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가는 길, 모래밭인 줄 알았는데 ‘실크로드’였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0 12: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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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최종예선 무패 행진으로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티켓 거의 손에
“시뮬레이션에서 한국 본선 진출 확률 98.6%”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해 순항 중이다. 남은 4경기에서 승점 5점만 따면 자력으로 본선행을 확정 짓는다. 3위 그룹인 UAE·레바논과의 맞대결에서 비기기만 해도 상당히 유리해지는 입장이다. 좀 성급한 전문가들 중에는 사실상 티켓을 손에 쥐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벤투호는 11월17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에서 이라크를 3대0으로 압도했다. 이로써 11월에 열린 두 경기를 모두 잡은 벤투호는 6차전까지 마친 현재 4승2무, 승점 14점에 8득점 2실점으로 이란(승점 16)에 이어 A조 2위를 공고히 했다. A조는 한국과 이란의 양강 구도가 뚜렷하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은 각 6개팀으로 구성된 A, B조 2위까지 본선에 직행한다. 즉 2위를 확보하는 것이 본선행을 위한 최종예선의 지상과제인 셈이다. 현재 A조 3위인 UAE는 1승3무2패로 승점 6점에 그치고 있다. 4위 레바논도 5점이다. 한국은 3위 그룹에 8점 이상 앞서 있다. 이는 한국이 3연패를 하고, 3위 그룹이 3연승을 해야 뒤집히는 상황이다. 축구 통계 사이트 위글로벌풋볼은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 확률이 98.6%라고 전망했다.

11월16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 한국과 이라크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페널킥을 차고 있다.ⓒ연합뉴스

카타르 베이스캠프 후보지 답사…이미 본선 준비 체제 돌입

오는 1월에 본선행이 조기 확정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1월27일 열리는 레바논 원정에서 한국이 승리하고, 같은 날 UAE가 시리아에 패하면 3경기를 남겨놓고 3위권과 최소 승점 10점 차를 벌리며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본선행을 확정 짓게 된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래 단 한 번도 본선 무대에 빠지지 않은 한국이 10회 연속 출전에 성공할 경우 브라질(21회), 독일(16회), 이탈리아(14회), 아르헨티나(11회), 스페인(10회)에 이어 세계 여섯 번째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난 7월 최종예선 조 편성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한국은 상당히 어려운 조에 속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A조 6개 팀 중 한국만 동아시아 팀이었다. 천적 이란을 비롯한 상대국 모두 중동에 위치해 있어 원정 이동만으로도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유럽파들은 역시차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험난할 줄 알았던 중동 일색의 모래밭은 일정의 60%를 마친 현재 오히려 실크로드가 됐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으로 가는 과정과는 정반대다.

당시 한국은 홈에서조차 1골 차 신승을 반복했다. 이란 원정에서는 유효슈팅 0개를 기록하며 굴욕적으로 패배했다. 심지어 중국 원정경기에서도 패하며 긴 시간 유지한 공한증도 무너졌다. 결국 8차전 카타르 원정의 패배로 탈락 위기에 몰리자 슈틸리케 감독을 긴급 경질했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신태용 감독이 이란·우즈베키스탄과 간신히 비기며 본선행을 확정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 총 10경기에서 15점을 챙겼는데, 현재는 6경기 만에 벌써 14점을 기록 중이다.

9월 열린 1, 2차전만 해도 답답했던 벤투호의 경기력이 10월을 기점으로 반등했다. 23개월간 필드골 없이 침묵하던 주장 손흥민이 10월 시리아전·이란전에서 잇달아 골맛을 봤다. ‘몬스터’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수비진은 이란의 막강 공격진을 상대로도 탄탄한 모습을 보였다. 벤투 감독이 지속적인 믿음을 보냈던 두 미드필더 정우영과 황인범은 매 경기 중원을 장악했다. 11월 치른 두 경기는 결과와 내용 모두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경기를 지배하고, 의도된 빌드업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능동적 축구’가 완벽히 가동됐다.

