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도 이렇게 안 자른다, 하물며 공기업 사장을…”
  • 송창섭‧이원석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0 08: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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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통령 상대 소송 이긴 최창학 전 LX공사 사장 인터뷰

“해임은 친문 낙하산 감사, 지역 언론, 국토부 합작품”

문재인 정부 들어 해임된 공공기관장에 대해 법원이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판결해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안종화)는 지난 2월26일 최창학 전 한국국토정보공사(LX) 사장이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처럼 법원이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건은 현 정부 들어 처음 승소한 경우여서 비슷한 유형의 다른 재판에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최 전 사장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전자정부국장을 지냈고,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 소장, 대한지적공사(LX 전신) 공간정보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런 그가 LX 사장에 임명된 것은 2018년 7월 공모 절차를 통해서다. 그러나 임기를 1년3개월 남긴 지난해 4월 사장직에서 돌연 해임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최 전 사장은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가 통보서에 ‘공공기관운영법 제35조 제3항에 따라 그 직을 해임한다’는 내용뿐 어떤 이유로 해임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가 전해 받은 것은 전날(4월2일) 오후 6시35분, 국토부 담당 국장으로부터 “5분 뒤 사장님 해임에 대한 전자문서가 전송될 것”이라는 전화 한 통이 전부였다.

최창학 전 LX공사 사장ⓒ시사저널 임준선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무리하게 해고”

당시 국토부가 최 사장 해임에서 문제 삼은 것은 그가 이른 새벽부터 운전기사에게 사적인 용도로 관용차 운행을 지시했다는 등 ‘갑질 행위’였다. 이에 대해 최 전 사장은 “운전기사 자신이 갑질을 당했다 생각하지 않았다는데도 그걸 해임 사유로 삼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진술서에서 해당 운전기사는 “강압적인 업무지시는 없었으며, (최 전 사장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좋았다”면서 “(새벽에 자신을 운동시킨 것이) 갑질이라는 것도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단순히 갑질 행위에 대한 해임 절차상 문제로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공공기관 인사행정 시스템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확인되지 않은 지역 언론 보도를 정부가 그대로 해임 근거로 삼은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 전 사장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고, 이후 2019년 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감찰반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최 전 사장이 해임된 것은 이듬해 3월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 전 사장은 자신의 해임 배후에 류근태 전 LX 상임감사가 있다고 본다. 류 전 감사는 전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생명보험협회, 지역 중소 건설업체에 몸담고 있었으며, 상임감사 재직 전까지는 주로 전북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LX는 전주혁신도시에 있다. 류 전 감사는 전주에 지역구(전북 전주시을)를 두고 있는 무소속 이상직 의원과 전주고 동기동창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감사원의 문책요구서(한국국토정보공사 임원의 인사·예산·계약 과정 등 부당 개입)에 따르면, 류 전 감사는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승진이나 승진 배제를 요구하는 등 인사에 개입했으며, 드론 비행장 부지 매입 명목으로 휴양소 부지 매입을 위한 예산 편성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사 계약에 특정 업체를 알선하는 등 비위 의혹도 지적됐다. 단적으로 2019년 2월 초순경 4년마다 체결하는 업무용 차량 임차계약(4년간 20억여원)을 준비 중이던 LX 관계자를 불러 “내가 잘 아는 업체 중에 ‘에디슨모터스’라고 전기차 생산업체가 있는데 여기 한번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실무자 조사 결과 “이 회사에선 LX가 임차하고자 하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제조하지 않고 주로 버스만 만들어 실제 임대차 계약 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기록돼 있다. 에디슨모터스 강영권 회장과는 연세대 동문이다. 최 전 사장은 ‘일상 감사’의 폐단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독단적인 경영권 행사 견제 차원에서 의사 결정자에게 보고되기 전 감사기구에서 사전에 확인받으라는 제도인데, 여기에 류 전 감사가 자신과 관련한 이권을 개입시켰다는 것이다.

반대로 류 전 감사는 자신의 해임 과정에 최 전 사장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최 전 사장은 “전주 출신 낙하산 감사는 인사 등 공사의 각종 업무에 개입하고 비리 월권을 해 감사원 감사 결과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거쳐 정식 해임됐다. 내가 뒤에서 조종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되레 그는 류 전 감사와 가까운 인사들(신동렬·황인태 전 비상임이사)의 입김이 강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LX 이사회는 사장·부사장·본부장 2명 등 당연직으로 있는 상임이사 4명과 국토교통부 국토정보정책관 등 7명이 참여하는 비상임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황인태 전 비상임이사 역시 전주고를 졸업했다. 최 전 사장은 “류근태 전 상임감사는 주변인들에게 ‘영민이 형’이라며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이 밖에도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연세대 동기동창으로 같은 전주 출신이라고 자랑했다”고 말했다.

결국 시간대별로 다시 살펴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가 먼저 있었고, 그 후 류 전 감사가 이듬해 1월 해임됐으며, 최 전 사장 해임 통보는 그로부터 3개월 뒤였다. 그리고 반년 전 조사 내용이 해임 사유였다. 다음은 최 전 사장의 말이다.

 

“현 정부 공직자 운영 시스템 문제 드러내”

“누가 그러더라. 류근태 전 감사가 청와대에 가서 노영민 전 실장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그런 다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조사가 나왔다(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 소속 홍아무개 조사관, 김아무개 조사관). 조사받은 사람들에게 들은 건데 조사원들이 신문 스크랩한 걸 놓고 형광펜으로 칠해 가며 확인했다더라. 지역 언론에 일방적으로 보도한 걸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그걸 구실 삼아 무리하게 사람을 내쫓는 경우가 어디 있나. 이번 사태는 해임 절차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의 공직자 운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의점 알바생도 이렇게 해고하지 않는다.”

최 전 사장의 해임이 필요했다면 정상적인 절차를 밟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최 전 사장은 “일단 공사 안에는 이사회라는 의결기구가 있다. 거기서 의결된 사항을 국토부에 제청하고, 그런 다음 국토부 장관이 본인 소명을 들은 다음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다. 아니면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 넘겨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와대 조사 직후 국토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해임될 만한 사유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현재 대통령 법률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의 항소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만약 2주 내 항소장이 제출되지 않으면 이번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며 LX는 최 전 사장과 국토부 차관 출신인 김정렬 현 사장 등 두 명의 사장이 동거하는 기형적 구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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