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은 달라질 수 있을까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9 10: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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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2.0 정부’ 내세우며 변화 강조
뿌리 깊은 종교적 극단주의 바꾸기 쉽지 않아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자신의 정부를 무사히 세울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프간 정세의 안정은 국경이 맞닿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동의 지역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프간이 계속 불안정하면 난민뿐 아니라 극단주의도 외부로 넘쳐 나갈 수 있다. 아프간이라는 가난하고 작은 산악국가가 전 세계 정세를 뒤흔드는 나비가 될 수도 있다.

탈레반 전사들이 8월19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무장한 채 순찰하고 있다.ⓒAP연합

反탈레반 저항군의 반격 통한 내전 가능성 희박

군사적 측면에선 아프간 국내에 탈레반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없어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아프간 북부 일부 지역에서 정부군이 지역 민병대와 함께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탈레반에 맞서는 세력이 조직된 드문 경우다.

WSJ와 ‘미국의 소리(VOA)’는 북부 바글란주에서 정부군과 민병대의 공격으로 탈레반이 대응 병력을 급파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저항 세력이 탈레반으로부터 바글란주의 15개 구 가운데 3개 구를 탈환했다고 전했다.

바글란주 동쪽의 판지시르주에선 전통적으로 탈레반에 맞서온 민족저항전선(북부동맹)이 집결하고 있다고 NYT가 보도했다. 이 지역 출신인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을 주축으로 정부군 등 7000여 명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판지시르는 바글란과 함께 아프간의 34개 주 가운데 현재 탈레반이 장악하지 못한 주다. 주민은 아프간에서 파슈툰족(42%)에 이어 둘째로 인구가 많은 타지크족(17%)이 주축을 이룬다. 과거 탈레반의 1차 통치 당시에도 판지시르는 독자 세력인 북부동맹의 근거지로 탈레반의 통치가 미치지 못했다. 북부동맹은 2001년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할 당시 동맹으로 길 안내를 맡았다.

탈레반에 맥없이 무너진 아프간 정부군이 반격에 나서 내전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방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판지시르는 험준한 힌두쿠시산맥 인근의 산악지대로 수비는 가능할 수 있지만, 외부와 손잡고 세력을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역 세력이 다문화 사회인 아프간에서 전국적인 지지를 얻기는 더욱 쉽지 않다. 판지시르와 바글란의 봉기를 탈레반과의 협상용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더 큰 관심은 탈레반이 내외의 불안과 우려를 불식하고 안정적인 정부를 세울 수 있는가에 모인다. 정치적으론 과거 1차 집권 당시 보였던 비타협적인 이슬람주의와 파슈툰왈리로는 내부 저항과 외부 경계를 동시에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부분이 탈레반이 양보하기 힘든 정체성, 또는 핵심이익과 관련됐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반외세를 강조하는 인도 무슬림(이슬람 신자)의 ‘데오반디 사상’, 이슬람 초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살리피즘이라고도 함)에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다수 종족인 파슈툰족의 고유 풍습인 ‘파슈툰왈리’ 등이 결합된 종교·이념 체계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이런 완고함과 배타성을 바탕으로 투쟁을 계속해 왔다. 물질적으로 앞선 정부군과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종교적 극단주의자인 탈레반이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은 이유다.

ⓒ외무부제공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인 8월19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서 시민들이 총을 들고 순찰 하는 탈레반 병사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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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현지시간) 아프간 북부 판지시르주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반(反)탈레반 저 항군 대원들의 모습ⓒAP연합

‘저항 최소화하기 위한 기만전술’로 보는 분위기

물론 그들은 새로 집권하는 ‘탈레반 2.0’은 다를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카불 장악 초기부터 영어 구사가 가능한 대변인을 앞세워 유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공무원 등을 사면하고, (얼굴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뒤집어쓰지 않더라도) 히잡만 쓰면 여성의 사회활동이 가능하다며 여성 공직자의 출근을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상당수 국제사회는 물론 아프간의 도시에선 탈레반의 이런 발언을 기만전술로 보는 분위기다. 저항을 최소화하려고 달콤한 말을 쏟아낸다는 의미다.

게다가 탈레반은 구심력 있는 단일대오가 아니라 원심력이 강한 다양한 세력의 프랜차이즈 조직이다. 탈레반이 서방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대부분의 도시와 수도 카불을 장악한 것은 그들이 다양한 지방 세력과 제휴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탈레반이 새로운 기치를 내걸어도 하부 조직이 따를지는 미지수다. 일부 지역에서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나 정부 경찰청장 등을 처형했다는 보도나 동영상이 나도는 이유다.

