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과 결혼해 왕족 신분 박탈 당한 日 마코 공주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8 12: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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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박탈과 함께 왕실이 주는 지참금 16억원 수령 거절 
국민 95%는 결혼 반대…“사생활 폭로의 희생양” 시각도

10월26일, 일본 왕실의 마코 공주(30)가 일본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 동기인 일반인 남성과 결혼했다. 왕족 여성이 일반인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 왕족 신분을 박탈하도록 규정한 왕실 관련 법률(황실전범)에 따라 마코 공주는 왕족 신분을 상실했다. 그러나 평민이 된 공주와 그의 남편 고무로 게이의 사생활은 다수의 매체에 연일 보도되며 계속 주목받고 있다.

사실 마코 공주와 고무로는 일본 국민의 축복을 받으며 2017년 9월 약혼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여성주간지 슈칸조세(週刊女性)가 고무로의 가정사와 모친의 채무 및 남성 편력 문제를 특종 보도하면서 공주의 결혼에 대한 반대 여론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슈칸조세는 ‘연예 특종’과 함께 ‘왕실 보도’를 매체의 중점 테마로 삼는 매체로서 과거부터 자극적인 왕실 관련 소식을 게재해 왔다. 고무로가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인물이며 금전적인 이유로 의도적으로 공주에게 접근했다는 추측성 보도도 슈칸조세에서 시작되었다.

ⓒ뉴시스
나루히토 일왕의 조카 마코 공주(오른쪽)가 10월26일 남편 고무로 게이와 혼인신고를 마친 뒤 도쿄 아카사카 어용지를 떠나기 전에 여동생 가코 공주와 포옹을 하고 있다.ⓒ뉴시스

“결혼은 ‘국민적 이벤트’ , 공주 남편은 ‘공인’”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면서 마코 공주는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결혼을 연기했다. 결국 일본 국민의 95.6%가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슈칸아사히(週刊朝日) 3월26일자)까지 나온 가운데, 마코 공주는 품위유지비 약 1억5300만 엔(약 16억원)도 수령하지 않고 결혼식도 거행하지 않은 채 왕실을 떠났다.

공주의 정식 결혼 발표 당일, 도쿄에서는 결혼에 반대하는 행진시위까지 일어났다. “고무로 모자(母子)에게 혈세가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결혼 반대”와 같은 팻말이 보였다. 일본 국민은 왜 공주의 결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과거부터 일본 왕실의 공주들이 ‘아이돌’처럼 여겨져 왔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일본의 평론가 가시마 시게루에 의하면, TV나 인터넷 같은 매체가 보급되기 이전부터 일본 국민은 아이돌을 동경하듯 왕족에 대한 정보가 게재된 잡지에 열광적으로 반응해 왔다. 특히 공주들은 탄생 직후부터 성장 과정 및 결혼 과정이 궁내청을 통해 공개된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은 ‘최애(가장 사랑한다는 뜻의 신조어) 아이돌’의 성장을 지켜보듯 공주를 바라보며 공주의 팬이 돼 간다는 것이다. 국민 아이돌인 공주가 각종 의혹에 휩싸인 인물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일본 국민은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마코 공주뿐만이 아니다. 나루히토 일왕의 장녀 아이코 공주는 학교에 결석만 해도 각종 언론사에서 아이코 공주의 건강 문제나 왕실 불화설을 제기하며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마코 공주의 동생 게이코 공주 또한 2014년 재학 중이던 가쿠슈인대학을 갑작스럽게 중퇴하자 왕따설이 제기되었다. 이처럼 공주들의 결혼과 삶에 대한 일본 사회의 지나친 관심과 보도의 과열 양상은 ‘일그러진 팬심’이 초래한 공주들의 수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말 슈칸조세의 보도를 시작으로 공주의 남자에 대한 일본 국민의 관심이 크게 증가하자, 이슈 폭로 저널리즘 성격의 여성주간지뿐 아니라 슈칸분슌(週刊文春)·슈칸신초(週刊新潮) 같은 시사주간지들도 고무로에 대한 의혹을 재확인하는 형태로 마코 공주와 고무로의 소식을 연달아 보도했다. 이렇듯 일본 언론매체가 공주의 결혼을 집중 조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슈칸신초 편집장 미야모토 다이치는 두 사람의 결혼이 “국민적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마코 공주가 왕위 계승 후보 2위인 히사히토 왕자의 누나라는 점에서, 고무로가 미래 일왕의 매형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 우려하는 독자가 많아 “터부(Taboo) 없이 국민의 관심사에 맞춰 파고드는 것이 우리 주간지 저널리즘의 중요한 업무”라고 설명했다. 슈칸분슌 편집장 가토 아키히코는 고무로의 공인성(公人性)이 매우 높다는 점을 보도 이유로 들었다. 결혼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지만 왕족의 결혼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행사로서 “공적인 문제”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지나친 관심으로 ‘실어증’을 앓았던 미치코 상왕비와 ‘적응장애’ 진단을 받은 마사코 왕비, ‘외상후스 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마코 공주(왼쪽부터)ⓒAP·EPA 연합

궁내청, 고무로 의혹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궁내청의 미온적 대처가 일본 국민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해 언론의 경쟁적 보도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궁내청은 일본 왕실과 관련된 저작물 및 보도에 허위사실이 있는 경우, 출판사 및 언론사 측에 항의하거나 궁내청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고무로에 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는데도 궁내청은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 고무로 모자가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보도 내용에 대해 궁내청이 진위를 조사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유로 전해진다.

실제로 궁내청은 2018년 5월 입장 표명을 통해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각종 언론보도 및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해 어떤 우려를 표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도 고무로 모자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올해 10월1일에도 마코 공주가 결혼과 관련된 비방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고 전했으나, 고무로 모자에 대한 보도의 진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고무로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자 일본 국민은 더욱 궁금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공주의 결혼이 일본 사회에서 공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더라도 고무로와 마코 공주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가 과열되고 있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아사히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의 편집장 가타기리 게이코는 왕족의 결혼 상대 및 그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당사자가 일반 시민이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자신들은 고무로 모자에 대해서는 크게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토대학 소가베 마사히로 교수도 고무로와 마코 공주가 “반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가운데 비판적인 보도가 이어지는 것은 보도 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왕실이라는 보호벽을 뚫고 나와 평민이 된 마코는 이대로 방치되는 것일까.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아이돌 문화와 일그러진 팬심, 각종 매체의 경쟁적인 보도 양상이 계속되는 한 공주의 수난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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