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게 없는 軍…재점화 된 서욱 경질론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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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서 성폭력 피해 호소하던 여중사 극단 선택
자정능력 상실 비판 속 대대적 문책 불가피
해군 소속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8월13일 사망한 중사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해군 소속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8월13일 사망한 중사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엔 해군이다. 부대 상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군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되풀이됐다. 공군 여중사 사망 이후 대대적 개혁과 쇄신을 약속했던 군이 사실장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즉각 엄정 수사를 지시하면서, 서욱 국방부 장관 경질론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끊어내지 못한 성범죄 고리, 희생자 또 나왔다

13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전날 군 숙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된 해군 A 중사는 지난 5월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이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인천의 한 도서지역 부대에서 근무하던 A 중사는 5월27일 외부 식당에서 B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A 중사는 사건 발생 직후 상관에 피해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두 달이 넘도록 정식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7일 A 중사가 부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이를 알리면서 정식 보고가 이뤄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A 중사의 성추행 피해를 최초로 보고받은 것도 A 중사가 사망한 뒤인 전날 오후였다. 피해 발생일로부터 무려 77일 만이다. 

해군 측은 A 중사가 외부 유출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초반엔 정식 신고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해군 관계자는 "법령상으론 성추행 사고가 일어나면 (인지 즉시) 보고하게 돼 있고, 훈령상에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다"며 A 중사의 의사를 반영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정식 신고 후에도 장관과 참모총장에게까지 즉각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소속 부대장은 지난 9일 2함대에 보고했으며, 같은 날 함대 군사경찰 및 해군작전사령부·해군본부 양성평등센터에도 보고가 이뤄졌다고 한다.

11일 해군본부 군사경찰은 부석종 참모총장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각각 보고를 했는데, 조사본부는 당시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튿날인 12일 A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되자 부 총장이 서 장관에게 지휘보고를 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
서욱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

그러나 A 중사가 지난 7일 주말임에도 부대 지휘관을 직접 찾아 면담 요청을 했고, 피해 사실을 알린 것을 볼 때 사건 발생 이후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느꼈던 것으로 관측된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A 중사는 최근까지 가해자와 분리조치 되지 않다가 지난 9일이 돼서야 육상 부대로 파견 조치됐다. 피해자가 외부로 알리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가해자와의 분리는 적극적으로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A 중사는 부대를 옮긴 지 불과 사흘 만에 결국 생을 마감했다. 

합동수사에 착수한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는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2차 가해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사건 최초 발생일로부터 지난 7일 상관에게 재차 면담을 요청하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유족 측은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강력한 처분을 원한다. 두 번 다시 이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로 남을 수 있도록 재발방지를 바란다"는 입장을 해군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12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을 통해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8월12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을 통해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4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격노한 文 대통령, 서욱 장관 리더십 타격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해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공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 당시 엄정 수사와 병영문화 혁신을 지시했던 문 대통령은 불과 수 개월 만에 같은 일이 반복되자 강도 높은 질책을 쏟아냈다. 

이번 해군 성폭력 여중사 사망 사건으로 서욱 국방부 장관의 경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군 여중사 사망으로 공분이 커지자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이번에는 대대적인 문책과 함께 서 장관의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잇따른 성폭력 사건과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등 군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다,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서욱 장관은 이날 "있어선 안 될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하고,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장관은 ▲ 과거 유사 성추행 피해 사례 ▲ 생전 피해자의 추가 피해 호소 여부와 조치 ▲ 2차 가해 및 은폐·축소 여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수사 진행을 지시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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