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으로 간 《서복》, 룰은 새롭게 짜인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4 12: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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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산업 ’지각변동’
《서복》의 행보가 조명되는 이유

넷플릭스가 잉태한 《옥자》는 2017년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옥자》의 극장-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동시 개봉 추진을 두고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섰다. ‘선(先) 극장 개봉 후 홀드백(개봉 3주 후) 기간을 거쳐 인터넷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전통적인 영화 개봉 방식에서 벗어난 《옥자》가 영화산업 생태계와 유통 질서를 훼손한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옥자》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보이콧 속에 단관 극장에서만 관객을 만났다.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옥자》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 스트리밍과 극장은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공존하느냐가 문제이며 《옥자》가 그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서복》의 스틸컷ⓒCJ ENM, 티빙 제공
영화 《서복》의 스틸컷ⓒCJ ENM, 티빙 제공

《서복》은 왜 티빙을 택했나

그리고 4년이 지났다. CJ ENM이 투자배급한 영화 《서복》이 극장과 토종 OTT 티빙(TVING)에서 동시 공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OTT-멀티플렉스 극장 동시 출격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사냥의 시간》 《차인표》 《콜》 《승리호》 등이 넷플릭스행을 선택했지만, 그 대가로 극장 개봉을 포기해야 했다. ‘극장을 배제한 공개’가 넷플릭스가 내건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기대작들을 OTT에 빼앗긴 극장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OTT에 공개된 후라도 극장에서 개봉해 주길 바란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짐작하겠지만, 멀티플렉스가 《옥자》를 보이콧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완벽한 상황 역전이다.

알다시피 그 배후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있다. 이 팬데믹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극장가도 이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극장 관객은 급감했고, 신작 영화가 연쇄 이탈했고, 재고가 쌓이면서 투자도 얼어붙었다. 극장의 위기는 OTT엔 기회였다.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던 대작들이 하나둘 극장을 포기하고 OTT로 행로를 변경했다. 관객의 이목을 끄는 영화들의 연쇄 이탈 속에 극장 상황은 더 악화됐다. 코로나19가 극장 중심으로 짜인 영화산업을 뒤흔들며 OTT를 미디어 시장 재편의 인기 아이돌로 끌어올린 것이다. ‘극장 vs OTT’의 팽팽했던 균형의 추 역시 OTT로 크게 기울었다.

그래서다. 《서복》의 행보에 많은 이목이 쏠리는 건. 먼저 눈에 띄는 건 티빙이다. 티빙은 CJ ENM 자회사다. 지난해 10월 CJ ENM으로부터 물적 분할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올해 1월엔 JTBC 스튜디오를 공식적인 새 식구로 맞았다. 막강한 플랫폼 파워를 갖춘 네이버와도 지분 맞교환을 통해 동맹을 맺었다. 이 모든 건, 나날이 커지는 OTT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이었을 것이다.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는 티빙을 두고 일각에선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것이란 시각도 나왔다. 문제는 콘텐츠다. 대항마가 되기 위해선 대중의 이목을 끌 필사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공유와 박보검, 이용주 감독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서복》은 티빙으로서는 결과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카드다.

CJ ENM 입장에서도 전략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자회사의 경쟁력 확장을 도우면서, 극장 개봉에 대한 위험도를 낮추고 제작비 보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개봉작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극장의 경우 최선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차선은 될 수 있다. OTT로 흡수될 관객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적어도 《사냥의 시간》 《차인표》 《콜》 《승리호》 때처럼 앉아서 구경만 하지 않아도 된다. 신작 개봉 유도를 위해 최근 부율(극장 수익 배분 비율)까지도 투자배급사와 제작사에 유리하게 조정하며 자세를 한껏 낮췄던 극장으로서 《서복》은 어떻게든 잡고 싶은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게 촘촘하게 맞물린 데는 《서복》이 영화 투자와 배급, 극장 사업까지 아우르는 CJ 계열 영화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자사 OTT에 태워 극장과 동시 공략하는 전략은 할리우드가 한발 앞선다. 워너브러더스는 지난해 《원더우먼 1984》를 극장과 자사 OTT 서비스 HBO 맥스로 동시 공개했다. HBO 맥스의 1260만 가입자 중 절반이 《원더우먼 1984》를 시청했다. 가입자 수 역시 《원더우먼 1984》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원더우먼》은 3편 제작을 이미 확정한 상태다. 반면 디즈니는 코로나19로 북미 극장이 셧다운되자 《뮬란》과 《소울》의 미국 개봉을 포기하고 디즈니 자체 OTT 플랫폼인 디즈니+(디즈니 플러스) 공개를 선택했다. 동시에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를 하지 않는 국가에선 극장 개봉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온·오프라인을 공략했다. 팬데믹이 영화계의 개봉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극장과 OTT는 상생할 수 있을까

선례의 힘은 세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주로 사용해 온 ‘OTT 독점 공개’ 방식에서 벗어나 ‘극장-OTT 동시 공개’를 선택한 《서복》의 결과는 앞으로의 영화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당장 개봉 대기 중인 CJ ENM의 또 다른 대작 《영웅》(윤제균 감독) 등이 《서복》처럼 극장-티빙 동시 공개로 방향을 틀 수 있다. 더 멀리 보면, 영화 소비 환경 변화와 맞물려 영화 제작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이미 넷플릭스로 간 한국영화들을 통해서도 증명된 것으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동안 재주는 한국 제작사들이 부리고, 돈은 미국에 본사를 둔 넷플릭스가 벌어간다는 일각의 반응이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토종 OTT는 한국 제작사들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을 여지도 크다.

그래서 《서복》의 행보는 여러모로 흥미롭고, 결과는 궁금하다.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데도 관객은 극장으로 향할까. 티빙은 《서복》으로 가입자를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극장과 OTT는 상생이 가능할까. 봉준호 감독의 말을 다시 호출해 본다. “결국 스트리밍과 극장은 공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공존하느냐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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