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형 원전’ 개발자 이병령 “北에 원전 상납? 턱도 없는 말”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8 14:00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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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영역에서 보면 여야 모두 국익 도움 안 돼”

북한 원전 의혹을 놓고 제1야당 대표와 대통령 모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적 행위를 밝혀내겠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북풍 공작’이라며 격노했다. 두 사람은 각각 국정조사와 법적 조치 카드를 꺼내들고 대치 장기화 채비에 나섰다. 서로에게 큰소리 떵떵 치는 상황은 ‘승자 없는 싸움’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로 북한 원전 건설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전문가들은 해당 논란이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그 역사와 실체를 알았다면 소모적 정쟁을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은 이번 논란을 접하자마자 “뜬금없고 사리에 맞지 않는 공방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한국형 원전 기술 개발과 상업화 책임자를 지낸 원자력공학자다. 북한 함경남도 신포의 한국형 경수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대북 평화 원전’ 어젠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자는 내용)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김종인 위원장이 (북한 원전 건설의 실체를) 잘 모른 채 너무 세게 말해 버렸고,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감정적으로 대응해 버리니 수습이 안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문재인 정부가 북한 내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이적 행위를 했다’는 야권 주장이 왜 잘못됐다고 보나. 

“나는 1980년대 초반부터 원전 연구를 시작했고 1995년엔 북한 신포에 원전을 건설하러 간 바 있다. 오랜 연구와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국형 원전이 북한에 들어간다면 대한민국에 굉장한 이득이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 위원장이 북한 원전 건설을 이적 행위로 규정하니 황당했다.” 

전문가로서 산업통상자원부 문건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원자로, 장소, 사용후 핵연료 처분 등 항목을 두고 후보군, 장단점 등이 상세히 나와 있었다. 어떤 회의체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검토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국형 원전의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산업부가 문건 관련 자문을 부탁한 적이 있나. 

“없다. 정부가 설계자 등 고등기술자들이 아닌 (원전) 공사를 하는 사람들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 

정부·여당에서 “산업부 내부 검토자료였을 뿐이다” “청와대에서 보고받은 적 없다” “북한 원전 건설 주장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시작됐다”며 방어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청와대가 시켰고 안 시켰고, 이전 정부에서 했고 안 했고가 중요한가. 일단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고는 그곳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 법적·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산업부 공무원이 무슨 문건을 만들었든 간에 어차피 현 상황에선 실현될 수 없다. 정치권 공방으로 번질 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북한 원전 건설의 장점을 부각해 논란을 잠재웠어야 옳다.”  

이 위원은 국민의힘 일각에서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은 우리 선진 기술을 북한에 팔아넘기려는 행위’라고 단정하는 데 대해선 무지함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론보다 실례를 거론하는 게 좋겠다”며 1995년 신포 경수로 건설을 위해 북한 현지에서 일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기술 부분 지원단장을 맡은 그는 북한 관계자들로부터 줄기차게 기술 이전 요구를 받았다. 북한 측은 ‘원전이 고장 나면 스스로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유를 들었다. 이 위원의 대답은 “알았다. 다 줄게”였다. 

정말 기술을 제공했나. 

“관련 책, 보고서 등을 북한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런 것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진짜 원전 기술은 과학기술자들 머릿속에 들어 있다. 과학기술자들로 이뤄진 수십 개 팀에서 나온 솔루션으로 원전을 구체화한다. 원전이 지어진다고 기술까지 따라가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 원전 건설이 우리나라에 피해나 부담이 아닌 도움을 준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주도권이다. 원전은 완벽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멀리 떨어진 부품, 장치 등에도 지장이 없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설계 단계 수준의 고도화된 기술이 A/S에 필요하다. 우리가 (북한이 스스로 못하는) A/S를 해 줘야 북한 원전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발전 공급량은 남한의 4% 정도밖에 안 된다. 이마저도 전압·주파수가 들쑥날쑥하다. 전기의 질이 낮으니 수출할 만한 공산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우리가 북한에 원전을 만들어줄 경우 거기서 나오는 전기는 대부분 산업용으로 쓰일 것이다. 우리 협조가 없으면 원전, 즉 북한 경제가 돌아갈 수 없는 셈이다.” 

원전이 북한 핵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터져 나온다. 

“1995년 신포 경수로 건설 중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에게 ‘원전에서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미국은 전 세계 핵 문제를 컨트롤하면서 고도의 정찰·감시 기술을 갖추게 됐다.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원전에서 플루토늄을 빼내는 등 잘못된 행위를 할 경우 다 잡아낼 수 있다고 미국 측은 자신했다.” 

이 위원이 설파하는 논점과 제언은 얼핏 야권에 대한 정부의 방어 논리로 비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북한 원전 건설의 장점을 부각하기는커녕 원전의 ‘원’ 자도 거론하기 싫어하는 분위기다. 야권은 ‘문재인 정부가 그간 밀어붙여 온 탈원전 정책의 명분과 정당성을 부정당하게 되자 은폐 내지 꼬리 자르기에 나서고 있다’고 추정한다. 누구보다 탈원전 기조를 비판해 온 이 위원은 관련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3~4년간 강하게 탈원전을 반대해 왔으나 아무 소용 없었다. 이제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게 지겹다”며 “정부가 의도를 굽히지 않는 것은 내 논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탈원전’과 ‘원전 건설’ 정책이 이율배반적으로 맞부딪치는 데 대해서도 이 위원은 “이미 2018년 문 대통령이 해외 원전 세일즈를 했을 때부터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은 부정됐다”면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 원전은 해외에서만 안전해지느냐’고 비아냥댔다”며 한탄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소모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원자력발전 경쟁력 회복, 한·중·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추진 등 시급한 현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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