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과 쌍둥이 자매, 골든타임을 놓치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0 13:00
  • 호수 16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구단임에도 아마추어적 행정 능력으로 사태 악화 자초…불신만을 남긴 14개월의 동행

한 달 전 즈음, 배구계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흥국생명이 학교폭력(학폭) 논란을 빚은 쌍둥이 자매 중 레프트 공격수 이재영(25)의 복귀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김여일 흥국생명 단장은 지난 6월22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 참석해 6월30일까지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선수등록을 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세터인 이다영의 국외 리그 이적도 언급했다. 선수의 국외 리그 이적에는 배구협회의 국제이적동의서(ITC)가 필요했지만 흥국생명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하지만 여론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쌍둥이 자매의 학폭이 불거진 것이 지난 2월이었다. 이후 고작 4개월 남짓 흘렀을 뿐이다. 또한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지난 4월 학폭 피해를 호소한 이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제기한 21가지 가해 사실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6월30일 KBS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쌍둥이 배구선수 이재영(왼쪽), 이다영ⓒKBS 뉴스 캡쳐
6월30일 KBS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쌍둥이 배구선수 이재영(왼쪽), 이다영ⓒKBS 뉴스 캡쳐

따가운 여론…구단, 1주일 만에 백기 들어

흥국생명 또한 선수등록 시한을 앞두고 결단이 필요했다. 선수등록을 하지 않으면 둘은 자유계약(FA)으로 풀리게 된다. 이들과 3년 계약을 한 흥국생명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일단 선수등록을 먼저 한 뒤 여론의 추이를 보고 향후 코트 복귀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론은 구단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았다. ‘선수등록=현역 복귀’로 인지한 여론은 쌍둥이 자매 복귀를 반대하는 트럭 시위까지 했다. 선수등록은 그저 선수 보유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었는데 ‘학폭’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그만큼 싸늘했다고 하겠다.

흥국생명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선수등록 추진이 알려진 뒤 1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구단은 공식 보도자료에서 “학교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깊이 인식하고 두 선수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피해자들과의 원만한 화해를 기대하였으나 현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미등록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흥국생명은 선수등록을 할 경우 생길 여론의 역풍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일까. 선수의 국외 리그 진출까지 추진했다면 구단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뜻일 텐데 말이다. 안이했거나 무모했다.

선수등록이 무산된 뒤 쌍둥이 자매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전 소속 구단이 된 흥국생명에 섭섭함을 전했다. 이다영은 인터뷰에서 “계약을 하지 않든가, 그리스 리그로 가든가 선택하라고 했다. 나보다는 구단이 더 그리스행을 원했다”고 밝혔다. 국외 리그 이적이 구단의 결정이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학폭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구단의 초기 대응에 대해서도 이재영은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재영은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고 싶었는데, 구단이 21가지 중 하나라도 맞으면 사과문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구단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구단이 문구를 다 보내줘서 다 받아적었다. 정말 싫었는데 그렇게 해야만 무마된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들이 SNS에 사과문을 올린 이후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다영은 “당시에 구단에서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프로배구 학폭 사태가 터진 이후 프로축구·프로야구 등에서도 학폭 이야기가 나왔으나 배구단처럼 미숙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언론에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다음, 뒤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진실에 최대한 접근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현재 소송 중인 축구의 기성용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 실명조차 언론에 거론되지 않았다. 일부 팬들만 짐작할 뿐이었다.

당시 학폭 선수로 입길에 올랐던 야구·축구 선수들은 지금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쌍둥이 자매와 비슷한 시기에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던 남자배구의 박상하는 소송 등을 통해 결국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흥국생명의 경우 사건 초기부터 선수들의 바람막이가 돼주지 못했다. 그저 사태를 축소하고 무마하기에 급급했고 이는 결국 자충수로 돌아왔다. 학폭 등 대중에게 민감한 문제의 경우 빠른 인정도 좋지만, 그 이전에 전후 사정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자칫 디지털 마녀사냥의 잔인한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쌍둥이 자매의 경우 자동차 광고까지 찍을 정도로 워낙 명성을 얻고 있던 터라 비난의 소용돌이가 더 거셌다.

 

남은 것은 잔여 연봉 지급 문제

잔인한 이별만을 마주한 흥국생명과 쌍둥이 자매의 관계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2019~20 시즌이 끝난 직후 이재영은 소속팀이던 흥국생명과 연봉 총액 6억원(연봉 4억원+옵션 2억원)에 재계약했고, 당시 현대건설에서 FA 자격을 갖춘 이다영은 연봉 총액 4억원(연봉 3억원+옵션 1억원)에 계약을 마쳤다. 기본 6억원과 4억원의 연봉은 보장된 것이었고, 계약기간은 둘 다 3년이었다. 즉, 쌍둥이 자매의 잔여 연봉은 20억원(2년 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 프로배구단의 연간 운영비(50억~60억원 안팎)를 고려하면 꽤 큰 액수다. 흥국생명은 이재영·이다영에게 무기한 출장정지 처분을 내린 지난 2월 이후 현재까지 자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흥국생명과 쌍둥이 자매 측은 잔여기간 연봉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액수가 상당해 단시일 내에 결론을 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국내 무대 활동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여차하면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감정의 골이 있어 자칫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배구 시계를 지난해 4월로 돌리면 이재영·이다영 자매를 동시에 품은 흥국생명은 여자배구 최고 인기 구단으로 우뚝 섰었다. 김연경을 영입하기 전부터 이들이 같은 구단 유니폼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 배구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14개월이 지난 지금, 프로구단임에도 아마추어적 행정 능력으로 흥국생명의 이미지는 실추됐고 진정 어린 반성의 시간을 놓친 쌍둥이 자매는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구단과 선수들 사이에 회복 불능의 불신만이 남게 된 것은 물론이다. 서로를 책망하기에 앞서 사태를 악화시킨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김질할 시간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