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확인된 IOC의 변신과 배신
  •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5 10: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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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충돌 때마다 일본 편에 서
돈에 민감한 IOC, 정치적 목적의 스가 총리와 이해관계 맞아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20 도쿄올림픽’이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개막 자체가 연기된 바 있는 데다 전체 경기의 96%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방역과 격리와 폐쇄 등 예외적인 조치 속에 출발했다. 톱 스폰서인 도요타가 TV광고를 포기하는 등 만신창이가 된 모습인데, 비틀거리면서도 ‘좀비처럼’ 출발선에 도달했다. 과연 예정됐던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올림픽 같은 큰 경기를 운영하는 주체들에게는 ‘일단 시작만 하면 모든 건 저절로 진행된다’는 믿음이 있다. 확실히 올림픽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서서히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에 매혹될 것이고, 국가 간 메달 경쟁에 눈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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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행보로 논란을 부르고 있는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AP 연합

‘욱일기 제한’ IOC 약속 지켜질지 회의적

지리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한다. 이웃의 축제를 축하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불쾌하기까지 한 감정에 울컥할 때가 있는데,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다소 편향된 행보가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의 두 장면을 보자.

#1.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일본 도쿄의 선수촌에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있사옵니다’라는 한글 현수막을 내걸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에서 따온 것이었다. 일본 언론이 반발했고 극우단체는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흔들며 한국 선수단을 향해시위를 했다. IOC는 올림픽 헌장 50조 2항을 들어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다. 대한체육회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경기장 내 욱일기 응원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IOC는 올림픽 시설 내의 욱일기 사용 역시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의 올림픽 조직위는 이에 대해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IOC의 약속이 정확히 지켜질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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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7일 도쿄 올림픽선수촌 한국 선수단 아파트 거주층에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란 ‘이순신 장군’ 글귀 현수막이 걸려 있다.ⓒ연합뉴스

#2.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했다. 우리가 이에 대해 항의하자 IOC는 “도쿄조직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성화봉송로 내 독도 표시는 순수한 지형학적 표현이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답했던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는 ‘당연히’ 독도가 표기됐다. 이에 대해 당시 일본 올림픽 담당상은 “올림픽은 평화의 제전이며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참가하는 모든 나라와 지역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IOC는 남북단일팀의 한반도기에 표기된 독도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삭제하도록 권고했고, 당시 우리 정부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올해 IOC의 대응은 일본 주장을 답습한 것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공정하게 처리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개인의 입시와 입사 경쟁은 물론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경제행위와 정치 영역에서도 공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공정이라는 단어를 오래전부터 선취해 온 분야는 스포츠다. ‘스포츠는 공정하(해야 한)다’는 일종의 공리(公理)다. 따라서 스포츠를 관장하는 전 세계 최고의 의결기관인 IOC는 당연히 공정할 것이라 기대되고 그러한 믿음을 저버려서도 안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잘 알려져 있듯이 올림픽은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주도해 만들었다. 그는 군사학교에 진학했다가 법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이후 교육학에 투신한 이력을 갖고 있다. 프랑스의 미래를 고민하며 교육체제를 비교하러 1883년 영국에 갔다가 스포츠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후 교육의 향상을 위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고, 올림픽 운동을 통한 국제 간 우정과 세계 평화 증진에 나서게 됐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을 깨워 옛 영광을 되살리려는 야심이 자리했다. 어쨌든 고상한 이상을 표방하고 공정하리라는 기대를 받는 조직이 IOC인 것은 사실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위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근무한다. 바흐 위원장은 연봉 없이 22만5000유로(2016년 기준), 우리 돈으로 3억500만원 정도의 업무추진비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원봉사자’인 IOC 위원도 회의 참석 때 하루 활동비로 450달러(약 51만8000원)만 수령하고 집행위원들은 900달러(약 103만5000원)를 받는다. 돈을 받지 않으면 눈치 볼 일이 없고 눈치를 보지 않으면 소신대로 일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지만, 왕족과 귀족, 법률가, 기업인 출신 등으로 이뤄진 전 세계 IOC 위원들은 누구보다도 정치적 움직임에 예민하고 돈의 흐름에 민감하다. 이번 개막식은 운영비의 73%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올림픽을 통해 조달하는 IOC가 미국 내 독점중계권을 가진 NBC에 위약금을 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최를 강행해야만 했고, 정치적 지렛대를 확보하고자 한 스가 일본 총리와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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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8일 오후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한국 선수단 숙소동에 응원 현수막이 바뀌어 걸려 있다.ⓒ연합뉴스

IOC 위원들, 정치와 돈의 흐름에 민감

IOC는 올림픽의 인기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고민거리다. 그래서 스포츠클라이밍·서핑·스케이트보드 등 흥미를 끌 만한 종목들을 새롭게 추가했고 체조의 트램펄린과 남녀 혼성경기도 편성했다. 과거 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뇌물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데다, 오늘날의 올림픽 유치 경쟁은 과거와 다르게 차갑게 식었다. 이로 인해 동·하계올림픽 미래유치위원회가 최종 개최지 후보를 압축해 집행위원회에 권고하는 방식으로 바꿔버렸다. 이 과정에서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은 제대로 추진돼 보지도 못한 채 호주 브리즈번에 밀렸다.

한국의 스포츠팬들은 독도와 욱일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올림픽 정신에 반하는 광고나 홍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올림픽 헌장 50조로 인해 번번이 울분을 삭여야 했다. 특히 2항은 ‘올림픽 관련 현장 장소, 기타 구역에서 어떠한 형태의 시위나 정치적·종교적 혹은 인종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IOC는 이번 대회부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무릎 꿇기’ 등 선수들의 정치적 메시지에 유연하게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경기 시작 전 선수 소개 시간, 기자회견 등 특정 상황에서 선수가 자신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독도와 욱일기 문제에 대한 IOC의 설명과 태도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한국의 스포츠는 경제 규모와 운동 실력에 비해 스포츠 거버넌스가 매우 취약하다. IOC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는 부분이다. 결국 IOC 위원 수를 늘리고 국제 스포츠 시장에서 발언권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공정은 멀고 정의는 힘에서 온다’는 말은 씁쓸하지만 진리를 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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