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왕관 쓰고 싶다면 토트넘을 떠나라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2 11: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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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재계약’ 미뤄지는 가운데 팀은 극도의 부진
무리뉴 감독의 ‘손흥민 혹사’ 논란도

2월21일, 토트넘 홋스퍼는 원정경기로 치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5라운드에서 웨스트햄에 1대2로 패했다. 최근 리그 6경기에서 5번이나 패한 토트넘은 순위가 9위까지 추락했다. 리그 3연패 후 23라운드에서 웨스트브로미치를 2대0으로 꺾었지만, 다시 2연패에 빠진 상태다. 손흥민은 해리 케인의 뒤를 받치며 2선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서 후반 막판 골대를 때린 슈팅을 기록했지만 팀을 패배에서 구하진 못했다. 

시즌 초반 12라운드까지 단 1패만 기록하며 우승 경쟁을 펼쳤던 토트넘은 이후 13경기에서 3승을 챙기는 데 그치고 있다. 선두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는 승점 23점 차,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도 13점 차로 벌어져 있어 따라잡기 버거운 상황이다.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커녕 지난 시즌 간신히 잡은 유로파리그 출전권 획득도 어려워 보인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왼쪽)이 2월13일(현지시간) 맨체스터 시티와의 EPL 24라운드 경기를 마친 뒤 조세 무리뉴 감독의 위로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토트넘은 선두 맨시티에 0대3으로 완패해 리그 9위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AP연합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왼쪽)이 2월13일(현지시간) 맨체스터 시티와의 EPL 24라운드 경기를 마친 뒤 조세 무리뉴 감독의 위로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토트넘은 선두 맨시티에 0대3으로 완패해 리그 9위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AP연합

현지 언론 “손흥민과 케인의 이적은 불 보듯 뻔해”

토트넘의 급격한 추락을 놓고 뒷말도 많다.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은 조세 무리뉴 감독이다. 지난 시즌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경질되자 소방수로 등장했던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에서 보낸 1년3개월 동안 좌충우돌했다. 2020~21 시즌 초반을 제외하면 안정감 있는 승점 획득이 어려웠다. 시즌 도중 취임한 1년 차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그의 의도대로 이적 시장을 진행하고 맞이한 2년 차의 결과는 온전히 무리뉴 감독의 책임이다. 

영국 현지 언론과 토트넘 팬들도 더 이상 무리뉴 감독이 세계 최고가 아닌, 변화된 전술 흐름을 타지 못한 구시대적 감독으로 보는 분위기다. 웨스트햄 원정 패배 후 손흥민과 해리 케인에게만 의존하는 공격과 역습 위주의 전술에 대한 비판을 받자 그는 “나와 코칭스태프의 방식은 여전히 세계 최고”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자존감과 달리 현재의 토트넘과 무리뉴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선수들 탓을 언급한 부분은 불같은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런 분위기는 손흥민의 거취와도 연결된다. 당초 토트넘과의 재계약이 유력했지만, 최근 다른 시그널이 뜨고 있다. 2023년 여름까지 토트넘과 계약돼 있던 손흥민은 여름 이적 시장부터 토트넘이 재계약을 추진했다. 지난해 10월에는 2025년 여름까지 계약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손흥민의 주급이 15만 파운드(약 2억3000만원)에서 팀 내 최고 대우인 20만 파운드(약 3억원)로 오른다는 소식이 영국 유력 매체들에서 일제히 쏟아졌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지만 손흥민과 토트넘의 재계약 발표는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축구계는 무관중 경기를 지속 중이다. 구단 수익 악화가 부담이 되며 대형 선수 영입과 고연봉 선수의 장기 재계약은 대부분 멈춘 상태다. 지난겨울 이적 시장에서 EPL은 전년 대비 3분의 1의 이적료만 썼을 정도로 축구계의 경기도 악화일로다. 손흥민의 재계약도 낙관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불황이 계속되면 토트넘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핵심 선수를 파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토트넘은 맨유·리버풀 등과 달리 세계적인 팬층과 스폰서 규모를 자랑하는 팀은 아니다. 맨시티·파리생제르맹(PSG)의 경우 중동 출신 구단주의 오일머니로 버티고 있지만, 토트넘은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스포츠 투자기업 ENIC 인터내셔널이 수시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팀이다. 핵심 선수를 팔아 고수익을 거두는 셀링클럽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2019년 완공된 신축 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건설을 위해 투자한 1조5000억원으로 인한 부채도 상당하다. 

