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규제 강화는 선택지에도 없다”는 영국, 믿는 구석 있나
  • 사혜원 영국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3 12:0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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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루 2만 웃도는 확진자 수에도 천하태평인 이유…낮은 사망률.백신 효과.위드 코로나 적응

영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에서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 사실 새로운 소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5~6월에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제를 완화할 때부터 정부에서는 “조심하지 않으면 확진자 숫자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지난 3개월간 영국의 하루 확진자 수는 2만 명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관심하다. 회사들은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사원들을 다시 회사로 불러들이기 위해 무료로 아침식사나 커피를 제공하고, 벌써부터 연말연시 회식 장소를 찾느라 분주하다. 초·중·고 학생들의 하프 텀(학기 중 방학)에 맞추어 가족 단위로 휴가를 가는 것은 물론이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나마 마스크를 성실하게 착용하는 사람들도 회사에서는 자기 자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일하다가, 화장실에 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만 잠깐 마스크를 끼고, 건물을 나서자마자 다시 마스크를 벗어던진다. 심지어 식당에서 일하는 종사자 중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직원들이 보인다.

영국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서 이제 코로나, 백신, 확진자 수,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50대 이상인 부모가 백신 부스터샷을 맞았다거나, 주말을 끼고 유럽으로 휴가를 가기로 했는데 그 나라에서 ‘백신 여권’을 받아주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것 정도다. 확진자 수에 대해서도 직접 검색해 찾아보지 않는 이상 정확히 잘 모른다. 매일 뉴스 헤드라인으로 하루 확진자 수가 몇 명인지 알려주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셈이다.

10월20일 영국 런던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과 쓰지 않은 시민들이 섞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왼쪽은 보리스 존슨 총리ⓒAP 연합·REUTERS

“백신과 부스터샷이 있는 한 락다운 없다”

이렇듯 태평한 영국 국민들과는 달리 의료계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연합 대표와 영국의학협회(BMA) 회장 등은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절대적으로” “지금 당장”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냈다. 보건부의 사지드 자비드 장관은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 신규 확진자 10만 명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영국 정부의 신규 호흡기 바이러스 위협 자문위원인 피터 오픈쇼 교수는 “크리스마스 락다운이 다시 현실이 될까 두렵다”고 말하며 “현재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며, 다시 재택근무와 마스크 의무화 등을 포함한 플랜B(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현재 영국의 통계자료를 보면, 55명 중 한 명은 코로나 환자인 셈”이라고 설명한 오픈쇼 교수의 말에 따르면,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시간만 늦추고 피해만 늘릴 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플랜B 내용으로 제시되고 있는 재택근무 및 마스크 의무화 등은 경제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상식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최근 존슨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거리 두기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선택지에도 없는 선택이다”고 얘기했으며,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 역시 “백신과 부스터샷이 있는 한 락다운이나 경제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제를 재개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국민보건서비스가 크게 휘청거리지 않는 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시 도입하는 것보다 이미 400만 명 이상이 맞은,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부스터샷을 통해 사람들의 면역률을 더 높인다는 계획이다. 영국에선 50대 이상 대부분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약하다고 알려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부스터샷이 필요하다는 식의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확진자 수 증가에 비해 사망자 수 훨씬 적어

영국 시민들과 정부가 이렇듯 높은 코로나 확진자 수에도 애써 무관심한 것에 대해 현지에서는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체감 사망률이 아직도 굉장히 낮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확진자 수는 올해 1월과 비슷할 정도로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망자 수 그래프와 확진자 수를 비교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확진자 수가 3000~4000명에 불과했지만 사망자가 거의 1000명 가까이 나오던 지난해 봄 코로나19 초기와,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거의 비례해서 올라갔던 지난해 겨울 2차 대감염 시기와는 다르게, 올해 10월 현재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것에 비해 사망자 수는 훨씬 적다. 당연히 사망률도 훨씬 낮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제를 강화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견이 강하다.

두 번째로 백신의 효과 때문이다. “백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의료진들도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 감염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코로나 증상 역시 많이 약화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감기나 독감처럼 금방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있기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어차피 매년 환절기에 걸리던 감기와 별로 다를 게 없다면 굳이 겁에 질려 집에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18개월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끝내고 사람들이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영국 시민들이 다들 이처럼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확진자 수는 ‘사회적 무책임함’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비판한 한 네티즌은 “마스크 쓰는 사람이 소수가 되는 분위기가 다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번 마스크를 벗고, 해외여행을 가고, 클럽에 가고, 친구들과 단체모임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다시 그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봐도 ‘위드 코로나’에서 다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기업들은 출근을 다시 권장하고 있고, 침체됐던 상권들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렇듯 경제가 차근차근 회복해 가는 상태에서 올겨울 내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진행할 경우 28조원가량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기에, 정부가 섣불리 사회적 거리 두기 플랜B를 공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보수당 소속의 매기 스룹 하원의원은 현 상황에 대해 “지금 모든 것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영국 시민들은 우리의 모든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대해 무척이나 참을성 있게 응했다. 현재 사람들은 자유를 즐기고 있고, 그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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