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공 떠넘긴 바이든…못마땅한 김정은
  •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8 10: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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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대미·대남 도발 감행할까…3중고 겪는 북한, 당장 중대형 도발 감행 어려울 것

여전히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유일신 같은 절대자다. 모든 주민을 다 희생해도 김정은은 지킨다는 것이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대외정책 역시 김정은 정권 유지에 기여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역대 미국 정부처럼 바이든 정부도 일단 기존의 대북제재를 유지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그런데 제재라는 게 김정은에게는 짜증만 나게 할 뿐 직접적으로는 큰 피해를 주지 못하는 반면, 오히려 미국이 지켜주겠다고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주로 피해가 가므로 근본적인 북핵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1월 당대회에서 미국과의 장기전 대비태세를 갖출 것이란 점을 천명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대화 자체를 거부할 것이라면서, 미국에 대해 ‘강대강, 선대선’ 기조를 분명히 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가 제재 완화나 한·미 연합훈련 중단 같은 적대시 정책 철회 쪽으로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북한의 인권 상황만 비난하자, 북한은 지난 3월 두 차례의 단거리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을 시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화의 문은 열어두지만 북한이 도발하면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자, 일단 관망 자세로 돌아갔다. 일각에서는 4월15일 태양절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에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미국이 이에 대비했지만, 김정은은 이를 간파한 듯 도발을 삼갔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대화하고 싶으면 북한이 먼저 나서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내놓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자극하고 있다.ⓒAP연합·평양조선중앙통신
바이든 미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대화하고 싶으면 북한이 먼저 나서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내놓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자극하고 있다.ⓒAP연합·평양조선중앙통신

北, 대화 나서더라도 미국과 먼저 할 듯

4월30일 미국은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를 내놓았다. 하지만 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북한의 선 비핵화 조치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 빅딜 추진의 중간 성격으로 북한을 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으로선 오바마의 정책에 질색했고 트럼프에게 기만당했다는 입장이므로, 바이든의 새 기조 또한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희박하다. 또 미국이 한·미보다 한·미·일 공조를 더 중시하겠다는 입장이니만큼, 일본은 엄격한 비핵화인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더 중시하는 등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 역시 김정은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더구나 미국은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화에 열려 있고, 실용적인 접근을 하겠다는 의사만 내놓은 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북한의 향후 수일, 수개월 동안의 언행을 살피겠다”면서 대화를 하고 싶으면 북한이 먼저 나서라고 북한에 공을 넘기고 있다.

곧바로 북한은 5월2일, 이례적으로 하루에 3개의 성명을 동시에 쏟아내는 공세를 펼쳤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남한을 겨냥했다. 일부 탈북자의 대북전단 살포를 한국 정부가 방관한 책임이 크므로 상응 행동을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6월 김여정의 비난 성명 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완파한 경험을 떠올리면, 미국을 향한 다른 두 외무성 성명과 달리 김여정은 자신의 담화를 노동신문에 게재해 주민들에게도 알렸다는 점에서 향후 대남 도발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권정근 외무성 북미국장은 “바이든이 의회 연설에서 북한의 ‘심각한 위협’에 대해 ‘외교와 단호한 억지’로 맞서자고 한 것은 ‘큰 실수’”라면서 ‘심각한 상황 직면’을 위협했고, 외무성 대변인은 미 국무부가 인권주간 행사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비난한 것을 ‘최고 존엄에 대한 도전’이자 ‘전면대결 준비 신호’라고 규탄했다.

북한은 지난해 수해와 태풍으로 농사에 실패했고, 현재 엄혹한 대북제재를 받고 있으며, 코로나19로 국경을 닫고 중국과의 무역도 단절하는 등 3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에 자칫 추가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중대형 도발을 당장 감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미국과의 대화에 선뜻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대화에 나선다 하더라도 먼저 미국과 시작할 것이고, 북·미 관계 재개가 선행된 뒤라야 남북관계 재개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文 정부, 北 추가 도발 자제하도록 설득해야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로 북핵 문제를 타협하기 위해선 몇 가지 선행 과제 해결이 필요하다. 우선 체제 위기에 처한 북한에 대해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북·미 관계만 경색될 것이므로 오히려 북·미 관계를 개선하면서 인권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합의를 어느 정도 지켰고, 오히려 미국이 기만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원점에서부터 다시 협상하자고 하면 협상이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북한의 안보 딜레마 상황을 경시한 채 일괄 타결하자거나, 중단거리미사일과 화생방무기까지 포기해야 한다거나, 처음부터 북한의 모든 핵을 신고하고 검증을 받으라고 하면 협상은 초반에 결렬될 것이다.

이란과의 핵 합의 복원 진행 상황도 북핵 협상에 영향을 줄 것이다. 미·중이 대립하는 것은 북핵 문제에 악재인데, 그나마 이 문제에서는 미국이 중국과 협력한다고 해서 희망을 준다. 끝으로 7월 도쿄올림픽이 개최되면 북한의 불참을 번복시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개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만약 미국이 신경전만 지속하고 북한이 먼저 대화에 나오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북한은 핵 억지력을 강화하고 존재감을 과시하며 주민들을 통제하고 결속하는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북·미 간 정면 대립 국면이 조성되고 남북 간에는 언술을 넘어 행동으로 대결 양상이 표출될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최악의 국면에 도달하기 직전 다시 북·미 간이나 남북 간에 대화를 통한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꽤 크다고 예견되지만, 이를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반도 안보 위기 상황이 재현되지 않고 북·미 대화가 재개되도록 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을 향해 강온 양면책으로 추가 도발을 자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구체적인 방법론 협의 과정에서도 미국을 적극 설득해 2018년 트럼프-김정은 싱가포르 합의 준수를 공표하고 종전선언 용의를 표명하며,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될 뻔했던 수준에서 북·미 협상이 재출발하도록 하는 것이 요망된다.

또 북·미 회담이 재개되면 제재 완화를 최대한 활용하고, 북한의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북한을 점진적·단계적 비핵화로 이끌며, 사찰과 검증은 양측 간 신뢰가 조성되는 수준에 따라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김정은의 도발을 방지하는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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