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이 너무도 추운 ‘조선의 4번 타자’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2 13: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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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하락으로 입지 좁아들어…입길 오른 선수협회 회장 판공비도 악재 

이대호(38)는 ‘조선의 4번 타자’로 불린다. 조선 최초의 야구단 이야기를 담은 영화 《YMCA 야구단》(2002년)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한 배우 송강호의 이미지와 많이 닮기도 했고, 한때 타격 7관왕(2010년)에 오를 정도로 국내 최고 타자로 군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호에게 이번 겨울은 춥다. 찬바람이 쌩쌩 분다. 대체 이대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롯데 이대호 선수 ⓒ연합뉴스

국내 최고 연봉에 못 미치는 성적, 에이징 커브일까

이대호는 일본·미국 무대를 거쳐 2017 시즌을 앞두고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일본리그(NPB)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으로 2년 연속(2014~15년) 재팬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2015년 재팬시리즈 때는 4번 타자로 나서 일본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최초로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도 밟았다. 이런 그가 국내 리그에 복귀했으니 최고 대우는 당연했다. 4년간 보장된 액수만 150억원. 연봉은 자그마치 25억원이었다. 프로축구·프로배구·프로농구 등을 통틀어 국내 최고 연봉이었다.

돌아온 ‘조선의 4번 타자’는 곧바로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를 5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타율 0.320, 34홈런 111타점. 2018년에도 타율 0.333, 37홈런 125타점의 성적을 올리면서 “역시 이대호”라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KBO가 극심한 타고투저를 완화하기 위해 공인구 반발계수 등을 조정한 뒤 이대호의 성적은 급전직하했다. 2019 시즌 성적이 타율 0.285, 16홈런 88타점에 머물렀다. 16홈런은 그가 풀타임을 뛰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최저 기록이었다. 이대호의 부진은 곧바로 롯데의 성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KBO리그 연봉 1위 팀인 롯데는 그해 꼴찌로 추락했다. 롯데가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2004년 이후 15년 만이었다. 

에이징 커브(Aging Curve·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절치부심하며 맞은 2020 시즌. 이대호는 타율 0.292, 20홈런 110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2019 시즌보다는 나은 성적이지만 출루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2005년 이후 최저 출루율(0.354)이었다.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도 1.01로 최악이었다. 쉽게 풀이하면 이대호가 팀 승리에 이바지한 게 고작 1승 정도였다는 얘기다. 롯데는 7위에 머물렀다. 

롯데 팬의 실망 속에 2020 시즌이 끝났으나, 뜻밖의 소식이 또 전해졌다. 선수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던 이대호의 판공비 논란이 불거진 것. 2019년 3월 회장으로 추대된 뒤 이대호는 연 판공비로 6000만원을 받았다. 이전(2400만원)보다 두 배 넘게 인상된 액수였다. 더군다나 법인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판공비를 입금받은 게 드러났다. 그가 영입한 김태현 선수협회 사무총장 역시 월 250만원씩 판공비를 현금으로 지급받아 증빙자료 없이 썼다. 

판공비 의혹을 받는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이대호가 기자회견을 열고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승엽? 김태균?…FA 재계약 기준은 

이대호는 기자회견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회장직을 맡을 사람이 없어 임시 이사회 때 회의를 통해 판공비를 2배 올렸다고 해명하며 판공비에 대해서는 “판공비로 명명하기는 했으나 보수 및 급여로 분류해 세금 공제 후 지급된 것이 관례”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야구 전체 선수의 50%가량이 5000만원 이하 연봉을 받는 상황에서 연봉 25억원의 선수가 연간 6000만원의 판공비를 따로 받았다는 사실에 여론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대호는 불명예스럽게 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1억원을 선수협회에 기부했지만, 여론은 싸늘할 뿐이다.

더군다나 판공비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이 지난 12월15일 이대호 전 회장과 김태현 전 사무총장 등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운동 측은 “보수 및 판공비 부정수령으로 업무상 배임죄 및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주장 했다.

이래저래 안팎으로 힘든 가운데 이대호는 2020 시즌 뒤 FA(자유계약)를 선언했다. 타 구단이 이대호를 영입하려면 직전 시즌 연봉(25억원)과 보호선수 25인 외 1명, 혹은 50억원(직전 시즌 연봉의 2배)을 롯데에 보상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타 구단 이적은 어려워 롯데 잔류밖에 대안이 없는데 앞서 언급했듯 성적 하락이 뚜렷해 협상 테이블에서 마냥 어깨에 힘을 줄 수만은 없다. 선수협회 판공비 논란으로 대외적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협상 기준이 될 만한 선수는 있다.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인 이승엽의 경우 이대호보다 한 살 많은 나이에 2년간 36억원의 계약을 한 바 있다. 계약하면서 은퇴 시기까지 못 박아 현역 마지막 해에 은퇴 투어까지 했다. LG 트윈스 레전드인 박용택은 선수 말년에 2년간 25억원 계약을 했다. 박용택 또한 계약 당시 이대호보다 한 살 많았다. 이대호로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 3년 계약을 원할 수 있다. 그러나 에이징 커브가 온 선수에게 계약기간 3년을 온전히 보장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대호와 동갑내기인 한화 이글스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은 2019 시즌 뒤 FA 자격을 갖췄는데 1년 10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김태균은 “1년 동안 성적을 낸 뒤 다년계약을 하겠다”는 욕심이 있었으나, 결국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2020 시즌이 마무리되기 전에 은퇴 선언을 했다. 

이대호로서는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내심 그보다 한 살 적은 최형우가 원소속팀인 KIA 타이거즈와 맺은 3년 47억원 수준의 계약을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최형우는 올 시즌 타격왕(0.354)에 올랐고 홈런 또한 28개를 때려냈다. WAR 또한 5.70이었다.

사실 롯데도 이대호를 마냥 홀대할 수는 없다. 그는 명실상부한 팀 레전드다. 이대호를 대체할 만한 팀 내 4번 타자도 없다. 하지만 롯데 모그룹의 자금 사정이 현재 좋지 않다. 코로나19로 관광과 유통업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롯데는 시즌 중간부터 선수단 규모를 축소해 왔다. 이래저래 이대호가 금의환향했던 4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대호와 롯데의 겨울 협상이 사뭇 길어질 것 같은 스토브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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