과 7개월 간격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이 회장에게는 불리하지 않은 요소다. 아무래도 현직에 있는 사람이 큰 행사를 치러야 연속성 면에서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00년 근대5종연맹 부회장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카누연맹과 수영연맹 회장을 거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선수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와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분리 반대 △체육인에 특화된 인권 프로그램 개발 △생활체육 강화 등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 공약인 ‘대한체육회와 NOC 분리 문제’ 때문에 현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체육계 브레인 격인 안민석 의원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이종걸 전 의원은 누구보다 강하게 대한체육회와 NOC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회장과 정면충돌하고 있다.

사실 이기흥 회장에게는 지난 4년 임기 동안 악재가 많았다. 그에 따른 체육계 안팎의 비판도 상당했다. 2016년 11월1일 취임식에서 “뼈를 깎는 자성과 쇄신으로 거듭나겠다”고 했지만, 출발부터 보은인사, 측근 챙기기로 시끄러웠다. 2017년 6월에는 이 회장 스스로를 IOC 위원 후보로 셀프 추천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IOC 예약석을 무단으로 차지했다가, 그를 수행했던 체육회 고위 인사가 자리를 옮겨달라는 자원봉사자에게 “야! IOC 별거 아니야, 우린 개최국이야. 머리 좀 써라”라고 폭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은 이 회장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수년 동안 지도자와 팀 선배, 팀닥터 등으로부터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던 최숙현은 유서를 남기고 끝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 후 스포츠계의 폭력 및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스포츠윤리센터’가 발족했지만 내분에 휩싸인 상태다.

이 회장은 대한수영연맹 회장 때인 2016년 3월, 전무이사를 비롯한 간부진 5명의 배임수재 및 횡령 등 비리혐의가 연이어 밝혀지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영연맹 회장직을 내려놓은 바 있다. 그 후 7개월 만에 대한체육회장으로 복귀한 셈이다. 또한 과거 군사정부 시절, 체육을 국가의 위신과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메달 생산 공장’쯤으로 취급하던 ‘엘리트 스포츠 정책’ 기조의 구태의연함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이종현

이종걸·강신욱·유준상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현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은 인권변호사를 지내다가, 경기 안양 지역구에서 5선 의원을 지냈다. 의원 시절이던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대한농구협회장을 지내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유준상 전 의원은 1980~90년대 지금의 민주당 전신인 신민당·평민당 등에서 4선 의원을 지냈고, 이후 보수정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으로 당적을 옮긴 정치인 출신이다. 지금도 야당인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2009년 인라인롤러연맹 회장을 맡으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고, 현재 대한요트협회장을 맡고 있다. 

강신욱 교수는 전농여중과 용산고 하키부 감독을 지낸 체육인 출신이다. 2017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를 지내는 등 체육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일하고 있다.

만약 이종걸·유준상·강신욱 세 후보가 단일화를 이뤄 이기흥 회장과 1대1로 맞붙는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각각의 이해관계가 달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세 후보는 후보 등록 직전까지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서로 야바위꾼, 배반자라고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이제 이기흥, 이종걸, 유준상, 강신욱 등 4명의 후보는 섣불리 사퇴하기도 어렵게 됐다. 만약 사퇴하면 기탁금 7000만원을 날리게 된다. 기탁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선거에서 유효 투표의 20%를 얻거나, 또 하나는 후보자 자신이 사망한 경우다.

선거운동은 선거일(1월18일) 직전인 오는 1월17일까지 계속되고, 그 사이 두 번의 정책토론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추첨에 의해 1번 이종걸, 2번 유준상, 3번 이기흥, 4번 강신욱 후보 순으로 기호가 결정됐다. 대한육상연맹 등 62개 정회원 종목단체와 서울특별시 등 17개 시·도 체육회, 생활체육 등에서 무작위로 선정한 2180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를 한다. 투표와 개표는 K-voting(온라인 투표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지난 2016년 40대 대한체육회장 선거 때는 전체 892표 가운데 이기흥 현 회장이 겨우 33%(294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친여 성향이었던 장호성 단국대학교 총장(213표), 전병관 전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189표), 탁구의 전설 이에리사 전 새누리당 의원(171표), 장정수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25표) 등으로 표가 분산되어 이 회장이 불과 3분의 1 지지만 받고도 어부지리로 당선된 바 있다. 이 회장에게 이런 행운이 또 반복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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