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맛 오디션’ 《슈퍼밴드2》가 순항하는 이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9 16:0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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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악마의 편집’ 빠진 오디션의 새 패러다임
《싱어게인》에 이어 《슈퍼밴드2》가 보여준 저력

록 밴드만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경쟁과 승리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서사는 프로그램의 형태를 받쳐내기 위한 프레임에 불과하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 보컬이 밴드의 필수조건이라고 여겼다면 편견이다. 클래식한 현악기와 건반 악기, 거문고와 가야금 같은 전통 악기의 선율이 무대에 큰 획을 긋는다. 그렇게 독창적이며 다채롭고 조화로운, 음악의 경계를 허문 무대들이 펼쳐진다. 이 프로그램을 섭렵한 시청자들이라면, ‘천재들의 향연’이라는 수식어에 고개를 끄덕일 터. 참가자들의 실력만으로 월요 예능 화제성 1위를 이끌고 있는 JTBC의 《슈퍼밴드2》 얘기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명확하다. 《슈퍼밴드2》는 글로벌 밴드 결성 프로젝트다. 홀로 음악을 하던 뮤지션들이 음악적 동지를 찾아 세상에 없던 음악을 탄생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전제는 실력자다. 참가자들의 실력에는 구멍이 없다. 정해진 장르도 없다. 가요, 록, 클래식은 물론 국악에 힙합, 전자음악까지 무대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다.

ⓒJTBC 제공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로 본선 1라운드 1대1 장르전 무대를 펼친 기탁 팀은 ‘투 보컬’로 밴드의 합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JTBC 제공

《싱어게인》에서 굳힌 ‘다양성’의 전략

실력자들의 경연. 장르 불문. 이 지점을 보면 생각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JTBC의 전작인 《싱어게인》. 다양한 장르에 포진한 실력자들로 꾸린 이 프로그램은 극한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지도, 참가자들의 불화에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필수 항목처럼 여겨졌던 ‘악마의 편집’도 없었다. 갈등이라는 키워드를 과감하게 삭제하고, 음악과 진심에 초점을 맞춘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은 10%라는 시청률로 호응했다. 《싱어게인》으로 굳어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치는 《슈퍼밴드2》에도 적용됐다. 과도하고 자극적인 편집이 없다는 장점을 그대로 가져오고, 음악에 방점을 찍겠다는 확고한 지향점을 지켰다. 여기에 다양성과 조화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장르를 파괴했다는 것은 이미 장르 대결에서 보여줬다. 록, 팝, 포크, OST, 월드뮤직, 힙합 등 장르를 참가자들에게 선택하게 한 것은 그들이 모든 장르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력자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밴드의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려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저 장르에 맞는 곡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에게 맞는 사운드로 편곡해 ‘작품’을 만들어냈다. 1970년대 올드팝 《피아노맨》은 황린의 기타와 임윤성의 보컬, 김준서의 건반을 통해 2021년 버전의 《피아노맨》으로 다시 태어났다. 록을 선택한 녹두 팀은 반전(反戰)의 의미를 담은 《Zombie》를 신스팝으로 재편곡해 평화를 꿈꾼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대중에게 낯선 록도 여기서는 막강한 존재감을 뽐낸다. 가요를 헤비메탈로 바꿔버린 빈센트 팀(a.k.a 크랙샷)은 원곡이 생각나지 않는 파워풀한 무대로 모두의 록 스피릿을 깨워버렸다.

JTBC 《슈퍼밴드2》 포스터ⓒJTBC 제공
JTBC 《슈퍼밴드2》 포스터ⓒJTBC 제공

《슈퍼밴드2》가 담은 다양성의 가치는 2019년 방영됐던 시즌1과의 차별성도 만들어냈다. 밴드 음악의 특성상 폭발적인 시청률을 끌어모으지는 못했지만, 시즌1 역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출연자들의 무대로 감동을 선사했고,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주면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오점이 있었다. ‘여성 뮤지션의 참가 제한’. 남성 참가자들만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은 여성 뮤지션들을 배제했다는 비판을 가져왔다. 시즌2는 이 제한을 풀었다. 논란 끝에 이어진 결과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남녀노소를 불문한다는 또 하나의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한 셈이다. 여성 참가자들의 존재감은 빛나고 있다. ‘노래하는 악마’ 김예지의 음색은 무대에서 유니크한 아우라를 뿜어냈고, 아버지에게 배운 드럼을 유쾌하게 치는 은아경, 멋진 퍼포먼스와 함께 리듬을 만들어내는 ‘알곡 드러머’ 유빈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여성 아티스트를 끌어안으며 인재, 그리고 천재의 풀은 더 넓어졌다. 다양한 개인이 모여 한 팀을 이룬다는 취지에도 더 충실해졌다. 보컬이나 키보드에 여성의 영향력이 한정되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분야에서 악기를 다루는 여성이 많다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일렉기타리스트 정나영은 하드록과 메탈의 시대를 떠올리게 했고, 장하은은 정교하고 화려한 기법의 연주를 선보이면서 ‘클래식 기타 여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심사위원 윤종신이 기대했던, ‘손악기를 다루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등장’이다. 또 다른 심사위원인 씨엘은 “여성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나온다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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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팀은 《슈퍼밴드2》 무대를 통해 메탈 록의 진수를 보여주며 ‘크랙샷’을 알렸다.ⓒ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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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린 팀의 《피아노맨》 무대는 ‘세 명의 화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평을 받으며 ‘레전드 무대’로 등극했다.ⓒ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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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울 팀은 일렉기타, 어쿠스틱기타, 거문고라는 세 현악기만으로 《GOOD BOY》 무대를 선보였다.ⓒJTBC 제공

