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찾은 경주 위덕대 학생들, ‘망언 교수’ 대신 사과 [5·18민주화운동 41주기]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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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대 총학, 5·18민주묘지 참배…“광주에 죄송”
17~8일 광주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순례길’

“5·18 망언 스승 대신 사과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내리는 17일 오후 1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검정색 정장을 입은 14명의 남녀 대학생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헌화를 위해 추모탑 앞에 섰다. 이들은 경북 경주의 위덕대학교 총학생회 임원들이다.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왜곡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같은 학교 경찰행정학과 박훈탁 교수의 망언을 대신 사과하기 위해 직접 광주를 찾았다. 이들은 한 달 전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에게 사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광주를 방문한 것이다.

위덕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펼친 현수막에는 ‘위덕대 총학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순례길’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국립 5·18 묘지를 참배하고, 오월 영령 앞에 고개를 숙여 스승의 잘못을 대리 사죄했다. 

5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경북 경주 위덕대학교 총학생회 학생들이 박훈탁 교수의 5·18 망언을 사죄하고, 참배하기 위해 추모탑으로 향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월 17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경북 경주 위덕대학교 총학생회 학생들이 박훈탁 교수의 5·18 망언을 사죄하고, 참배하기 위해 추모탑으로 향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 망언은 기성세대의 잘못된 역사인식 문제”

위덕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새벽 포항을 출발해 5·18기념재단의 안내에 따라 이날 오전 9시께 5·18자유공원(옛 상무대 영창)을 둘러본 뒤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학생들은 또 화순 주남마을 학살사건 희생자 박현숙 양,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어린이 희생자 전재수 군의 묘를 차례로 둘러봤다.

이후 광주시 북구 망월동 민주민족열사묘역(5·18 구묘역)도 찾은 뒤 유가족들과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저녁에는 금남로에서 열린 전야제에도 참석했다. 이들이 출발한 포항에서 광주까지 거리는 300여km로, 버스로 5시간이 소요된다. 이날 ‘용서와 화해의 순례길’을 주선한 5·18기념재단 측은 학생들의 광주 방문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학생들은 박 교수를 대신해 해당 발언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다영(여·24) 총학생회장은 “학내 박훈탁 교수가 빚은 5·18 망언 물의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교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며 “광주에 진심으로 죄송하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신 사과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죄가 잘못 인식돼 온 문제들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학생들의 진심 잘 이해되길…영남에 5·18 알릴 것”

이들은 광주 방문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는 계기로 삼고, 영남지역으로 돌아가 5·18을 알리고 미얀마 사태에 대한 지지활동을 펼쳐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위덕대는 최근 전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미얀마 반대 챌린지를 시작했다. 

차승훈 에너지전기공학과 학회장은 “이번 총학의 광주 방문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계기로 위덕대 학생들의 진심이 잘 이해됐으면 한다”며 “학교 교수의 5·18 망언에 대해 위덕대를 대신해 찾았지만 5·18 당시의 참혹함을 유가족들 등을 통해 직접 듣게 됐다. 영남지역에 있다 보면 5·18을 한국사 시험의 일부분 또는 역사적 사건으로 밖에 느낄 수 없지만 이번에 역사가 아닌, 현실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5월 17일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한 경북 경주 위덕대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오월 영령에 대해 참배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월 17일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한 경북 경주 위덕대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오월 영령에 대해 참배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박훈탁 위덕대 교수 “5·18은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 

앞서 박 교수는 최근 ‘사회적 이슈와 인권’ 과목 온라인 강의에서 사전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설명하며 “5·18은 북한군이 저지른 범죄이자 시민 폭동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다”라는 망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박 교수의 발언이 알려지자 5.18기념재단과 오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물론 대구지역 시민단체들도 “반민주적인 5.18민주화운동 폄훼, 왜곡 강의”라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이에 위덕대 학생들은 5·18행사 때 광주를 찾아 5·18기념재단과 5월 관련단체 관계자 등에게 사죄하기로 약속했다. 박 교수의 망언에 대해 대학 구성원으로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대학 총학생회는 박 교수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총학생회 소속 학생 5명은 수업 내용이 외부로 알려진 지난 4월 8일부터 나흘 동안 박 교수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 뒤 사과를 이끌어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학생들이 역사 왜곡 발언에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 나서서 사과까지 이끌어 낸 것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사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가 학교를 떠나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가 수십 년간 비뚤어진 5·18 역사인식 등을 가져온 만큼, 한 순간에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위덕대 총학생회는 성명서 발표와 피켓시위 등으로 박 교수의 퇴출을 요구해 오고 있다. 이에 위덕대는 박 교수를 해당 과목뿐만 아니라 전 과목에서 수업 배제하고 학교법인에 징계를 요청해 학교법인 ‘회당학원’이 징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징계 절차를 밝고 있다. 

5·18기념재단 등이 박 교수를 고발하면 그는 5·18 역사왜곡처벌법 시행 이후 수사를 받는 첫 대상이 된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으며, 올해 초 국무회의 공포를 거쳐 시행중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금남로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광주시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금남로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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