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는 스트레스, 누군가에게는 ‘비즈니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1 11: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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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겪으며 ‘감정 치유’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 각광

지난 2008년 가을, 미국 댈러스에 사는 직장인 알렉산더(Alexander)는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웃에서 버린 가재도구나 전자제품을 모아 자신의 차고를 가정집처럼 세팅한 것이다. 이후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했다. 이들에게 미리 세팅해 둔 도구로 스트레스를 풀게 하고 5달러씩 내게 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여기가 물건을 부수는 곳이냐?”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부부싸움부터 실직, 이별 등 방문 이유도 다양했다. 일부는 평소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상사의 마네킹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사업에 대한 확신을 얻은 알렉산더는 마케팅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공식적으로 ‘앵거룸(Anger Room)을 차렸다. 사업이 인기를 얻게 되자 맞춤형 룸은 최고 500달러까지 받는 종량제 수익모델로 발전했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진로직업체험박람회 참석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퍼포먼스 모습ⓒ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진로직업체험박람회 참석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퍼포먼스 모습ⓒ연합뉴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영업

일본 도쿄에서는 ‘스매싱 플레이스(The Smashing Place)’가 인기를 얻고 있다. 견고한 콘크리트 벽에 공이나 인형을 던지게 하고, 접시나 컵을 깨트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다. 요즘에는 부부간에 차마 하지 못한 욕을 퍼부어대거나, 발로 벽을 차면서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푸는 고객도 느는 추세라고 한다.

이처럼 스트레스 해소를 상품화한 사업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는 추세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브레이크 클럽(Break Club)’, 세르비아 노비사드의 ‘레이지 룸(Rage Room)’ 등 명칭만 다를 뿐 모두 스트레스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들이다. 캐나다 토론토나 호주 시드니에는 좀 더 과격한 모델도 나타났다. 헬멧이나 고글, 부츠 등 보호장비까지 비치했을 정도다.

물론 이들 사업의 목적은 치료다. 하지만 통제된 환경에서 한 행동이라도 과격한 행동을 유발해 더 큰 성격장애로 변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파괴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때려부수기보다는 라켓볼이나 스쿼시 같은 실내 스포츠로 푸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좀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감정 치유 모델로, 199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연 슬픔지원센터(Grief Support Center)가 있다. 슬픈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위와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곳으로 ‘아워하우스(OurHouse)’라는 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슬픔, 외로움, 분노, 그리움, 충격 등 감정을 다스리는  도움을 준다.

일본에는 루이카쓰(涙活), 즉 울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도 있다. 슬픈 동영상을 보여주고, 소감을 공유하며, 자신의 슬픈 경험을 글로 쓰는 게 기본 프로그램이다. 이어 눈물 효과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고, ‘눈물타임’을 거쳐 가벼운 투어로 마무리한다. 최근에는 ‘눈물 소믈리에’라는 민간 자격증까지 생길 정도로 눈물 비즈니스가 확산일로에 있다.

이렇듯 감정의 굴곡을 달래주는 비즈니스가 불확실한 미래, 특히 코로나19 바람을 타고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미국 심리학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미래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불과 1년 전 조사에서 응답률이 6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코로나19 시대, 정신건강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팬데믹 선언 이후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답변 역시 63%로 나타났다.

영국에는 ‘마음챙김 뜨개질(Mindful Knitting)’이 인기다. 일종의 뜨개 테라피인 셈이다. 뜨개질은 15세기 초, 서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퀼트, 방적, 바느질과 마찬가지로 손뜨개는 부자들의 여가 활동 중 하나였다. 당시 영국에는 캡 니터(cap knitter)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였다.

 

뜨개질·인어수영 등으로 영역 확대

우리나라에서도 검색엔진에서 ‘태교’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뜨개질’이 나올 정도로 태교 시기 임신부들이 주로 이용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교육과 완제품 판매 등을 묶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면서 하나의 업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뜨개가 테라피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대상 시장과 콘셉트를 약간 비틀면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마음 챙김’으로서 뜨개질은 최종 제품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접근 방식이다. 짜는 사람이 바늘 움직임에 집중하면 요가나 명상처럼 감정이 진정된다는 점은 영국의 관련 전문지에 발표된 많은 논문에서 확인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작된 ‘인어수영(AquaMermaid)’도 감정이완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소규모 그룹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인어꼬리를 입고 1~2시간 동안 인어수영을 배우고, 게임, 사진촬영 등 이벤트로 이어진다. 피트니스의 또 다른 모델이지만 감정 치유에 효과가 크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일본의 포노(PONO)라는 기업은 스트레스 해소 투어라는 콘셉트로 여행자를 끌어모으는 중이다. 현지 도착 후 스트레스 검사와 건강 체크(문진)를 실시하고, 미니 워크숍, 식사, 자연활동 등이 모두 스트레스 해소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일본의 또 다른 기업 ‘스포츠 원’에서는 달리기와 줄넘기 등 가벼운 운동과 정신건강 훈련 등을 묶어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업체에는 개인보다 기업의 의뢰가 많다. 일본이 2015년 말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스트레스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어 활성화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심근경색, 생리질환, 치주질환 등 웬만한 질병으로 병원에 가면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줄이라”고 조언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건강은 물론 육체건강까지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만큼 적절히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만큼 비즈니스의 기회는 더 열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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