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대마불사 기대는 접어라”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3 12: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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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공동부유’ 시책에 딱 걸린 중국의 거대 부동산기업
“부채 덫 빠진 민간기업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 것”

추석 연휴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눈길은 일제히 중국 광둥(廣東)성의 한 기업에 쏠렸다. 주인공은 지난해 기준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중 자산 규모 1위이자 비구이위안(碧桂園)·완커(萬科)와 함께 3대 건설업체로 손꼽히는 헝다(恒大)였다. 헝다는 만기가 도래한 달러 채권이자 8350만 달러(약 987억6380만원)와 위안화 채권이자 2억3200만 위안(약 424억1650만원)을 지급해야 했다. 그러나 9월21일부터 금융권에는 “헝다가 사실상 파산했다”며 “채권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로 인해 추석 명절로 휴장한 중국과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유럽 등 주요국의 증시가 급락했다.

다행히 22일 헝다그룹은 성명을 통해 “위안화 채권이자 2억3200만 위안을 제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덕분에 글로벌 증시의 급락세는 진정됐다. 다만 달러 채권이자의 지급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결국 23일 헝다는 달러 채권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다.

당초 헝다는 달러 채권 판매 시 예정일에서 30일 이내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디폴트가 아닌 것으로 계약했다. 따라서 헝다의 이자 미지급은 공식 디폴트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디폴트 위기에 빠지자, 29일 헝다그룹은 보유한 성징(盛京)은행의 지분 19.9%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7월1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연설하고 있는 모습이 대형 LED 모니터에 비치고 있다.ⓒEPA 연합

10여 년 만에 부동산 업계 ‘큰손’으로 급성장

성징은행은 홍콩 증시 상장사로, 현재 시총이 615억 홍콩달러(약 9조3720억원)에 달한다. 따라서 헝다는 1조8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되어 당장의 유동성 위기는 막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헝다에 대한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의 불신은 현재 극에 달한 상태다. 9월23일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체 화런부동산(華人置業)은 헝다 주식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화런부동산은 헝다그룹의 2대 주주로 지분 6.50%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21일까지 지분 0.82%를 처분했는데,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나머지 지분마저 다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홍콩 증시에 상장된 헝다그룹의 주가는 2.6홍콩달러다. 연초 14.7홍콩달러에 비하면 무려 5분의 1 이하로 급락한 상태다. 화런부동산이 지금 이대로 지분을 팔면 약 94억8630만 홍콩달러(약 1조4411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화런부동산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래가 불안한 헝다를 손절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지난 4년여간 헝다의 주식은 홍콩 투자자들에게 역동적인 ‘대박주’로 손꼽혔다. 2016년 2홍콩달러대에 불과했던 헝다의 주가는 2017년 3월부터 폭등해, 그해 10월에는 29홍콩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2018년 들어 조정을 받아 14.4홍콩달러까지 떨어졌으나, 7월에 다시 27홍콩달러로 급등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헝다의 주가도 2월에 9홍콩달러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다시 폭등해 7월에 26홍콩달러를 기록했다. 이렇게 헝다의 주식이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창업자인 쉬자인(許家印)과 관련이 깊다. 쉬자인은 1958년 허난(河南)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국영 철강회사에서 일했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단시일에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국 상하이에 있는 헝다그룹 본사ⓒEPA 연합

쉬자인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 탓에 빚 늘어

1992년 쉬자인은 철강회사를 그만두고 경제특구인 선전(深)으로 내려왔다. 중다(中達)그룹에 입사해 활약했는데, 1994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중다그룹이 설립한 부동산 개발업체에서 쉬자인이 중역으로 일하며 사업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1996년 회사를 나와 이듬해 광저우(廣州)에서 헝다를 세웠다. 당시 중국은 국영기업의 전면 개혁이 이뤄지면서 상업 아파트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더 이상 국가나 국영기업의 주택 분배에 기댈 수 없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쉬자인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본사가 있는 광저우의 부동산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그런 뒤 주변 중소도시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2003년 광둥성 1위의 부동산 개발업체로 등극하고, 이듬해부터는 다른 성시(省市)로 적극 진출했다. 2008년 20여 대도시에서 50여 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그 덕분에 중국 10대 부동산업체에 진입했고, 2009년에는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이듬해에는 달러 채권을 발행하면서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때 헝다그룹은 아파트 판매액에서 중국 2위 업체로 등극했다.

헝다의 성공 이유는 아파트 개발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헝다는 금융권 대출로 자금을 조달한 뒤 땅을 사고 대규모 단지에 중소형 아파트를 지었다. 박리다매 방식으로 공급을 확대해 이윤을 늘렸다. 이런 성장전략은 2010년대 초까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헝다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7232억 위안(약 132조8220억원)에 달했고,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22위에 올랐다. 또한 중국 인민일보가 선정한 ‘중국 100대 브랜드’ 중 28위였다. 지난해 말 쉬자인의 자산은 1860억 위안으로 중국 3위의 부자였다.

