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실패 반복하는 더불어민주당 [쓴소리 곧은 소리]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5 10: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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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아픔 깊이 반성해야” 다짐은 어디로?
당 지도부 말보다 강경파 목소리만 부각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지난 4월, 21대 총선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던 날 이해찬 대표가 했던 말이다.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이낙연 현 대표도 “그때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열린우리당 실패의 악몽이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했지만, ‘4대 개혁 입법’ 추진 과정에서 선명성만 내세운 강경파들로 인해 순식간에 추락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민주당의 다짐은 해를 넘기기도 전에 잊히고 말았다.

16년 전 여당의 강경파가 ‘4대 개혁 입법’에 매달리다가 민심을 잃었다면, 현재 여당의 강경파가 매달리다가 역시 민심을 잃고 있는 것은 ‘윤석열 몰아내기’다. 국민은 코로나19로 민생이 벼랑 끝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검찰총장 한 사람 몰아내기 위해 그토록 매달리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온 나라가 분열되고 혼돈이 격화되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대통령을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민심이 그렇게 요동치는 한복판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를 무리하게 밀어붙였지만, 결국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고 직무 복귀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즉시 국민에게 사과한 것은 더 이상 민심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사태를 수습해야겠다는 판단의 결과였다. 물론 그런 지경까지 사태가 치닫도록 추 장관을 방치했던 문 대통령의 리더십은 심각한 문제였지만, 더 이상 확전하지 않고 수습 국면으로 전환하려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사과가 끝나기 무섭게,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은 ‘윤석열 탄핵’을 부르짖고 나서기 시작해 지켜보는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윤석열 탄핵 주장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겠다며 사과까지 한 대통령의 입장에 찬물을 끼얹어버린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내놓았는데, 집권여당의 의원들은 그조차 뒤집어버리고 끝까지 해보자는 탄핵론을 꺼내들었으니 말이다.

2020년 4월16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왼쪽)과 이해찬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2020년 4월16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왼쪽)과 이해찬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낙연 대표의 리더십 부재가 큰 원인

윤석열 탄핵론은 무엇보다 상식에 맞지 않는다. 추미애 장관이 구성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조차도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의 징계에 그치고 말았다. 그 정도 징계도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는데, 민주당이 의석수의 힘을 앞세워 탄핵을 의결한들 그것이 헌법재판소를 통과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검찰총장 같은 공직자를 탄핵하려면 파면에 해당하는 중대한 헌법 위반 또는 법률 위반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 그런 중대한 위반 행위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리한 탄핵 추진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와 같은 역풍을 초래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이낙연 대표가 “최근 현안을 넓은 시야로 보고 책임 있게 생각하길 바란다”며 탄핵론에 선긋기를 한 것도 그러한 역풍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부의 선긋기에도 김두관 의원은 소속 의원들에게 탄핵 동참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강경파들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국민 눈에 비춰지는 민주당의 모습은 ‘콩가루 집안’이다. 당 대표의 말보다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부각되고, 그들이 민주당의 얼굴로 비춰진다.

불과 8개월 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민주당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는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경파 의원들의 언행, 그리고 그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낙연 대표의 리더십 부재가 큰 원인이었다. “단결된 소수와 싸울 때는 우선 그 정점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김두관 의원),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이기는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 앞으로 있을 모든 전투에서 이겨야 전쟁의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민형배 의원)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언어는 흡사 1980년대 초 학생운동권에서 ‘사상투쟁’ 하던 시절의 팸플릿을 읽는 느낌이었다. 마치 ‘윤석열 독재정권’에 맞서 탄압받는 어느 혁명가들의 외침을 듣는 것 같다. 이들의 머릿속 시계는 그 시절에서 멎어 있다.

박주민 의원이 “김두관 의원뿐 아니라 탄핵을 해야 한다는 의원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듯이, 민주당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그런 강경파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국회 법사위에 포진해 있는 김남국·김용민·김종민·박범계·박주민·백혜련 의원은 추 장관의 언행을 말리기는커녕 내내 윤석열 몰아내기를 위한 ‘원팀’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을 대표하는 스피커는 이낙연 대표가 아니라 이들 강경파 의원이 돼 버렸다. 국민 눈에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언행을 하는 강경파들의 모습만 보이는 것이 그동안의 상황이었다.

 

지지자들만 보려 하고, 국민은 쳐다보지 않아

거듭되는 강경파들의 언행이 민심과 충돌한다면, 이낙연 대표는 그것을 제어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그러나 대선후보가 되고자 하는 이 대표는 ‘친문’ 눈치 보기에 급급해 독자적인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 지 오래다. 이대로는 그도 민심을 다 잃어버려 차기 대권으로 갈 길이 무망해 보인다. 이 대표는 이제 벼랑 끝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나라의 분열과 갈등을 격화시키는 정치적·정책적 행위들을 중단하고 민생에 전념하는 여당으로 노선 전환을 해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19 시대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국민에 대한 집권여당의 도리이며 책임이다.

둘째, 강경파들이 뒤로 물러서 국민의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아야 한다. 대신 민주당의 앞열에는 민심을 두려워하고 균형의 미덕을 아는 정치인들이 서야 한다. 이것을 해내는 결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당연히 이낙연 대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이 대표가 과연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라는 두 가지 도덕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단지 열정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 정치가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베버의 생각이었다. “열정적 정치가를 그저 ‘불모의 흥분 상태’에 있는 정치적 아마추어들과 구분하게 해 주는 것은 영혼에 대한 자기통제력이 있느냐에 있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신념윤리로만 무장해 흥분 상태에 있는 정치적 아마추어들만 있을 뿐, 책임윤리를 겸비한 균형적인 정치인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가들의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균형적 판단의 공존’을 말하던 베버의 주문은 2021년을 맞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극단으로 치닫는 열정들만 넘치는 정당이 하필이면 이 나라의 집권여당인 현실이,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지지자들만 보려 하고, 국민은 쳐다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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