아프간 국민의 공포도 탈레반이 극복할 과제다. 카불 등 대도시는 탈레반의 처형이나 폭력을 두려워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아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탈레반 1.0의 원죄다. 1994년 남부 칸다하르에서 설립된 탈레반은 1996~2001년 아프간 대부분을 통치하는 동안 이슬람 공포정치로 악명을 날렸다. 1989년 소련군 철수 뒤 주도권을 놓고 내전을 벌여왔던 군벌들을 누르고 1996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자신들의 완고한 이념을 현실에서 실험하기 시작했다.

첫 조치는 공산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인 무함마드 나지불라를 유엔컴파운드에서 끌어내 거리에서 잔혹하게 처형한 일이다. 자동차에 묶어 시내를 끌고 다닌 데 이어 공개 거세를 하고, 크레인을 끌고 와 피를 질질 흘리는 사람을 대통령궁 앞에 오랫동안 매달았다.

그 뒤로도 ‘현대 이슬람은 오염됐으니 중세 초기 이슬람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악명 높은 조치들을 계속 시행했다. 특히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을 일절 금지해 악명을 높였다. 음악·영화·방송은 물론 인터넷도 금지했고, 사진과 그림 게시도 우상숭배라며 사갈시했다. 스포츠와 오락, 심지어 연날리기나 애완동물 사육도 막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탈레반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하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더해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의 관습인 파슈툰왈리를 다민족 사회인 아프간에 강요한 것도 악수로 꼽힌다. 남성은 턱수염을 기르고 여성은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탈레반은 이처럼 비타협적인 외곬 통치로 국내외 거의 모든 세력을 적대시했다. 제대로 된 정부를 설립하는 대신 중세로 돌아가자며 강압 통치를 계속했다.

ⓒ외무부제공
8월25일 외교부는 그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 그리고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380여 명이 8월26일 국내에 도착한다고 전했다. 사진은 우리 외교관과 함께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는 우방국 병사 모습ⓒ외무부제공

9·11 테러 이후 국제정세에 민감…변화 가능성도

주목되는 것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알카에다 창설자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를 요구하자 ‘손님은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보호한다’는 파슈툰왈리를 내세워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당시 탈레반은 결국 미국과 연합군의 공격을 불렀다. 탈레반은 산악지대나 파슈툰족이 대거 거주하는 이웃 파키스탄으로 피신했다.

그들은 국제정세나 외부와의 소통에 어두워 20년간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아프간을 장악한 지금은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한 탈레반’을 이루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게릴라전으로 미국을 내몰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직면한 과제는 재정과 경제다. 미국은 이미 90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아프간 정부의 보유 외환을 차단했다. 그 90%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의 뉴욕 준비은행과 미국의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다. 미국은 탈레반을 테러집단으로 분류하고 있어 미국이 이를 해제하고 탈레반을 아프간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선언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희박하다. 미국과 서방세계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이 자금은 미국이 계속 차단할 수밖에 없다. 탈레반은 당장 쓸 돈이 없다. 외화가 부족하면 탈레반은 나라를 통치하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와 식량을 구할 수 없다. 화폐 시스템도 붕괴해 현지 화폐인 아프가니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의 지질학적 조사 결과 아프간에는 1조 달러 규모의 광물이 묻혀 있다. 중국과 일부 개발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를 통해 아프간이 경제를 개발하려면 외국 투자를 더욱 많이 받고, 이를 개발해야 한다. 산중 세력인 탈레반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 2위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도 석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아서 가난의 늪에 빠졌다. 리비아도 숱한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내전 속에서 국민은 도탄에 빠져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마약이다. 아프간이 난민과 인재 유출, 그리고 지독한 가난과 코로나19로 도탄에 빠진다면 상당수 국민은 과거의 수입원이던 양귀비 재배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은 당국의 감시 소홀 속에 최근에는 필로폰의 주요 공급지로도 떠올랐다. 아프간에서 난민뿐 아니라 마약도 외부로 넘쳐 나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탈레반에 대해 경제 제재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평화협상을 중재해온 카타르가 다시 한번 나설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까. 아프간 사태가 지역과 국제사회에 미칠 충격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익 사이의 어느 지점에 균형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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