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를 위로하는 미술의 역할
  •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4 11: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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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작가 23인 작품 품은 ‘2021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속에서 일 년을 보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런 시절을 건너가면서 ‘미술의 역할이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과연 미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은 정신에 호소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는 데 큰 공헌을 해 왔다. 교육적 기능으로 정신의 영토를 넓혀왔다. 때론 이념의 옷을 입고 대중을 선동했고, 종교적 상징으로 둔갑해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아이디어를 앞세워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로 환영받았다. 자본주의가 번성하는 이 시대에는 돈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미술의 기본적인 본성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술을 뜻하는 ‘아트(art)’의 어원도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술’에서 나왔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장식적 욕구에 반응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미술은 장식품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가장 설득력이 크다.

2019년 3월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2019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이 성황리에 열렸다.ⓒ시사저널 임준선

팬데믹 시대에 예술의 역할은 ‘감성적 위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미술의 장식적 기능은 유효하다. 인간의 원초적 시각 욕구인 아름다움을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은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정신적 서비스업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장식적 요소로 위로하는 역할에 충실한 그림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미술은 해독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는 지식 허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미술의 가치 척도로 보편화돼 있다. 이는 지식의 영역을 가리킨다. 지식으로 미술을 재단하는 모순의 말이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감성의 영역이지, 지식을 추구하는 이성의 울타리에 속하지 않는다.

지식으로 진실을 밝힌다는 그럴싸한 이념을 앞세웠던 미술은 언제나 역사에서 실패했다. 독일의 나치 시대와 이탈리아 파시즘, 공산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이를 말해 준다. 이념이 번성한 시대에 미술은 피폐했다.

세계적 재앙을 극복하는 방법은 각기 달라야 한다. 의학은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어내는 일로 직접적 역할을 수행한다. 언론은 실제 상황을 가감 없이 세상에 알려야 한다. 종교는 일상에 지친 영혼을 치유하고, 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역할은 정신을 다독여주는 감성적 위로가 효과적이다. ‘2021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展’에 선보이는 작가들의 작품도 그런 역할에 충실하다. 긍정 바이러스로 무장한 그림들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전시다.

먼저 인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로 아름다움에 접근하는 작가들이 있다. 물의 속성을 응용한 자개의 느낌으로 그릇을 표현하는 남여주는 사람의 모습을 그릇의 모양과 크기로 은유한다. 흰색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한 추상회화를 보여주는 남정임은 인간관계를 투영한다. 팝아트적 인물화로 주목받는 문선미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역시 팝아트적 요소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재은은 기성품에 의미를 덧입히는 작업을 한다. 이에 비해 심각한 인물화로 우리 시대 인간을 표현하는 송인은 초상의 의미를 새롭게 보여주며, ‘식물원 작가’로 알려진 윤선홍은 식물의 상징성으로 인간 군상의 의미를 찾는다.

(왼쪽부터)정기준 《객관화되지 않은 정물》 ,김종규 《흐린 오후》 ,문선미 《I am beautiful》, 이정인 《BLUE FISH》, 장명균 《스미다-붓꽃》ⓒ시사저널 임준선

3월 24~29일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

다음으로는 독자적 소재와 기법을 내세워 아름다움의 영역을 넓히는 작가들이 있다. 유화물감의 질감을 한껏 부각해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정기준과 김숙은 전통적 회화의 맛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이향지는 양배추의 단면에서 보이는 규칙적 장식성에 주목하며, 권두현은 흔들리는 화면을 연출하는 기법으로 자연 속에 흐르는 공기와 바람의 느낌을 포착한다. 폐목을 이용해 물고기를 표현하는 이정인은 장식적 조형성과 역동적 화면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가들의 공통적 화두 중 가장 많은 것이 정체성의 문제다. 이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해답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은 모두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다. 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 삶일 것이다. 자전적 성격의 작업으로 이 같은 정체성의 문제에 도전하는 작가들도 전시에서 선보인다. 자신의 현실적 삶을 초현실적 공간으로 표현하는 권주안은 그림 그리는 일 자체에서 위로를 얻는 작가다. 서정배는 매일 평탄하게 반복되는 자신의 일과를 드로잉한다.

신세대 감각으로 새로운 표현 영역에 도전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손하원과 류혜린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손하원은 컴퓨터를 표현 도구로 회화와 사진을 조합하고, 류혜린은 퍼포먼스의 흔적을 회화로 옮겨내는 신체 드로잉 작업을 한다.

수도자의 고통을 연상시키는 박해수의 작업은 자신이 개발한 도구로 선을 찍어내는데, 무수히 많은 선을 겹쳐 추상적 화면을 연출한다. 전통 회화 기법으로 식물의 일부분을 확대하는 장명균은 색채의 우러남을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전통적 아름다움을 이 시대 감성으로 번안해 내는 작가들이 있다. 전통 채색화의 장식미에 키치 요소를 결합하는 정선아는 현대 채색화에 도전한다. 김종규의 작업은 모노톤의 풍경 사진처럼 보이지만 전통 수묵 기법에서 현대적 감성을 포착할 수 있다.

전통 옻칠과 자개 기법을 응용해 장식성이 강한 정물화를 보여주는 이상의는 품격 있는 우리 미감의 가능성을 보여줘 대중의 선호도도 높다. 역시 전통 주제인 십장생의 의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김근정은 독자적 화면 구성과 색채의 세련미로 주목받는 작가다. ‘이야기 그림’으로 알려진 박석신은 조각 그림 기법으로 전통 이야기와 조선시대 회화를 재해석하며, 클래식 음악에서 나오는 감동의 파장을 전통 회화 기법으로 표현하는 최순녕의 회화는 동서양 예술이 지향하는 공통적 미감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전시는 3월24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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