밴드 오디션이기에 강조되는 ‘조화’의 가치

《슈퍼밴드2》에서 라운드 통과와 탈락은 실력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덜 어우러진 이들의 무대를 잠시 미뤄놓는 것일 뿐이다. ‘조화’의 정도가 승패를 가를 뿐, 진 팀의 실력이 거론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실력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잘 합쳐진 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이기에. 《슈퍼밴드2》의 김형중 CP가 설명하듯, “(슈퍼밴드2는) 나만 잘해서 되는 오디션이 아니라, 음악적 동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에 참가자들 간 시너지가 폭발하는 오디션”이다.

그래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조화’라는 가치다.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으로 서로를 파악하고 무대를 꾸린다. 가장 잘하는 가창자 1인을 뽑거나, 인기가 많은 멤버를 뽑아 아이돌그룹으로 만들어내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포맷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뽐낸 프런트맨보다, 실력을 조금 감추더라도 무대에 잘 녹아든 멤버가 호평을 받는다.

다채로운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 역시 《슈퍼밴드2》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클래식 콘서트에서나 들을 법한 첼로와 바이올린이 밴드의 구성요소가 돼 무대에 오르고,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비브라폰 같은 악기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면서 밴드에 힘을 불어넣는다. 디제잉도 악기들과 어울려 밴드 음악을 만드는 ‘소리’로 기능한다. 보컬 한 명 없이 거문고와 일렉기타, 어쿠스틱기타라는 세 가지 현악기가 GD와 태양의 《GOOD BOY》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퍼포먼스도 음악과 조화를 이룬다. 무대를 구성하는 음악 자체도 파격적이었지만, 거문고 줄을 거침없이 끊어 내린 박다울의 퍼포먼스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까지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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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부터 자리를 지킨 윤상과 윤종신에 더해 유희열, 이상순, 씨엘이 《슈퍼밴드2》의 심사위원으로 합류했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윤상, 씨엘, 윤종신, 유희열, 이상순ⓒJTBC 제공

신뢰성 있는 심사위원진으로 프로그램에 충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을 갖췄다면, 심사위원이 있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오디션을 보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이들의 구성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신뢰성과 직결되기도 한다. 지난 시즌부터 자리를 지킨 윤상과 윤종신에 더해 유희열, 이상순, 씨엘이 새롭게 심사위원으로 합류했다. 넘치는 히트곡을 보유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유희열, 기타와 프로듀싱을 섭렵한 이상순(밴드 경력만 20년이다), 한국 솔로 여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에 진입했던 씨엘. 뮤지션이거나 혹은 세션 연주자와의 작업 경험이 풍부한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연주기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고, 전문가적 입장에서 무대의 완성도를 평가한다. 베이시스트 출신 프로듀서인 윤상은 양장세민의 베이스 연주를 들으며 ‘입틀막’을 하고, 기타리스트 이상순은 17세 김진산의 기타 연주에 ‘나보다 잘 친다’는 극찬을 보낸다. 때로는 전문가적 입장에서 조언을, 때로는 관객의 입장에서 감상 소감을 내놓으면서 시청자들과 교감한다.

심사위원들이 이미 얘기했듯 실력은 참가자들의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들의 실력을 가늠하기보다, 밴드로서의 독창성과 멤버들과의 조화로움을 가늠하는 게 심사위원들이 할 일이다.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보다 ‘케미’를 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심사위원들과 듣고 자란 음악이 다른 세대인 씨엘은 ‘요즘 뮤지션’의 시선으로 무대를 본다. 그룹 투애니원(2NE1)의 리더로 시작해 글로벌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평가하는 항목은 무대 위의 존재감과 스타성이다.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장 잘 만드는 방송사가 JTBC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음악적 가치에 집중하는 《싱어게인》이나 《슈퍼밴드2》와 같은 프로그램에 대중이 화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오디션 명가로 불렸던 엠넷이 ‘투표 조작’으로 무너지는 사이, 음악에 집중하고 다양성을 보여주는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생소했던 밴드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거창해 보였지만, 그 계획은 천천히 실행되고 있다. 조금씩 올라가는 시청률이, SNS의 파급력이, 유튜브 무대 영상의 조회 수가 그것을 입증한다.

《싱어게인》에서 부각됐던 ‘조화’와 ‘상생’이라는 가치는 이제 여기서 ‘밴드’이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있지만, 《슈퍼밴드2》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재능과 조화로운 무대를 통해 경연 그 이상을, 그리고 밴드의 장점을 보여주는 ‘음악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천재들의 향연을 접하고 싶은가. 아직 《슈퍼밴드2》에는 ‘미친 무대’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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