그러나 쉬자인의 경영 방식은 헝다그룹을 위기로 몰고 갔다. 지난 10년 사이 금융·헬스케어·관광·스포츠 등 본업과 관련 없는 분야에 진출하면서 문어발식 확장을 한 게 문제였다. 특히 2018년 설립한 전기차 회사에 3000억 위안이나 투자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헝다자동차는 지금까지 한 대의 차도 생산하지 못했다. 쉬자인은 사업 확장을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에 의존해 왔다. 따라서 지난해 말 헝다그룹의 부채는 1조9500억 위안에 달한다. 자기자본인 4110억 위안 대비 부채비율이 475%에 달한 것이다.

ⓒEPA 연합
헝다그룹의 창업자인 쉬자인 그룹 이사회 의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2017년 3월9일 열린 제12차 중국인민정치 협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EPA 연합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들어 시진핑 정부가 폭등하는 부동산의 고삐를 잡으면서 헝다가 직격탄을 맞았다. 은행을 앞장세워 부동산업체에 대한 대출을 회수했고,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했다. 또한 지방정부는 주민의 주택 구매 자격을 제한했다. 이 같은 당국의 조치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새로운 국정과제로 내세운 ‘공동부유(共同富裕)’와 연관됐다. 모두 함께 잘살기 위해서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집값에 대한 억제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각 지방정부에 부동산 가격 하락폭까지 정해 시달한 상태다.

게다가 중국 당국은 민영 재벌그룹의 몰락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불식시키려 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중국 언론과 금융계는 “대마불사(大馬不死)는 기대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9월17일 관영 ‘환구시보’의 후시진 총편집인은 헝다그룹을 겨냥해 “대마불사의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 뒤 환구시보는 기사와 전문가 인터뷰를 계속 내보내며 헝다를 비판했다. 환구시보는 중국 정부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매체로 유명하다.

9월22일 발간한 리포트에서 올해 1월 파산한 하이난(海南)항공을 예로 들며 “부채의 덫에 빠진 대형 민간기업을 당국이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헝다가 부도 처리됐던 타이허(泰禾)·화샤싱푸(華夏幸福) 등 다른 부동산업체처럼 그룹이 공중분해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러나 현재 헝다는 중국 전역에서 아파트 단지를 개발해 놓은 상태다. 만약 속절없이 무너지면 수십만 명의 입주 예정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부동산 부문은 하이난항공처럼 국영화되어 경제·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할 공산이 크다.

 

 

시진핑의 탄소중립 과제에 부응하려다 전력난 심각

10월1일부터 7일까지 중국은 국경절 7일 연휴다. 해마다 국경절 밤에는 도시의 번화가에서 화려한 조명쇼가 열리곤 했다. 또한 도심에서는 특색 있는 가로수 장식이 거리를 수놓았다. 하지만 올해는 대다수 도시에서 조명쇼가 자취를 감추었고, 가로수 야경도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 중국 내 심각한 전력난을 보여주듯,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조명쇼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 스타트는 중국 1위의 경제 규모를 갖춘 광둥성이 끊었다. 9월26일 광둥성 정부는 관할 도시에 전기를 최대한 절약하라고 시달했다.

이에 따라 28일 선전과 광저우가 조명쇼 중단을 결정했다. 또한 가로수 조명은 켰지만 이전보다 1시간 단축했다. 선전과 광저우는 경제 규모가 각각 3위와 4위인 도시다. 다른 도시들도 뒤따랐다. 그런데 선전시는 이런 지침을 발표하며 10월5일까지 30여 개 구역의 정전을 사전 공표했다. 이유는 “선로 점검을 위한 계획 정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역이 너무 많은 데다 반나절에서 하루 종일까지 이어졌다. 한 선전 시민은 이를 두고 “전례 없이 대규모이고 긴 정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본래 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으로, 경축일마다 모든 대도시에서 화려한 조명쇼가 열렸다. 하지만 2개월여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전력난을 체감할 수 없었다. 중국 곳곳에서 전기가 모자랐지만, 당국이 공업단지에서만 부분 정전을 취했기 때문이다. 도시는 민심 동요를 고려해 전력공급에 사력을 다했다. 그러다가 9월말부터 동북3성을 중심으로 예고 없는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도시에서는 가로등이 꺼졌고 건물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중국이 전력난에 휩싸이게 된 배경은 표면적으로 석탄 공급 부족에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은 외교관계가 불편한 호주의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 수급이 악화됐다. 중국의 전체 전력생산에서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의 비중은 68%나 된다. 게다가 풍력발전도 9월 중순부터 풍속이 약해지면서 발전기를 돌릴 수 없게 됐다. 동북3성은 다른 지역보다 화력과 풍력발전 비중이 높기에 전력난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유는 시진핑 주석이 내건 과제를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데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중국의 탄소 배출량은 2030년에 정점을 찍고 2060년에는 탄소중립을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중국 정부는 저탄소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았다. 문제는 현재까지 31개 성·시 중 16곳이 에너지 소비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대다수 성·시는 전력생산에 여력이 있는데도 전력공급을 조절하면서, 초유의 전력난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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