손흥민 입장에서도 재계약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볼 타이밍이다. 지난 시즌부터 손흥민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월드클래스 반열에 들어섰다. 지난 시즌 30개의 공격포인트(18골 12도움)를 기록한 그는 올 시즌 18골 13도움으로 이미 자신이 세운 한 시즌 최다 기록을 넘어섰다. FIFA 푸스카스상, EPL 이달의 선수, 발롱도르 30인 후보 진입 등 개인 성과는 매 시즌 늘어나고 있다. 

전성기를 맞은 손흥민의 유일한 결점은 트로피다. 독일의 함부르크와 레버쿠젠, 그리고 EPL의 토트넘을 거치는 동안 단 1개의 공식 대회 트로피도 없었다.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 메이저 트로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이다. 토트넘의 다니엘 레비 회장이 미래지향적인 팀을 약속하고 있지만, 지난 시즌과 올 시즌의 성적은 팀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많은 영국 언론은 현 추세라면 팀의 핵심 자원인 손흥민과 케인의 이적은 불 보듯 뻔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두 시즌 이상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지만, 두 선수가 토트넘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대우는 리그 전체로는 10위 이내에도 들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승에 대한 희망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만큼 손흥민과 케인이 잔류보다는 더 큰 기회를 찾아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는 것. 핵심 선수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토트넘이 손흥민 재계약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상황도 그런 판단의 근거로 언급된다. 

2월23일 영국의 ‘인터내셔널비즈니스 타임스(IBT)’는 ‘올 시즌 토트넘의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최근 리그 6경기 중 5경기에서 패했고, 우승 조건을 맞추기 힘들다. 토트넘의 다이내믹 듀오, 해리 케인과 손흥민 역시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케인 역시 손흥민처럼 우승 트로피가 없는 상태다. 이어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두 선수가 오래 이 팀에 머무를 것이라 믿는 이가 있다면 그건 완전히 꿈나라에 사는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익스프레스는 더 날을 세웠다. “만약 구단이 무리뉴 감독 체제를 고수하는 가운데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면 손흥민과 케인은 떠날 가능성이 높다. 두 선수는 유로파리그에서 뛰기엔 아까운 선수들이다”고 보도했다. 풋볼 인사이더는 “손흥민이 여름 이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재계약을 지체하고 있다. 그를 일찍 잡지 못한 것은 토트넘의 큰 실수”라고 주장했다. 

 

유벤투스·레알 마드리드·PSG 등이 여전히 영입에 관심

때마침 손흥민의 이적설도 재점화되는 중이다. 새해부터 ‘빅클럽’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나왔다. 측면 공격 보강을 추진하는 플로렌스 페레스 회장이 아시아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는 손흥민을 지속적으로 원한다는 보도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의 유벤투스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대체하기 위한 장기적 대안으로 손흥민을 점찍었고, 이적료로 약 1200억원가량을 고려 중이라는 소문이 나왔다. 자금력에서는 유럽 최고라 할 수 있는 PSG도 킬리안 음바페가 떠날 경우 손흥민을 대체자로 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PSG는 손흥민과 궁합이 좋았던 포체티노 감독이 최근 새롭게 부임했다. 

그 밖에 박지성 영입으로 아시아 시장을 개척했던 맨유, 그리고 유럽 정복을 꿈꾸는 맨시티도 손흥민의 보강을 원하는 EPL 팀으로 꾸준히 언급되는 중이다. 모두 토트넘보다 자국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트로피에 더 가까운 경쟁력을 지닌 팀이다. 기량 면에서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는 손흥민으로선 답보 상태인 재계약을 추진하기보다는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는 3개월 이후까지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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