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공급 줄인 대책이 ‘무더기 신고가’ 낳았다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21.01.13 10: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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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거래 12건 가운데 8건이 신고가

새해 벽두부터 서울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은 물론 지방까지 집값이 급속도로 오름세를 보이자 매수 대기자들이 서울로 다시 유턴한 영향이다. 특히 강남권의 경우 많지 않지만 거래 때마다 이전 최고가보다 높은 값에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말부터 형성됐다. 지난해 12월29일과 30일 이틀간 개포동 매매거래 신고 12건 가운데 8건이 신고가를 썼다. 래미안블레스티지 59㎡ 매매계약은 이전 최고가인 19억5000만원보다 1억5000만원 높은 21억원에 체결됐고, 바로 옆 단지인 디에이치아너힐즈 59㎡도 이전 최고가인 20억5000만원보다 1억원 이상 높은 21억7000만원을 기록했다. 거래가격이 15억원이 넘어 주택담보대출이 불가한데도 신고가 행진은 계속됐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특정 지역 문제가 아니라 서울의 전반적 추세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넷째 주(28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은 0.06%로 상승 폭을 확대했다. 7·10대책 이후인 7월 셋째 주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미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고가주택이 더 몸값을 높여 신고가에 거래되는 배경에는 시장 내 매물 잠김 현상이 자리한다. 정부는 2017년 8·2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단지 내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했다. 단 조합원이 해당 주택을 10년 이상 보유했고 5년 이상 실거주한 1주택자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추지 않았으면 내 집이지만 사고팔 수 없기 때문에 대책 발표 당시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개포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해당 조건을 다 갖추고 집주인이 매도 의사까지 있는 매물을 섭외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2020년 9월10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바라본 구룡마을과 재건축단지 ⓒ시사저널 박정훈
2020년 9월10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에서 바라본 구룡마을과 재건축단지 ⓒ시사저널 박정훈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후폭풍’

여기에 정부가 지난해 6월 6·17 부동산 대책을 통해 발표한 재건축 조합원 입주권 자격 부여 강화 정책은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당시 정부는 투기세력의 재건축 시장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조합설립인가 신청 전 총 2년의 실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조합원은 현금청산을 받고 나가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강남권 노후 단지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에 속도를 냈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2차를 비롯해 서초동 삼호가든5차,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 송파구 한양2차 등이 지난해 12월 서둘러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앞서 언급한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개포동에서는 개포주공6·7단지도 조합설립인가 신청을 냈고, 곧 인가가 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동네만 두고 봤을 때 개포주공1단지(5040가구), 개포주공4단지(2900가구), 개포주공5단지(940가구)에 이어 개포주공6·7단지(1960가구)까지 매매거래가 막힐 처지다. 시장에 거래 가능한 매물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주택시장도 지난해와 분위기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가 전국 1439명을 대상으로 2021년 상반기 주택시장 전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9%가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해당 업체는 2008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상승 응답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의 설문 결과도 비슷하다. 직방이 자사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3230명을 대상으로 2021년 주택시장 전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주택 매매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응답은 59%를 차지했다. 이는 ‘하락’ 응답(29%)의 두 배나 되는 수준이다. 나머지 12%는 ‘보합’을 예상했다.

집값 상승을 예상한 응답자의 36.5%가 그 원인으로 ‘전·월세 상승 부담으로 인한 매수 전환’을 꼽았다. 지난해 7월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전세대란으로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내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었는데, 올해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어 신규 공급물량 부족(18.6%), 저금리 기조로 인한 부동자금 유입(13.5%)도 집값 상승 전망의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전문가들도 상승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발간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주택 매매가격은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노력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오름세가 둔화되다가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상승 폭이 다시 확대됐다”면서 “2021년 이후 주택 매매가격은 입주물량 감소, 전셋값 상승 등으로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2021년 건설·주택경기 전망 세미나를 열고 올해 전국 집값 변동률을 2%, 수도권 1.5%, 서울 1%로 각각 예측한 바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2021년도 부동산 시장 전망에서 올해 전국 집값 상승률은 1.5%가량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5번째 부동산 대책 예고한 정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5일 신년 첫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투기 수요 차단, 공급 확대, 임차인 보호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추가 대책 수립에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시무식에서 “연초부터 모든 정책 역량을 투입해 반드시 그리고 확실하게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이뤄지도록 진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국내 주택공급 기관과 함께 간담회를 열고 25번째 대책의 기틀을 논의했다. △민관 협력 방식을 통한 신속한 주택공급 △역세권 등 도심 내 가용용지와 공공택지를 통한 충분한 물량공급 △생활 인프라·혁신공간·일자리와 연계된 품질 높은 주택공급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주택 집중공급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개발이익 적정배분 및 선제적 투기수요 차단 등이 골자다.

그동안의 대책이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던 만큼 회의론도 상당하지만 변 장관 취임 이후 첫 대책이라는 점에서 관심도 크다. 변 장관은 “일각에서 공공 주도 일변도, 임대주택이나 공공자가주택 위주 공급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민관 협력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도심 내 분양주택을 공급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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