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위문 공연’에서 시작된 브레이브걸스의 기적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4 12: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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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브레이브걸스 ‘역주행 신드롬’ 어떻게 탄생했나

4년 전 발매한 《롤린(Rollin)》이 역주행해 차트 정상에 오르고, 브레이브걸스는 갖가지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의 주역으로까지 떠올랐다. 요즘 가요계에 자주 등장하는 ‘역주행’. 도대체 무엇이 이런 신드롬을 만드는 걸까. 

새로운 직업을 모색하던 중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가 서른 언저리에 가까워져 있던 브레이브걸스는 더 이상 ‘용감하게’ 걸그룹 활동을 이어가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차였다. 그래서 대표인 용감한 형제와 마지막 미팅을 하기로 했던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4년 전 발표했던 곡 《롤린》이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더니 차트 역주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차트 및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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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 공연 모습ⓒ엠카운트다운 영상 캡쳐

열광적인 군대 리액션에 담긴 청춘들의 공감 

이 기적 같은 일은 이른바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차트를 통해서였다. 열화와 같은 군인들의 환호를 이끌어낸 건 유튜브를 통해 올라온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었다. 브레이브걸스가 국방TV 《위문열차》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때마다 보여줬던 뜨거운 무대 풍경이 그 영상에 편집돼 들어갔고, ‘전쟁 때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 같은 재기발랄한 댓글들이 더해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군 장병들은 일제히 ‘밀어주자’고 한목소리를 내며 유튜브로 집결했고, ‘인수인계’까지 받아가며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지지하고 응원하게 됐다.

그런데 군인들의 이런 지지는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유튜브에 알고리즘을 타고 올라온 갖가지 위문공연 영상들은 브레이브걸스가 얼마나 열심히 위문공연을 다녔는가를 잘 보여줬다. 그간 다닌 위문공연만 무려 62건에 달한다. 화제가 된 백령도 위문공연은 갑자기 몰려나온 장병들로 뽀얀 흙먼지가 피어올라 이른바 ‘매드맥스 필터’로 불리기도 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보여준, 당시 현장에 있던 한 군인이 남긴 댓글은 어째서 이토록 군인들의 마음이 움직였는가를 잘 말해 준다. “진심으로 떴으면 좋겠습니다. 백령도 왕복 시간만 서울에서 12시간 이상 걸리고 섬에서 못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백령도 위문공연을 온 브레이브걸스분들이 새벽부터 휴가 나가는 병사들 사진 다 찍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합니다. 오랫동안 높이 기억에 남는 그룹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혜택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군 장병들의 열광적인 ‘리액션’ 영상이 만든 힘이 적지 않다. 사실 국방TV 《위문열차》에 참여하는 장병의 숫자는 많아야 몇백 명 수준일 것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리액션은 그 자체가 화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롤린》이 그 혜택을 입은 곡이 된 데도 바로 이 리액션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곡의 특징이 한몫을 차지했다. 특유의 시원스러운 청량감이 느껴지는 브레이브걸스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지는 이 곡은 섹시한 춤동작과 묘한 균형감을 이루며, 후렴구인 ‘롤린 롤린 롤린~’을 군 장병 모두가 열광적으로 따라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가오리댄스’ 동작은 마치 유행처럼 곡을 확산시켰다. 

무대 내내 진심이 담긴 행복한 미소를 지어 ‘꼬북좌’라 불리는 유정의 표정은 보는 이들마저 기분 좋게 만들었고, 결코 쉽지 않았던 이 걸그룹의 여정이 뒤늦게 알려지며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청춘들에게 이들이 ‘존버(존중하며 버티기)’의 아이콘이 된 건 바로 이런 미소를 잃지 않고 어디든 불러주면 열심히 뛰어다녔던 일련의 세월들이 마치 청춘들 자신의 고군분투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20~30대들에게 브레이브걸스가 큰 위로를 준 건, 이제 막 사회에 얼굴을 내미는 20대 초년생들이나, 어쩌다 사회에 적응하게 되었지만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30대들에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희망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만두려던 순간에 생긴 기적 같은 반전 스토리에는 그래서 브레이브걸스를 통해 그 성공을 대리 충족하고픈 그들의 욕망이 투영되었다. 군 장병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시작된 역주행의 기적이, 2030 청춘들이 듣고픈 이야기가 되면서 신드롬으로 확장되었다. 노력한 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대중은 브레이브걸스를 통해 그걸 현실로 만들고픈 갈증을 풀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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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 군부대 위문공연 무대를 이어붙인 영상이 역주행의 시작점이었다.ⓒ위문열차 영상 캡쳐

역주행의 기적이 던지는 질문 

최근 들어 ‘차트 역주행’은 마치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주 등장하는 사건이 되었다. 브레이브걸스에 이어 최근 역주행의 주역이 된 건 SG워너비다. MBC 《놀면 뭐하니?》에 나와 불렀던 과거의 노래들, 《타임리스》 《라라라》 같은 곡이 차트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 그런데 이런 차트 역주행이 트렌드처럼 계속 생겨나는 현상은 무얼 말해 주는 걸까. 

사실 차트가 정상적이라면(모든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한 결과라면) 역주행은 없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역주행이 자꾸 생겨난다는 건 차트의 순위 시스템이 대중의 취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괴리를 대중이 나서서 채우고 반영시키는 게 바로 역주행에 담긴 숨은 의미다. 

이것을 브레이브걸스가 2030 청춘들의 위로와 희망의 아이콘이 됐던 그 신드롬과 연결 지어 들여다보면, 차트 시스템처럼 우리네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대중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과연 노력한 만큼 그것이 온전히 결과로 돌아오는 사회인가. 우리네 성공의 사다리는 상식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역주행의 기적에는 이 같은 시스템에 던지는 대중의 질문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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