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공룡들의 놀이터였다고?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2.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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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백악기 육식공룡 단독 사냥 습성 보여주는 증거 발견"

대형 육식공룡이 호숫가에 나타났다. 공포에 질린 초식공룡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한다. 쫒고 달아나기를 한참, 결국 무리에서 뒤처진 어린 초식공룡 한 마리가 육식공룡에게 잡아먹힌다. 영화 ‘쥐라기 공원’의 한 장면이 아니다. 1억 년 전, 한반도 공룡시대 울산 유곡동에서 벌어졌을 법한 일이다. 

울산 유곡동의 공룡발자국이 남겨질 당시(백악기)의 상황을 개략적으로 복원한 모습ⓒ부경대
울산 유곡동의 공룡발자국이 남겨질 당시(백악기)의 상황을 개략적으로 복원한 모습ⓒ부경대

부경대는 백인성 교수(지구환경과학과) 연구진은 울산시 중구 유곡동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울산시 문화재자료 제12호)에서 초식공룡의 무리생활과 육식공룡의 단독 사냥 습성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고 30일 밝혔다.

백 교수에 따르면, 전기 백악기말(1억 년 전)에 유곡동 화석산지에 찍힌 6개의 보행렬을 이루는 50여 점의 공룡발자국화석에서 이들 보행렬이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발바닥 피부인상화석이 보존돼 있음을 확인했다. 피부인상화석은 공룡이 죽거나 넘어질 때 굳지 않은 흙에 피부무늬가 찍힌 것이 적당히 마른 후 다시 흙에 덮여 굳어져 생긴 것을 말한다. 화석산지 내의 보행렬을 이루는 공룡 발자국들의 대부분에 피부인상이 남아 있는 경우는 국내에서 유일하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백 교수 연구진이 이 보행렬의 보존 상태를 바탕으로 공룡들의 행동특성을 분석한 결과, 무리에 뒤처져 따라오던 초식공룡(조각류) 한 마리를 육식공룡(수각류) 한 마리가 사냥하는 장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는 호랑이나 표범처럼 백악기 육식공룡도 단독 사냥 습성이 있었다는 것을 화석발자국이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이며,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초식 공룡이 호숫가에서 무리를 이루며 함께 이동한 새로운 증거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울산 유곡동 공룡발자국화석산지 전경(c는 수치표고모형 이미지)ⓒ부경대
울산 유곡동 공룡발자국화석산지 전경(c는 수치표고모형 이미지)ⓒ부경대

연구진은 한반도 공룡시대에 울산 중구 유곡동 공룡발자국화석산지가 평원에 발달한 호숫가 지역이며, 이 곳이 오늘날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처럼 가뭄 시기에 공룡들의 중요한 생태 공간으로 이용됐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논문은 국제지질과학연맹(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s)이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Episodes' 2020년 4호(12월)에 게재됐다

백인성 교수팀의 논문을 접한 영국 BBC Nature의 한 과학 칼럼니스트는 “1억여 년 전 육식동물들의 섭식 전략이 오늘날 아프리카의 초원 지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유는 그 방식이 생태계에서 최적의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울산의 공룡발자국확산지에는 공룡의 산란 습성이나 곤충들의 생태 등 공룡시대 동물들의 생태 특성 등이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 교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에 함께 나타나는 초식공룡과 육식공룡 발자국 화석의 분포 특성을 분석한 결과 육식공룡이 호랑이나 표범처럼 단독 사냥을 했음이 입증됐다. 육식 공룡의 단독 사냥은 최근 미국의 연구진이 발표한 육식공룡 데이노니쿠스(영화 ‘쥐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소형 육식공룡의 모델)의 이빨 화석에 대한 동위원소 연구에 의해서도 밝혀졌다.

 

울산 곳곳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무더기 발견

앞서 정우규 한국습지학회 부산울산지회 회장은 지난 6월 울산 태화강 지류인 국수천 일대에 형성된 공룡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 가로가 95cm, 세로가 95cm 크기의 초식공룡 발자국 화석이었다. 보행 열은 이족보행(二足步行,bipedalism : 육지에서 두 다리로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룡은 중생대 백악기(1억년에서 6천5만년 사이)에 살았던 용반류 초식공룡으로 추정했다.

정 회장은 "공룡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며 이 일대가 공룡 생활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며 "공룡은 아열대 기후 대평원이나 얕은 호수, 하천, 평야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이곳이 예전에는 비 오는 때와 건조한 때가 교차하는 기후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산에는 중구 유곡동 공룡 발자국 화석을 비롯해 울주군 언양읍 태화강 바닥,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주변,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 화랑 유적지, 범서읍 사연댐 둑 아래 등에서 대형 초식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공룡발자국화석산지의 발자국 모습. 내부에 변형된 피부인상이 남아 있음(a-f는 조각류 발자국/g,h는 수각류 발자국)ⓒ부경대
공룡발자국화석산지의 발자국 모습. 내부에 변형된 피부인상이 남아 있음(a-f는 조각류 발자국/g,h는 수각류 발자국)ⓒ부경대

1억 년 전 울산에는 어떤 공룡들이 살았을까. 지금까지 조사연구를 종합해 보면 대형 육식공룡에서부터 소형 초식공룡들까지 다양한 공룡들이 어울려 살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대곡천 일대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일정한 방향이 아니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동한 것이 아니라 공룡의 생활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는 발가락 모양을 계측할 수 있고, 발자국 깊이가 깊고 윤곽이 뚜렷해 자연사적 가치가 높다. 발자국의 주인은 목과 꼬리가 긴 60톤급 브라키오사우루스와 같은 용각류와 대형 초식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 이구아나류의 고성룡 등으로 예상된다.

중구 유곡동 야산의 공룡발자국은 초식공룡인 고성룡과 육식공룡인 마니랖토라 발자국으로 확인됐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듯 한 발자국 모양이 남아 있어 싸움이나 먹이 습격이 치열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태화강 중류인 울주군 삼동면 대암리 바위에서는 알을 품은 것으로 추정되는 포란 자리 초식공용화석과 새끼공룡의 배설물도 출토됐다. 태화강 주변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태화강 상류인 울주군 범서읍 선바위 일대에서는 중·소형 초식공룡 발자국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육식인 메갈로 사우르스와 초식 카마라 사우르스, 이구아나룡의 발자국, 4발로 보행한 공룡의 발자국 화석 등이다. 울산은 1억 년 전 공룡들의 집단서식지였고 놀이터였으며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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