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 도자기 산업을 지키는 방법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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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마을 ‘예스파크’부터 레트로 감성 ‘이진상회’까지
온라인 홍보도 적극

경기도 이천은 도자기가 유명하다. 이천시는 2010년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이 때 인정받은 문화자산이 바로 도자기다. 이천의 도자기는 언제부터, 왜 유명해졌을까. 도자기로 명성을 떨친 도시라면 이천 외에도 여러 군데가 있다. 청자는 전남 강진군, 백자라고 하면 경기도 광주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충북 단양에는 전통 장작가마를 고수하고 있는 도예마을이 있기도 하다.

도자기는 전통 문화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천 도자기는 근대 유산에 가깝다. 원래 이천은 도자기보다 항아리, 즉 칠기나 옹기를 주로 만들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천 도자기가 유명해진 것은 1963년 이천에 도자기 기업 ‘광주요’가 세워지면서부터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맥이 끊긴 우리나라 도자기 역사는 이천에서 도자기 산업으로 다시 시작된 셈이었다. 이천시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것도 도자산업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사기막골 도예촌의 한 가게. 사기막골 도예촌에는 이런 도자기 전문매장 약 50여 개가 모여있다. ⓒ김지나
사기막골 도예촌의 한 가게. 사기막골 도예촌에는 이런 도자기 전문매장 약 50여 개가 모여있다. ⓒ김지나

상업보다 관광 초점 맞춘 도자기 마을 ‘예스파크’

이천에서는 경기도와 한국도자재단이 주관하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린다. 이천시를 비롯해 여주시, 광주시가 함께 참여하는 경기도의 대대적인 도자기 축제다.  세계도자비엔날레가 ‘문화예술’로서 도자기를 조명하는 장이라면, 경기도자페어(GCF, Gyeonggi Ceramic Fair)는 도자공예을 산업으로서 키우고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년에는 과감히 온라인 개최를 시도했다. 유명 포털사이트의 쇼핑 서비스를 이용해 인터넷에 도자기 거리를 만든 것이었다.

한편, 이천에는 ‘예스파크’란 조금 낯간지러운 이름의 도자기 마을이 있다. 이곳은 2015년 이천시에서 야심차게 만든 도예인들의 생활공간이자 작업실 콤플렉스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 세련된 건물과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들이 마치 파주출판도시를 떠올리는 풍경이었다. 그쪽이 책의 도시라면, 여기는 도자기의 도시였다.

물론 예스파크가 생기기 이전에도 도자기들을 한 곳에서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이천시 사음동의 ‘사기막골 도예촌’이다. 이곳은 전통시장으로 분류돼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판매품목이 도자기 하나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시장이었다. 마을길을 따라 50여 개의 도자기 가게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수평적으로 펼쳐진 예스파크와는 다른 입체감이 있었다.

사기막골 도예촌이 있음에도 큰 예산을 들여 예스파크를 조성한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예스파크는 이천 도자기 문화의 산업적인 측면보다 관광과 여가 기능을 강조한 곳이었다. 가족이나 커플 단위의 관광객들이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반려견과 함께 즐기며, 가볍게 체험하기에 최적화돼 있다. 사기막골 도예촌에서는 사진촬영을 금지한 가게들이 종종 보였던 것에 비해, 예스파크는 ‘소비자’가 아닌 ‘구경꾼’에게도 친절했다.

이천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이진상회'에는 거대한 도자기 전시매장이 있다. ⓒ김지나
이천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이진상회'에는 거대한 도자기 전시매장이 있다. ⓒ김지나

도자기 본질 살려 붐 일으킨 ‘이진상회’

하지만 기대와 달리 관광객 유치 실적은 시원찮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이천 도자기 붐은 다른 데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마장면 장암리에 위치한 ‘이진상회’란 곳이다. 어느 시골의 작은 상점을 연상시키는 이름과 달리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도자기 매장이 한 데 모여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진상회’란 이름은 1960년에 설립된 회사에서 따온 것으로, 이 공간을 운영하는 ‘이진코리아’의 전신이다. 이진코리아는 1991년 도자기와 가구를 주로 취급하는 ‘이진도예’로 시작했다. 평범한 도자기 기업이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으로 성장한 이천 도자기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자기는 먹음직스런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일상공간을 장식하는 인테리어 요소다. 이진상회는 그 점을 카페와 베이커리라는 대중적인 여가문화와 결합해 설득력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천의 도자기 문화는 산업으로서 꽃피웠다. 온라인 페어로 홍보되고, 인터넷 쇼핑으로 소비되며, 예쁜 디저트와 맛있는 커피를 담아내는 소품으로 명성을 다져오고 있다. 그것을 공공보다 민간에서 더 민감하게 캐치해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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