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프로야구 단장과 감독의 싸움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2 13:00
  • 호수 16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롯데 내부 분열로 허문회 감독 결국 경질
야구인들 “일단 감독 선임했으면 맞춰줘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이 바뀌었다. 지난해부터 팀을 이끌어온 허문회 감독(49)이 경질됐고 2군 사령탑이던 래리 서튼 감독(51)이 새롭게 선임됐다. 지난 5월11일의 일이다. 2021 시즌 30경기(20.8%)를 치른 시점이었다. 

급작스러운 수장 교체 배경에는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이 있었다. 이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롯데는 서튼 감독 선임 배경을 설명하면서 “구단 운영 및 육성 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세밀한 경기 운영과 팀 체질 개선을 함께 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풀이하면 허 전 감독은 구단 운영 및 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는 뜻이 된다. 물론 팀 체질 개선을 함께 추구하지도 못했고. 왜 그랬을까.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성민규 단장(왼쪽)과 허문회 감독이 계속된 갈등 끝에 결국 파국을 맞았다. 사진은 2019년 11월1일 허 감독이 취임식에서 성 단장으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는 모습ⓒ연합뉴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성민규 단장(왼쪽)과 허문회 감독이 계속된 갈등 끝에 결국 파국을 맞았다. 사진은 2019년 11월1일 허 감독이 취임식에서 성 단장으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는 모습 ⓒ연합뉴스

파국으로 끝난 자이언츠 단장과 감독의 동상이몽

롯데의 내부 분열은 성민규 단장(39)과 허문회 전 감독이 첫 호흡을 맞춘 지난해 시즌부터 밖으로 표출됐다. 성 단장이 누누이 강조했던 메이저리그식 ‘프로세스’가 허 전 감독의 현장 운영에 녹아들지 못했다. 허 전 감독은 이른바 이름값 있는 선수들을 중용했다. 2군에서 추천된 신진급 선수 기용에는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유망주 육성에 방점을 찍은 성 단장의 팀 프로세스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성 단장은 부임 초기부터 2군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야구 데이터 관련 장비를 구축하고 전문가들을 데려왔다. R&D팀을 신설하고 컨디셔닝 파트 또한 보강했다. 신인급 선수 유출이 불가피한 FA 선수 영입을 자제하고 트레이드 등을 통한 전력 보강도 이어갔다. 고참급 선수들은 대거 정리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영입한 이가 포수 지시완(개명 전 지성준)이었다. 하지만 허 전 감독은 지시완 기용에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허 전 감독이 당시 FA 시장에 나왔던 키움 히어로즈 포수 이지영 영입을 원했으나 구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지시완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고 본다. 

허 전 감독은 이상하리만큼 2군을 경계했다. 어느새 ‘1군은 감독 선수, 2군은 단장 선수’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롯데의 혈은 아예 막혀버렸다. 1·2군 교류를 통해 2군 유망주는 희망을, 1군 붙박이는 긴장감을 유지해야 팀 발전이 가능한데 롯데는 내부 갈등 속에 1·2군 사이 벽만 두터워졌다. 최대 유망주라는 나승엽도, 포수 기근의 해결사라는 지시완도 이런 기류 속에 1군 경기 출전 기회를 거의 박탈당했다. 롯데가 임기 1년 반이나 남은 허문회 전 감독을 경질할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둘의 갈등은 골이 아주 깊었다. 둘 관계에서 존중과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 간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오해만 쌓여갔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한 야구인은 성 단장의 오판을 지적한다. 프런트 야구로 대변되는 키움 히어로즈 시절의 ‘코치 허문회’만 생각했다가 ‘감독 허문회’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이다. 코치와 감독 위치는 엄연히 다르다. 성 단장의 오판은 몇 개월 만에 불화로 이어졌고 결국 파국을 맞았다.

 

김성근 사태로 표면화된 프런트와 현장의 해묵은 갈등

단장(혹은 사장)과 감독의 갈등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런트의 현장 간섭에 제일 민감했던 이는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이었다. 김 전 감독이 마지막으로 한화 이글스 사령탑을 관뒀을 때도 그 배경에 박종훈 당시 단장과의 극심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 갈등의 원인도 표면적으로는 1·2군 운영에 있었다. ‘2군은 단장 관할’이라는 인식 아래 박 단장과 김 감독은 많이 부딪혔다. 특타 실시 등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김성근 전 감독은 2011년 여름 SK 감독을 자진 사퇴할 때도 당시 신영철 사장과 극심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성적은 좋았지만 야구관이 맞지 않은 점이 있었다. “이겨도 재미가 없다”는 식의 신 사장 말이 김 전 감독을 자극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손혁 전 키움 히어로즈 감독도 허민 히어로즈 의장, 즉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시즌 12경기를 남기고 자진해서 물러났다. 허민 의장은 선수 기용 등 선발 라인업까지 관여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염경엽 전 히어로즈 감독 또한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이사와의 갈등 끝에 시즌 도중 지휘봉을 내려놨었다. 이장석 전 대표이사 또한 쪽지 등을 통해 경기 중 선수 기용과 작전 등에 일일이 참견했다.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요인은 결국 ‘감독 권위 침해’로 요약된다.

KBO리그 10개 구단 모두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은 내재돼 있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야구인 출신들이 단장으로 점점 더 발탁되는 추세지만, 크고 작은 의견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유망주 육성과 관리로 팀의 미래 로드맵을 짜야 하는 단장과 1~2년 내 성적을 내야 하는 감독의 입장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적이 좋으면 괜찮겠지만 성적이 나쁘면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부 갈등은 더욱 극심해진다. 롯데처럼 몇 년 동안 팀 성적이 좋지 않은 구단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랜 시간 야구단에 몸담아온 한 야구인은 “구단마다 사정이 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감독의 권한을 침범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1·2군 엔트리 조정도 감독의 역할이고 경기 때 누구를 쓸지 판단하는 것도 감독 고유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야구인 또한 “단장이 감독을 선임했다고 해도 이후에는 단장이 감독에게 져주고 맞춰가야만 한다. 수장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야구’라는 전쟁터에서 맨 앞에 선 이는 양복 입은 단장이 아니라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롯데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선수단 내 분열이다. 과거 단장과 감독의 갈등이 표출된 구단의 끝이 안 좋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성민규 단장 또한 허문회 전 감독 영입에 지분이 있는 만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년까지 남은 임기 동안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2021년 봄, ‘존중’과 ‘협의’가 무너졌을 때 야구단이 어떤 모습을 나타낼지 롯데는 잘 보여줬다. 단장과 감독의 싸움에서 승자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