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마주 보고 폭주하는 중국과 서구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6 10: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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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등 ‘인권 문제’ 對中 제재 공동대응 나서…中, 글로벌 기업 제품 불매운동 맞서

3월29일 오전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먼(朝陽門) 거리의 외교부 청사. 한 회의실에 특별한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베이징에서 여객기로 4시간이 걸리는 신장(新疆)위구르족 자치구에서 온 인사들이었다. 비록 참석자들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그중 중앙아시아 혈통의 외모를 가진 위구르족 인사들은 단연 눈에 띄었다. 그들이 외교부를 찾은 이유는 베이징 주재 외국 언론매체 기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외교부가 신장자치구 정부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장의 종교계·여성계·교육계 등의 관계자들까지 참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는 한족 관료가 주도했다. 쉬구이샹 신장자치구 정부 대변인이 먼저 신장의 발전 상황을 소개했다. 그 뒤 유럽연합(EU)·미국·영국·캐나다 등 서구 국가들을 성토했다. 쉬 대변인은 “신장에서 제노사이드(인종 청소)나 인권 침해가 자행되거나 강제노동이 이뤄진다는 얘기는 서구의 반중(反中) 세력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 기자가 ‘H&M·나이키 등 글로벌 브랜드 기업이 신장 면화의 구입을 중단’한 상황에 대해 묻자 쉬 대변인은 언성을 높였다. 그는 “서구 국가들이 제재라는 몽둥이를 휘둘러서 우리를 때려눕히려 한다”고 비난했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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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외교부에서 벌어진 중국의 ‘선전전’

오후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도 글로벌 브랜드의 신장 면화 구입 중단 문제가 주요 사안으로 다루어졌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한 중국 기자의 질문에 “한쪽에서 중국 소비자의 돈을 벌면서 다른 한쪽에선 중국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고 서구 기업들을 비판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앞장서 외국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주도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외국 기업들이 거짓에 근거해 신장 면화의 사용을 거부했기에 중국 민중의 반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강변했다. 자오 대변인은 오히려 “정부가 굳이 나서서 선동할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날 외교부에서 벌어진 일들은 중국의 선전전이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위구르족을 병풍 삼아 중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정례 브리핑에서는 중국 기자를 앞세워 중국 정부의 변명을 되풀이했다. 언론 접촉을 프로파간다 무대로 이용한 사례다. 중국이 이 같은 이벤트를 벌인 이유는 3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EU는 신장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을 문제 삼으며, 관련 인사와 기관의 재산을 동결하고 입국을 제한하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왕쥔정 신장생산건설병단 당위원회 서기, 천밍거우 신장공안국장 등 4명과 신장생산건설병단 공안국이 대상이었다.

몇 시간 뒤 미국도 왕쥔정과 천밍거우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이미 천취안궈 신장자치구 당서기와 주하이룬 전 신장당위원회 부서기, 왕밍산 신장정법위원회 서기 등을 제재했다. 근거는 심각한 인권 탄압과 부패에 관여한 인사의 미국 재산을 동결하고 입국을 제한하며, 미국 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글로벌 마그니츠키 인권책임법’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던 EU가 이번엔 적극 참여했다. 게다가 같은 날 영국과 캐나다도 EU와 똑같은 제재안을 발표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전광석화와 같은 대중(對中) 공격이었다.

실제로 이날 제재는 서구 각국이 조율을 통해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신장과 전 세계의 심각한 인권 침해와 싸우기 위한 노력에서 미국은 강력한 리더십을 계속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 제재를 위해 수일간 유럽 국가들과 접촉했다. 제재 발표 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에 대한 추가 조치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또한 미국·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등의 외교장관들도 “중국의 신장 인권 문제에 관한 우려에 대해 하나로 뭉쳐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서구 진영이 합심한 이번 조치는 3월19일, 1박2일간의 미·중 고위급 회담이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하며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성사됐다. 특히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22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유럽을 방문한 날에 전격 실행됐다. 이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내세운 ‘동맹 복원’ ‘인권 중시’ 기조와 관련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참모들은 지난해 8월부터 이미 신장에서 벌어지는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면서 비난해 왔다. 또한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중국에 맞서겠다”고 대선 때 정강에 규정했다.

미국의 입장 변화는 이전 행정부와 차별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중 제재에 적극 나섰지만 미국 일방주의에 함몰됐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벌이는 국가 시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견제하는 데 집중된 측면도 컸다. 그에 반해 바이든 행정부는 서구 진영 대 중국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 덕분에 EU의 동참을 끌어냈다. EU가 인권 탄압과 관련해 중국을 제재한 것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한 이래 처음이다. 그동안 EU는 역내 기업의 대중 진출과 시장 개척을 우선시하며 중국과의 대립을 피해 왔다.

 

1989년 이래 처음으로 중국 제재 나선 EU

EU마저 신장 문제를 고리로 제재에 나서자, 중국은 ‘불매운동’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말 신장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구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패션 브랜드 H&M,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이 표적이 됐다. 3월24일부터 중국 네티즌들은 이들 브랜드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H&M 매장이 입주한 건물은 선전 간판을 철거했다. 인터넷 쇼핑몰과 지도 앱에서 H&M이 검색되지 않았다. 심지어 SNS에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 여기에다 30여 명의 중국 연예인이 해당 기업과 광고 모델 등 협력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사실 H&M·나이키 등이 신장 면화를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더 나은 면화 계획(BCI)’과 관련이 있다. BCI는 면화산업의 비영리단체다. 면화 재배 과정에서 농약과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하고 부당한 노동력과 아동의 노동 동원을 방지하며, 공급사슬의 투명성 증진을 목표로 활동한다. 따라서 BCI에는 서구 기업들뿐만 아니라 안타(安踏)·리닝(李寧) 등 중국 기업도 참여했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기업들은 곧바로 BCI 탈퇴를 선언했다. 이런 조치에다 ‘애국상품을 구매하자’는 중국 네티즌들의 성원에 힘입어 기업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중국 정부가 화룡점정을 찍으면서 배후가 분명해졌다. 3월26일 중국 외교부는 영국의 기관 4곳과 개인 9명에 대한 보복 제재에 나섰다. 28일에는 미국의 개인 3명과 캐나다의 기관 1곳을 추가했다. 그러나 서구 진영도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EU는 지난해 12월 중국과 체결한 투자협정 검토 회의를 취소하고 협정에 대한 재고에 들어갔다. EU-중국 투자협정은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연계해 공들여왔던 사안이다. 이에 대해 외신은 “만약 투자협정이 수포로 돌아가면 바이든 행정부에는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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