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재난지원금 지급 오락가락에 ‘여론 싸늘’
  • 정성환·박칠석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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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 불가→지급’ 180도 입장 급선회 속뜻은
“시민 희생에 보답” vs “갑자기 입장 바꿔 의아”
“순천에 뒤쳐질라” 선심성 무리한 정책 추진 논란

전남 여수시가 18일 모든 시민에게 25만원씩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여수시에서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코로나 발생 이후 처음이다. 전남 동부권 에선 광양, 순천에 이어 3번째다. 하지만 시의회와 시민단체의 빗발치는 재난지원금 지급 요구에도 반 년 이상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뒤늦게 지급을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와 시의회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웃사촌이자 경쟁관계인 인접 순천시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한 지 나흘 만에 부랴부랴 입장을 바꾼 것이라 여론에 등 떠밀려 원칙 없는 선회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여수시는 6개월 전에 비해 올해 1분기가 시민들께 ‘가장 어려운 시기’로 판단해 지급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권오봉 여수시장이 18일 오전 시청 영상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모든 시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25만원씩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여수시
권오봉 여수시장이 18일 오전 시청 영상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모든 시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25만원씩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여수시

“돈 없다고 하더니” 6개월 만에 지급으로 급선회 

권오봉 여수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 영상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시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720억원이다. 1인당 지급액은 물론, 전체 예산으로도 도내 지자체 가운데 가장 큰 액수다. 이날 0시 기준으로 여수시에 주소를 둔 시민과 외국인 등록을 한 다문화 가족이 대상이다. 

권 시장은 “소요 재원은 도로 등 계획한 사업을 미루고, 시의 특별회계와 기금의 여유재원을 활용하고 차입해 마련하겠다”며 “시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카드발행 절차를 거쳐 최대한 빨리 지급하겠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재정 상 어려움을 이유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에서 180도 급선회한 모습이다. 불과 지난달까지 ‘재정 여력이 없다’, ‘지급할 시기가 아니다’고 했던 권 시장이 입장을 급선회한 이유가 뭘까. 

그동안 시민단체와 여수시의회는 재정자립도가 여수보다 낮은 다른 도시들도 전 시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을 예로 들며 권 시장을 압박했다. 시의회는 ‘여수시 긴급 재난지원금 지원 조례안’을 제정했고, 여수시민협은 길거리 홍보활동과 1인 시위 등을 통해 여수시의 입장전환을 촉구해 왔다. 그럼에도 여수시는 지난달까지 “재정적 여력이 안 된다”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특히 “재난지원금 지급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시기라고 판단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 논란을 샀다. 

 

“우린 뭐냐?”…민심 악화에 화들짝 놀란 여수시 

그랬던 여수시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자 ‘의아스럽다’는 반응이다. 여수시가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경제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데다 설 명절을 앞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 지난 16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 방침을 발표했고, 2월 14일까지 설 연휴 특별방역대책이 이어질 전망도 이번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된 배경이 됐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해 바닥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권 시장의 ‘코로나 정치(政治)’가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난지원금의 실질적 성과나 내용을 기대하기 보다는 동부권 1위 도시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순천시에 맞선 선심성 돈 풀기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광양시는 지난해 전 시민에게 20만원씩 지원금을 선제적으로 지급했다. 더욱이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뒤쳐진 순천시가 지난 14일 285억원의 예산을 들여 모든 시민에게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경제 1번지’를 자처하는 여수시가 “우린 뭐냐?”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자 시민 여론을 의식해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수시청 내부에서도 “최근 순천시가 전 시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도 “이번 결정은 급격하게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크다”며, “재난지원금 지급 요구를 거부했던 이유가 핑계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권 시장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수시의회는 권 시장의 발표에 ‘만시지탄’이라는 반응 속에 불만 섞인 분위기다. 권 시장의 종잡을 수 없는 ‘단독 드리블’로 의회의 스탭까지 꼬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의원은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회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여전히 불통행정이 이뤄지고 있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전창곤 시의회 의장도 “이번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은 그간 권오봉 시장이 밝힌 입장과 크게 배치돼 당혹스러운 면이 있다”며 “지난해까지도 재정상의 이유로 지급이 어렵다던 시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의아스럽다”고 꼬집었다. 

여수시청 전경 ⓒ여수시
여수시청 전경 ⓒ여수시

“일관성 없는 행정 아냐…적절한 시기 찾았을 뿐” 

재난지원금을 받는 시민들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시민 김 아무개(56)씨는 “일관성 없이 주민들의 요구에 휩쓸리는 바람에 문제가 복잡해진 것 같다”며 “비록 받게 됐지만 엎드려 절 받기라는 느낌이 들어 뒷맛이 개운치 않다”며 여수시 행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권오봉 시장은 ‘재난지원금 지급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날 적절한 시기를 저울질하느라 늦어졌을 뿐 행정에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권 시장은 이날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지속되고 코로나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올해 1분기가 시민들께 가장 어려운 시기로 판단했다”며 “생활 불편과 영업 손실을 감수하며 방역에 적극 참여해주신 시민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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