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혁신 아이디어를 얻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6 11:00
  • 호수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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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코→로봇 팔, 모기 코→주삿바늘,
물총새→신칸센 개발 및 디자인 영감

산업혁명을 견인한 로봇 팔 개발은 21세기 가장 혁신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다. 로봇 팔은 처음에는 인간의 팔을 모델로 개발됐다. 하지만 여기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됐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단단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데다, 신축성이 없어 협동작업을 해야 하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단초는 바로 ‘코끼리 코’다. 깨지기 쉽거나 비정형 물건을 부드럽게 잡을 수 있게 생체공학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로봇 다리는 안정된 위치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정적 균형 시스템이었다. 그 결과 로봇이 고르지 않은 지형을 걷는 데 애로가 있었다. 고양이와 치타 등 고양잇과 동물을 모방해 자연 지형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걷거나, 뛰거나, 달릴 수 있는 능동적 균형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 덕분에 로봇의 센서, 지능 및 제어 시스템, 구동계 등 세 가지 요소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지능화된 기계 시스템으로 발전했고, 그 정상에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있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일본 신칸센의 기관차는 물총새에서 영감을 얻어 소음과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EPA연합·pixabay
시속 300km로 달리는 일본 신칸센의 기관차는 물총새에서 영감을 얻어 소음과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EPA연합·pixabay

자연 기반 기술,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어린 시절 공포의 상징이던 주삿바늘은 1853년 프랑스 외과의사 샤를 가브리엘이 독사 어금니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 당시 개발된 ‘프리바즈 주사기’는 최근까지도 약물 주입 수단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이 주사기는 통증이나 가려움증 등으로 인한 공포를 유발했다.

이후 진일보한 주사기가 나왔다. 바로 모기 코에서 인사이트를 얻었다. 7개로 이루어진 모기 코는 각기 다른 기능을 한다. 그 가운데 두 개는 피부에 접착해 고정하고, 다른 두 개가 피부를 절단하면 중앙 튜브가 피를 빨아들이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모기 빨대의 메커니즘으로 주사기를 개발한 덕분에 지금은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하게 주사를 맞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문제는 상당 부분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해결해 왔다. 자연 생명체의 행동·적응성·형태 등을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기존 기술을 최적화하는 데 이용해 왔다. 자연모사공학, 생태모방기술, 생물모방과학 등으로 불리는 이러한 자연 기반 기술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고양이 혀의 표면에는 작은 돌기가 일정한 방향으로 무수히 달려 있다. 고양이 혀를 통과시키면 마치 모래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턱 힘이 약한 고양이가 뼈에 붙어 있는 고기를 깨끗이 먹을 수 있는 것은 혀의 모래 기능 덕분이다. 여기서 착안해 진공청소기를 개발해 냈다.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상엽(pitch)’은 콘돔 모양의 벌레잡이 식충식물이다. 주머니 입구 부분은 뻣뻣한 털로 덮여 있지만 일단 벌레가 안으로 들어가면 아래는 미끄러워 나올 수 없다. 바로 이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된 것이 다공성 표면 코팅제인 SLIPS(Slippery Liquid Infused Porous Surfaces)다. 특히 이러한 표면처리 기술은 박테리아로 인한 오염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어 건축물 외장단열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기술 분야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자연은 많은 인사이트를 준다. 수영복은 상어의 피부에서 영감을 얻었다. 상어의 피부는 항력을 줄이기 위해 작은 이빨 모양을 연이어 붙인 형태여서 사포(sandpaper)의 질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오염물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기능까지 있다.

생태계 건조화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코로나19도 원인은 기후변화에서 출발했다. 바로 그 생태계 건조화를 예방하는 집수 기술은 사막의 딱정벌레(Beetle)에서 나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브사막에는 딱정벌레가 많이 서식한다. 이 사막에는 일 년 내내 남서쪽에서 미풍을 타고 오는 짙은 안개가 수분의 전부다. 그래서 이 지역 동식물은 한 번에 많은 양이 내리는 빗물보다 매일 공급받을 수 있는 이슬을 더 필요로 한다.

딱정벌레는 바로 이슬을 집수하는 데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 딱정벌레는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엉덩이를 높이 들고 친수성을 가진 돌출부에서 수분을 모은다. 이 수분은 곧 물방울이 되고, 방수 효과가 있는 돌기와 돌기 사이를 지나 딱정벌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딱정벌레는 폭스바겐 소형 자동차와 컴퓨터 마우스 등의 디자인에도 인사이트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유리벽 건물 화단에 새가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새가 투명한 유리를 물리적 장벽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렇게 죽는 새는 연간 1억 마리로 추정된다. 바로 이 점을 해결한 기업은 새(Bird) 친화기업 오니룩스(ORNILIUX)다. 이 회사는 새가 자외선 스펙트럼의 빛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거미줄 기능을 가진 UV유리를 개발했다. UV유리는 거미줄처럼 반사코팅이 되어 있어 인간의 눈에는 미학적 투명성을 유지하지만 새의 눈에는 시각적 표지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정교한 혁신가는 자연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레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이스트게이트센터는 전기 에너지 도움 없이 환기와 냉각이 자연 처리되도록 설계된 세계 최초의 건물이다. 환경 건축가 믹 피어스는 이 공법을 흰개미 더미(mound)에서 영감을 받아 자체 냉각되는 독창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흰개미 더미처럼 공기의 대류 흐름을 조절하는 마운드 전체의 통풍구를 열고 닫는 환기 시스템 덕분이다.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일본 신칸센 열차의 기관차는 긴 부리 모양의 코가 달려 있다. 이러한 코 덕분에 터널에서 나올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소음을 해결했다. 이 아이디어도 물총새에서 얻었다. 물총새는 공기와 물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도 물보라가 거의 없다. 게다가 소음을 줄이면서도 전기 에너지는 15% 절감하고, 속도는 10%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기린을 본뜬 사다리차, 캥거루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공전의 히트상품이 됐던 스카이콩콩, 귀뚜라미에서 바이올린, 독수리에서 망원경, 두더지로부터 굴착기, 개구리에서 나온 풀피리 등이 있다. 자연은 38억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생존을 위해 스스로 R&D(연구·개발) 하는 능력을 가졌다. 자연은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혁신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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