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리는 쌍둥이 자매…이다영 MVP, 이재영 부상 귀국
  • 김경무 스포츠서울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0 16: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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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그리스 리그 3라운드 MVP ‘연착륙’…이재영은 부상 재발하며 일시 귀국

사지로 내몰린 끝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리스 배구리그. 국내 V-리그 슈퍼스타였다가 졸지에 추락한 쌍둥이 자매에게 그곳은 구원의 땅일까. 지난 10월16일 그리스로 떠나 제2의 배구 인생을 시작한 이재영-이다영(25) 자매의 행보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둘은 현재 그리스 1부 리그인 ‘A1’의 PAOK 배구클럽 소속이다. 연고지는 테살로니키로 수도 아테네 다음으로 큰 도시다. PAOK는 여자배구는 물론 축구와 남자배구 클럽도 운영하는 멀티 스포츠클럽이다. 1933년 창립됐다. 남자팀은 2014~15, 2015~16, 2016~17 시즌 3차례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리스 컵대회에서도 3차례(2015, 2018, 2019년) 우승한 그리스 명문팀이다. 2015~16 시즌 처음으로 CEV(유럽배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도 출전했다.

여자팀은 과거 해체됐다가 지난 2010년 재창단된 뒤 3부, 2부 리그를 거쳐 2019~20 시즌 1부 리그로 승격해 5위를 차지했다. 2020~21 시즌엔 1위를 달리던 중 코로나19 때문에 리그가 취소돼 우승하지는 못했다. 이재영-다영 자매가 입단하기 전인 지난 4월 컵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CEV컵 출전권도 얻었다. 이 대회는 챔피언스리그보다 한 단계 아래 수준의 유럽 클럽 대항전이다.

포지션이 세터인 동생 이다영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리스의 낯선 팀에 안착한 반면, 레프트 공격수인 언니 이재영은 왼쪽 무릎 통증 때문에 수술을 위해 11월12일 국내로 일시 귀국하는 등 곡절을 겪고 있다. 수술 뒤 6주간 재활 과정을 거치면 내년 초 팀에 복귀할 것이라고 구단 측은 밝히고 있다.

ⓒPAOK 테살로니키 인스타그램 캡쳐·
(왼쪽)이다영이 소속팀 PAOK의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있다. (오른쪽)언니 이재영은 11월15일 무릎 부상으로 일시 귀국했다.ⓒPAOK 테살로니키 인스타그램 캡쳐

그리스 리그, 유럽 B레벨이지만 “높이·파워는 우리보다 높아”

그리스 배구 여자국가대표팀은 현재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 36위다. 한국(14위)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여자 프로배구의 경우, 김연경이 뛰었던 터키 리그와 이탈리아 리그가 유럽의 양대산맥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면, 그리스 리그는 유럽에서는 B레벨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신체적 조건이 서양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한국 선수들이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 V-리그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그리스 리그에 대해 “전반적으로 리그 수준이 낮다 하더라도 선수들의 하드웨어나 높이, 파워는 우리보다 높다”며 “쌍둥이 자매는 그런 여건 속에서도 일단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번 시즌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MVP로 선정된 현대건설의 외국인 선수 야스민(25·미국)은 지난해까지 그리스 리그에서 뛰었다. 당시 그는 거기서 중간급 수준의 공격수였다. 그런 그가 V-리그에서 잘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 리그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유럽 A급 수준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떨친 쌍둥이 자매 중 이다영은 일단 경기력에서 그리스 리그에 연착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다영은 10월31일 그리스배구연맹이 선정한 3라운드 MVP의 영광을 안았다. 배구 경기에서 세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이다영은 이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전을 꿰찼고 최우수선수의 영예까지 차지했다. 이다영이 들어간 뒤 팀은 11월17일까지 5승1패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재영은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V-리그에서 뛸 때도 그는 왼쪽 무릎 연골 쪽이 좋지 않았다. 이재영은 급작스럽게 이뤄진 PAOK 이적 뒤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하고 실전에 투입됐다 통증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 병원 측은 관절경 수술로 무릎 연골 주변을 정리하면 6주 재활을 거쳐 코트에 설 수 있다는 소견을 냈으나, 이재영은 한국에서의 정밀검진을 선택했고, 결과에 따라 수술을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쫓겨 가다시피 나간 것인데 국내 복귀 쉽지 않을 것”

이재영-다영 자매는 지난 2월 중학교 시절 학폭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팬들로부터 비난과 질타를 받았고, 결국 2020~21 시즌 도중 코트를 떠나야 했다. 그들의 소속팀이던 흥국생명은 무기한 출전정지 결정을 내렸고, 대한배구협회도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 박탈했다. 이후 흥국생명은 이들의 복귀를 검토했지만 여론이 좋지 않자 결국 둘의 선수등록을 포기했다.

이런 와중에 그리스 쪽에 있는 한 에이전트의 소개로 PAOK 구단이 러브콜을 보냈다. 이재영은 순수 연봉 6만 유로(약 8250만원), 이다영은 3만5000유로(약 4810만원) 조건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프로배구 관계자는 “둘이 정상적으로 그리스 리그에 간 것이 아니라 갈 데가 없는 상황에서 계약이 성사되다 보니 헐값으로 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그들이 V-리그 상승세에 공헌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포츠계 학폭 사례 1호가 됐고, 원체 배구계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팬들의 실망감은 더 컸다”고 아쉬워했다. 쌍둥이 자매는 그리스 무대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국내 V-리그나 국가대표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황이다.

“규정상으로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어느 구단이 그들을 받아들이겠나? 팬들도 포용하겠나?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쫓겨 가다시피 나간 것인데 국내 복귀가 쉽진 않을 것이다.” KOVO 관계자는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얼마 전 이다영은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다. 많이 예뻐하고 아껴주셨는데 실망을 많이 안겨 드렸다”며 사과했지만, 팬들은 여전히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한국 여자배구는 큰 자산과 흥행카드를 잃었다. 지난 8월 도쿄올림픽 4강 신화 이후 V-리그 여자부의 인기는 더 높아지고 있지만, 흥국생명의 전성시대를 이끌던 김연경은 중국으로 떠났고, 쌍둥이 자매도 없다. V-리그 새로운 아이콘의 탄생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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