대한축구협회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최종예선 일정은 원칙적으로 홈·원정을 번갈아 치른다. 중동세에 둘러싸인 한국은 이동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 불리한 조건이었다. 협회는 경기장 문제로 초반 홈경기 개최를 피하고 싶은 레바논과 조율해 9월 원정경기를 1월 홈경기와 맞바꿨다. 9월 두 경기를 홈에서 맞이한 벤투호는 한결 부담을 덜었다. 1승1무를 기록했지만, 결과적으로 무패 행진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10월 이란 원정 때는 전세기 운항으로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최소화했다. 비용만 4억원 넘게 들었지만 정몽규 회장의 결단 속에 비행과 환승, 입국 과정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을 최소화했고, 벤투호는 이란 원정에서 소중한 승점을 챙겼다.

벤투 감독의 시선은 벌써 본선을 향하고 있다. 이라크전을 마친 벤투 감독은 카타르 현지에 남아 내년 10월 열리는 월드컵에서 쓸 베이스캠프 후보지들을 답사했다. 현재 개최국 카타르를 포함해 13개국이 본선행을 결정지은 상황인데 한국도 9부 능선을 넘으며 재빨리 본선 준비 체제로 돌입한 것이다. 3개 후보지를 검토 중인데 벤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는 내년 1월27일 열리는 레바논전에 대비한 전지훈련을 베이스캠프 대상지에서 진행하며 예행연습까지 겸할 계획이다.

 

일본은 살얼음판 행보…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은 6연패

B조의 상황은 A조와 사뭇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한 무패 행진(5승1무)으로 독주 체제를 형성했지만, 2위를 둘러싼 일본(12점)과 호주(11점)의 경쟁이 치열하다. 홈에서 열린 최종예선 1차전에서 오만에 충격패를 당한 일본은 3차전에서도 사우디에 패하는 등 부진을 거듭했다. 모리야스 감독 경질론이 들끓었던 분위기는 최근 3연승으로 조금 가라앉았다. 초반 세 경기에서 1승2패를 기록한 일본은 호주·베트남·오만에 모두 신승을 거뒀다. 특히 11월 치른 베트남·오만과의 원정 2연전에서는 1대0으로 승리했지만 경기 막판까지 마음을 졸일 정도로 어려운 경기를 했다.

호주가 11월 두 경기에서 2무에 그친 덕에 일본이 조 2위를 탈환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2월1일 사우디와의 홈경기, 3월24일 호주와의 원정경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경기에서 패할 경우 일본은 다시 3위 이하로 추락하게 된다. 모리야스 감독은 경질 위기를 넘겼지만, 부진한 내용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선수 기용 문제로 여전히 질타를 받으며 살얼음 위를 걷는 중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6연패를 기록하며 승점 1점도 챙기지 못했다. 본선으로 가기 위한 경쟁은 사실상 끝난 상태. 하지만 오히려 최종예선을 통해 베트남은 현실을 인식했다는 반응이다. 또 한 번의 박항서 매직을 기대했지만, 아직은 최종예선 진출에 만족해야 하는 현격한 기량차를 절감했다. 베트남축구협회도 최종예선 부진의 책임을 묻기보다 박 감독에 대한 신뢰를 택했다. 2023년 1월까지 계약을 이미 연장했다. 박 감독은 “원정에서 4골을 넣고 팽팽한 승부를 했는데 오히려 홈에서는 골이 없다. 남은 4경기에서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약속했다.

브라질·잉글랜드 출신 귀화 선수를 6명이나 동원해 20년 만의 월드컵 본선행을 꿈꿨던 중국의 현실도 비참하다. 1승2무3패, 승점 5점에 그치고 있다. 베트남을 상대로 후반 추가 시간 터진 우레이의 결승골로 간신히 잡은 3대2 승리가 유일한 승점 3점 경기였다. 일부 귀화 선수는 최근 중국 슈퍼리그의 재정난으로 거액의 연봉 지급이 밀리자 브라질로 돌아가기로 해 중국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돈으로 월드컵 본선행을 살 수 없다는 진리만 깨닫는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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