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공무원됐더니”…전북도의회 ‘관사 집사’ 논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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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공무원들 수년째 의원 보조 정황 드러나…‘의원 상전노릇’ 논란
시민단체 “의원·의회사무처 갑질 뿐 아니라 인권침해도 따져 봐야”
도의회 “비품 공급 등 통상적 점검 수준…청소 등 허드렛일은 안 해”

지난 22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부신시가지 전북도청 남문 건너편 D오피스텔 11층 복도. 이 복도의 안쪽에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을 받는 전북도의회 의원 생활관, 이른바 ‘의원 관사’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사방에 창문이 없어 대낮임에도 환하게 켜 놓은 형광등 불빛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이어서, 여성공무원 혼자서 이곳을 방문하기에는 섬뜩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전북도의회 사무처 소속 여자 공무원들이 도의원들 뒷바라지를 위해 수년째 이곳을 드나든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관가에서 ‘의원 상전노릇’과 ‘관사 집사’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도의회 '의원 생활관'(관사)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의원 생활관'(관사)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의원 생활관이 입주해 있는 전주 서부 신시가지 D오피스텔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의원 생활관이 입주해 있는 전주 서부 신시가지 D오피스텔 ⓒ시사저널 정성환

불거진 ‘관사집사’ 논란

전북도는 7년 전 예산심의권 등의 권력을 쥔 ‘슈퍼 갑(甲)’ 도의회의 요구로, 여론의 뭇매를 무릅쓰고 오피스텔 관사를 매입해 도내 동서부권의 원거리 지역 의원들 숙소로 제공했다. 그런데 관사 제공도 모자라 도의회 사무처 여직원들이 관사에서 숙박하는 도의원들의 편의를 위해 음료수 제공에서부터 잔 청소까지 잡무를 처리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2014년 전북도에 1차 추가경정예산안에 관사 매입 예산 3억5220만원을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관사 매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도의회는 30평형대 아파트 구입을 포기하고, 그해 10월 1억5800만원을 들여 현재의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이 관사는 무주·남원·장수 등 동부 산악권과 고창 등 서해안 원거리 출퇴근 6명의 도의원들이 묵기 위한 것이다.

도의회에서 5분 거리인 도의회 관사는 공급면적 기준 24평형으로, 침대 방과 작은 방 1개, 거실, 샤워장, 화장실과 냉장고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관리비는 의회 예산으로 낸다. 지난해 도시가스비와 관리비, 인터넷 사용료 등으로 214만원을 지출했고, 올해는 36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2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의원 관사 관리는 도의회 사무처 지원부서의 말석인 8급 여성공무원 A씨가 담당하고 있다. A씨는 2016년 지방행정직 공채시험에 합격한 뒤 줄곧 전북도청 행정파트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1월 도의회에 전입했다. 그가 맡은 직무는 △제1부의장 업무 전반 △각종 위원회 관리 및 표창업무 전반 △의원 각종 신고·등록 사항(겸직신고, 재산등록 등) 등이다. 

전북도의회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전북도의회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또 하나의 직무 ‘의원 뒷바라지’

관사 사용 의원들의 뒷바라지는 또 하나의 ‘직무’였다. A씨는 부서 업무 분장에 따른 고유 업무 외에 기본적으로 한달에 3~4회 가량 관사를 찾아 시설을 점검하고, 부족한 음료수와 치약 칫솔 등 생활용품을 채워 넣는 일을 하고 있다. 회기 중에는 전북 동서부권 지역 출신 3명의 의원이 거의 매일 숙박해 관사를 찾는 횟수가 더욱 늘어난다. 

A씨가 감내해야 하는 의원 시중은 이뿐만이 아니다. 매월 관사 관리비를 계산해 공금으로 납부하고, 실내 청결 상태 유지를 위해 간단한 청소 등 허드렛일도 A씨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밖에 한때 세간에서 화제가 됐던 구치소에 접견 자주가는 ‘집사 변호사’처럼 온갖 번거로운 일을 처리해주는 이른바 ‘관사 집사’ 역할을 한다. 

의원 관사 청소를 누가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도의회 한 관계자는 “A씨가 한다”고 즉석에서 확인해줬다. 전임자도 “한달에 3~4차례 관사를 방문해 점검하는 김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치웠다”고 밝혔다. 

관가 안팎에선 조례 등 명백한 법적 근거 없이 관사 잡무를 맡긴 도의회 사무처 뿐만 아니라 시중을 당연시하고 있는 의원들 역시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도청의 한 여직원은 “요즘처럼 강력범죄로 흉흉한 시기에 여성공무원이 혼자서 오피스텔을 찾아가 관리를 전담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다”며 “하물며 남자 의원들이 설령 뒷정리를 잘 했다치더라도 이들이 남긴 뒷자리를 살핀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불쾌감이 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자신이 종인 줄 모르는 상전 행세 모습꼴불견”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북도의회는 회의가 늦게까지 이어지면 의원들이 모텔을 전전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명분으로 관사 제공을 전북도에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다면 갓 서른 살을 넘긴 여자 공무원이 침구를 정리하고, 대낮에 오피스텔을 드나드는 것은 좋은 그림이냐”고 꼬집었다. 

여성단체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출마 당시 지역 주민의 ‘머슴’을 자처하던 지방의원들이 도의회에 입성해선 아예 대놓고 ‘상전’노릇‘에 혈안인 모양이다”며 “자신이 종인 줄도 모르고 상전 행세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꼴불견이다. 갑질 논란을 뛰어넘어 인권침해 여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북도의회 관계자는 “부서의 막내인 A씨가 관사 지원업무를 맡고 있으나 비품 수급을 위한 통상적인 점검 수준이지, 청소 등 허드렛일까지는 하지 않았다”며 “여직원이 감당하기에 힘든 궂은 일과 혼자 오피스텔 방문 등 전반적으로 문제점을 검토해 시정조치토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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