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보선] 최악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9 14: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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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서울시장 보선 ‘박영선 대 오세훈’ 대결의 명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다. 선거전 초반만 해도 줄곧 선두를 달리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결국 단일화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세운 벽을 넘지 못한 것이었다. 안철수에 대한 김종인의 철저한 무시 전략은 중도보수층 유권자들로 하여금 ‘누가 되든 우리 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차단시켰고, 안철수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을 경우의 혼란에 대한 불안감을 낳았다. 게다가 큰 꿈을 가진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되면 혹여 차기 정권교체 과정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 TV토론에서 실패해 여당 후보에게 역전당할 우려, 기호 4번 후보가 갖는 왜소함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작용해 오세훈으로도 이길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기호 2번 쪽으로의 지지가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사실상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로 압축되었다. 4월7일 밤 과연 누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될 것인지, 서울만이 아닌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 최대 격전지인 서울에서의 승부는 대선 판세에도 민감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 선거 결과에 따른 정국의 큰 변화 또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22일 서울 광진구 자양한양아파트 정문 앞에서 지지자들과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새로움을 발견할 수 없는 선거에 착잡한 현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을 종합하면 이번 선거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우세해 야당 후보가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년도 지나지 않은 21대 총선 때와는 반대의 기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야당심판론이 우위를 점하고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여권의 압승을 가져왔던 그때와는 달리, 서울과 부산 모두 여당 후보가 고전하는 판세가 나타나고 있다. 남은 선거 기간 동안의 판세 변화 여부를 지켜봐야겠지만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던 여당이지만, 그 뒤로 계속 오만과 독선의 태도를 보여준 데 따른 민심이반 결과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야 후보들의 본격 경쟁의 열기와는 달리,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많이들 착잡한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없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내로남불’과 오만으로 일관해 온 정권의 심판을 위해서는 야당 후보를 찍어야겠지만, 야당 또한 크게 달라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현실 앞에서 많은 시민이 주저하는 모습이다. 이럴까, 저럴까 모두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 이번 선거가 많은 유권자에게 안겨주는 딜레마다. 집권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민심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여당의 모습에 답답한 선거가 되고 있고, 집권 세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썩 내키는 선택을 하기 어려운 선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운데)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3월10일 서울 명동을 방문해 상가 관계자들과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불변의 지지자들이 아니라 냉정한 중도층의 역할이 중요 

민주주의는 책임의 정치이며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선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당과 후보들은 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선출된 권력들은 흔히 책임의 윤리를 망각한 채 자신들의 정치적 이권과 기득권을 지키는 데 몰두한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정파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갇혀버린 권력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선거다. 일찍이 장 자크 루소는 인민의 일반 의지를 대변할 적절한 대행자를 찾는 대의민주제를 말했지만, “주권은 양도될 수 없다”며 대행자의 권한에 분명한 한계를 지었다. 그런 루소에게 “대의자들은 단지 인민의 대리인일 뿐”(루소의 《사회계약론》)이다. 그래서 루소는 인민들이 대표자들의 행위에 대해 사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주문했고, 가급적 선거를 자주 할 것을 요청했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해 한시적으로 권력을 위임한다. 그리고 권력을 위임받은 대행자들이 소명을 제대로 이행했는지에 대한 책임을 다시 선거를 통해 묻는다. 그래서 “민주주의란 국가라는 땅의 주인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체제다.”(홍일립의 《국가의 딜레마》) 대행자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면 선거를 통해 그 책임을 물음으로써 민주주의는 주권자의 뜻에 맞게 유지될 수 있다. 어느 정당이 잘못하면 다른 정당으로 권력이 넘어갈 수 있다는 긴장이 유지되어야 좋은 국정이나 시정을 위한 경쟁이 가능해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날 줄 모르는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이 있으니 아무리 잘못해도 권력은 유지된다는 착각에 빠지면, 그 권력은 오만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는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한 불변의 지지자들이 아니라, 선거 때마다 그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심판하는 중도층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시민들은 여야 정당이 그동안 보여온 모습들을 냉정히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심판하는 역할을 수행할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보궐선거가 갖는 근본적 한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뜻 내키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선거 구도의 문제가 그것이다. ‘차선(次善)’도 아니고 ‘차악(次惡)’을 선택한다는 심정으로 투표장으로 가는 선거는, 여야의 어느 후보가 승리하든 간에 우리 정치의 우울한 단면일 수밖에 없다. 1년 뒤면 다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그때는 또다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 내가 흔쾌히 지지하는 후보를 찍을 수 있는 선거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 불문하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식상한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는 선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지체되어 있는 한국 정치인가. 여권은 ‘86정치’의 장기집권이 끝을 모른 채 계속되고 있고, 야권은 낡은 보수를 대표하던 올드보이들이 건재하다. 이제 그들 다음 세대 정치인들에 의해, 세대교체의 반란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1년 뒤의 변화를 기다리면서도 당장은 현실 속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다지 지지하고 싶은 정당과 후보가 없다고 해서 기권하겠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차선조차 안 보인다면,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태도다. 그리고 어쩌다가 이런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는지를 잊지 않는 것도 시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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