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공장만 우후죽순…난개발에 사라지는 울산 공해차단녹지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4 13: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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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울산시의 수상한 행정”

집 안 공기가 탁하면 창문을 열어 환기하지만, 바깥 공기가 나쁘면 창문을 닫거나 차단막을 친다. 유해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공단지역 배후에는 완충녹지를 조성·유지해 공해 피해를 줄인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완충녹지는 대기오염·소음·진동·악취 등 공해 방지를 위해 보존하거나 조성된 녹지를 말한다. 환경 피해의 최후 방어선인 셈이다. 그런데 울산시가 공해차단녹지에 ‘칼질’을 하고 있다. 아파트 건립과 공단 확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완충녹지를 없애면서 밀어붙일 정도로 시급한 개발인가?’ 여론은 싸늘하다. 무분별한 난개발이란 지적이 대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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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점선 안에 위치한 울산 야음근린공원 83만㎡ 부지에 공공임대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자 울산 지역 시민·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다ⓒ울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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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가스복합발전소가 들어설 부곡용연지구는 산림지역으로 울산석유화학공단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어 이곳이 개발되면 오염물질이 날아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울산시 제공

공해차단녹지에 대규모 아파트 건립 추진

울산 야음근린공원은 환경오염의 진원지로 알려진 석유화학공단과 직선거리로 1km 정도에 있다. 이곳에 대규모 임대아파트 건설이 추진 중이다. 사업시행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야음근린공원은 지난해 7월 ‘공원 일몰제’ 적용으로 개발행위가 가능해졌다. LH는 공원 해제와 동시에 83만6564㎡ 부지에 공공임대아파트 3500여 가구를 지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LH는 2019년 12월 국토부로부터 사업지구지정을 받은 데 이어 2020년 12월 개발승인을 신청했다. 울산시도 환영 의사를 밝혔고, 현재 개발계획 승인신청 절차가 진행 중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서민 주거 문제 해소를 위해 공공개발이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야음근린공원은 인접한 울산석유화학단지에서 나오는 유해화학물질을 막아주는 ‘공해 필터’다. 고호근 울산시의원은 “공해차단녹지 자리에 아파트를 건립하는 건 시민들을 공해 속에 가두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인근 100개 기업체의 공장장 모임도 “공단과 주거지역 간 이격거리가 짧아져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업으로 없어지는 녹지는 110만여㎡에 달한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울산의 마지막 허파인 공해차단녹지를 없애는 난개발을 즉각 중지하라”며 “울산시와 LH가 마치 일몰제를 기다렸다는 듯이 개발계획을 발표했다”고 비난했다.

야음근린공원 인근 공장에서는 하루 종일 유독성 대기가스를 내뿜고 있다. 유화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Volatile Organic Compounds)인 벤젠·포름알데히드·톨루엔 등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다. 그야말로 인체에 치명적이다. 양성봉 울산대 화학과 교수는 “야음근린공원이 사라지면 시민들은 유해화학물질에 그대로 노출돼 건강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LH는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울산시도 공론화는커녕 시의회에 공식적인 설명 한 번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사회 분위기는 반대 여론이 지배적이다. 울산생명의숲과 울산기후위기비상행동은 개발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울산 여성단체들도 공단 부근 아파트 건립계획을 백지화하고, 울산시가 시민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여론에 떠밀려 울산시도 한 걸음 물러났다. 지난 2월8일 LH에 ‘사업 일시 중단’을 건의했고, 공론화를 위해 갈등영향분석 용역 결과를 참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울산시가 완충녹지 개발에 앞장선다는 여론을 희석하려는 ‘꼼수’라며 결국 아파트 건설에 동조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단 내 완충녹지도 수난을 겪고 있다. 울산도시공사는 남구 부곡동 61만5798㎡ 일대에 2000여억원을 들여 산업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승인기관은 울산시다. 올해 1월 착공해 2023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여기에 SK가스의 1000㎽ 규모 LNG발전소가 들어설 계획이다. 앞서 SK에너지는 지난 2012년 이곳에 유화공장을 지으려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에 봉착했다. 총대를 메고 나선 건 울산도시공사였다. 부족한 공장용지를 확보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재벌기업과 울산시가 7년 만에 손잡고 나선 상황이다.

해당 부지는 석유화학공단을 끼고 있는 '숲 지대'다. 화학공장에서 나오는 각종 발암물질과 고농도 미세먼지가 도심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차단녹지'로서 '도심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부곡·용연지구 조성이 완료되면 울산미포국가산단 녹지비율은 현재 8.45% 수준에서 현저히 줄어든다. 울산생명의숲 관계자는 “숲을 없애고 공장이 들어서면 오염물질 배출량은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 차단녹지마저 사라지면 울산 전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울산 남구청은 지난 2003년 이 일대에 편백과 해송 등 8100여 그루를 심었다. 완충녹지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국산지협회가 공단 개발을 위한 산지 전용 조사를 한다며 나무를 마구 베어내 숲이 완전히 망가졌다. 도시공사는 “타당성 조사를 위한 불가피한 사항으로 법적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2019년부터 오염물질 저감 차원에서 1000만 그루 식수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윤정록 울산시의원은 “녹지 보전인지 파괴인지, 시정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한편에선 숲 조성을, 다른 한편에선 대규모 녹지 파괴를 계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호근 울산시의원은 “울산시가 공단 속 녹지까지 헐어내면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투성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울산시의 이중적 행보 속에 공해차단녹지를 굳이 공장부지로 쓰려는 SK의 집착 또한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김석택 울산대학교 산업경영공학부 환경안전 전공 교수는 “완충녹지가 없어져 공단 오염물질과 악취 등이 시민들을 덮치면 민원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기업도 마음 편히 공장을 가동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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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지역 3개 여성단체가 야음근린공원 개발계획 무효화를 촉구하고 있다.ⓒ울산여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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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기후위기비상행동은 “야음근린공원 터를 공해 차단을 위한 도시 숲 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촉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울산여성회 제공

가공업체 줄었지만 오히려 녹지 개발 늘어 

온산공단 녹지 비율이 격감하고 있다. 울산시에 따르면 1974년 공단 조성 당시 24%였던 녹지가 2010년 3.2%로 줄었다. 2020년에는 2%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최근 5년 사이 완충녹지 22곳 79만8000여㎡가 해제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울산 지역의 개발행위허가 면적은 2853건에 60.6㎢다. 인천 다음으로 많았다.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증가 추세다. 개발행위가 이뤄진 곳은 그린벨트와 공원 해제 지역, 차단녹지 지역 등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울산미포·온산 국가산업단지 가동업체 수는 758개로 1년 전보다 144개 줄었다. 기업들이 속속 떠나면서 빈 부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울산시는 완충녹지를 없애가면서 공단 확장을 강행해 의혹을 사고 있다.

울산 지역 5개 지구에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가 건립 중이다. 올해부터 신규 아파트 분양물량도 쏟아지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을 시점도 멀지 않았지만, 울산시는 완충녹지를 공원에서 해제해 LH에 아파트 부지로 제공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완충녹지는 ‘공해 필터’다. 숲은 오염물질과 미세먼지를 걸러준다. ‘숲세권’이 살고 싶은 곳으로 인기가 높은 이유다. 탄소 배출량 1위 도시 울산은 ‘대기보전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1㏊ 숲은 대기 중 오염물질을 연간 168㎏ 줄인다. 하지만 울산시가 공해차단녹지를 없애가며 ‘과잉개발’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울산의 원로 경제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수상한 행정”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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