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다시 떠오르는 ‘AI 공포’…‘천수답’식 방역 언제까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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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발생 전남 나주 세지면 오리사육 농장 가보니
전남서 일주일새 3곳 번져…5년 전 악몽 재현하나

“자식같이 애써 키운 오리를 땅에 묻을 수 없다.”

전남 나주는 전국 최대 육계와 육용오리 집산지다. 국내 굴지 육가공업체의 수직계열 사육농가가 가장 많다. 현재 103농가에서 닭과 오리 459만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최대 사육시 1200만 마리까지 달한다.

11월 18일 오전 11시 30분쯤, 전남 나주시 세지면 송제마을 한 육종오리 사육농가 인근. 마을 끝자락 외진 곳에 위치한 탓인지 인적이 끊겨 적막이 감돌았다. 간혹 비행장 격납고 같은 생김새의 축사를 뚫고 “꽥꽥!”하는 오리 울음이 새어 나왔다. 

점차 이 농장 입구에 이르자 긴장감이 팽배했다. 이날 아침,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의심환축(의심사례)이 나오면서다. 고병원성 여부는 농림축산검역본부 정밀검사를 거쳐 1∼3일 후 나올 예정이다. 해당 농가 100여 미터 전방에서는 청색 방제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방역당국 직원들이 ‘방역상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했다. 바리케이트를 먼 발치에 두고 농장 턱 밑에서 서너명의 방역당국 직원들이 이날 오후 늦게부터 실시될 예방적 살처분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11월 18일 오전 11시 30분, 전남 나주시 세지면 송제마을 한 육종오리 사육농가.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탓인지 인적이 드물어 적막이 감돌았다. 간혹 비행장 격납고 같은 축사를 뚫고 “꽥꽥!”하는 오리 울음이 새어 나왔다. ⓒ시사저널 정성환
11월 18일 오전 11시 30분쯤, 전남 나주시 세지면 송제마을 한 육종오리 사육농가.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탓인지 인적이 드물어 적막이 감돌았다. 간혹 비행장 격납고 같은 축사를 뚫고 “꽥꽥!”하는 오리 울음이 새어 나왔다. 이 농장에서 이날 아침,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의심 사례가 나왔다. ⓒ시사저널 정성환 

축산당국 AI ‘비상’…빠른 전파속도에 ‘긴장’

축산당국은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해 이 농장의 종오리 3만1000마리를 고병원성 여부와 관계없이 72시간 내에 예방적 살처분할 방침이다. 나주시 축산과 관계자는 “농장주가 자식같이 애써 키운 오리를 차마 땅에 묻을 수 없다면서 재검사를 요구해 살처분이 늦어지고 있다”며 농가의 애타는 심정을 전했다.

애가 타기는 전남도와 일선 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불과 일주일 만에 3곳으로 바이러스가 퍼진 형국이기 때문이다. 전남 도내 고병원성 AI는 지난 11일, 나주 세지면 교산리 육용오리 농장에서 처음 발견됐고, 3만7000마리가 살처분됐다. 엿새 뒤 강진군 신전면 종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심환축이 발생했다. 하루 뒤에는 나주 세지면 송제마을에서 또 의심 사례가 나왔다. 

역대 최악의 AI 피해가 났던 2016년을 떠오르게 하는 속도다. 이 때문에 5년 전 최악의 피해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해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40일 만에 국내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의 15.8%인 2600만 마리가 땅에 묻혔다. 당시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AI 바이러스 유형은 ‘H8N6’였다. 이 유형은 전파 속도가 빠르고, 폐사율도 매우 높았다. 다행히 올해 바이러스 유형은 ‘H8N1’로 폐사까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오리는 감염돼도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방역당국은 긴급 차단 방역에 나서는 등 비상이 걸렸다. 박창기 나주시 축산과장은 “폐사율은 H8N6보다 낮지만, 전파 속도는 훨씬 빠른 것 같다”며 “닭의 경우는 폐사율이 높고 다른 닭으로 쉽게 전파되는 경향이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육계와 오리 사육농가도 AI 확산 공포에 불안감과 초조함을 내비치고 있다. 나주시 봉황면의 오리 사육농장주 김아무개(58)씨는 “수년 전 닭과 오리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한 기억이 아물기도 전에 또 AI가 발생해 농가가 불안에 떨고 있다”며 “정성을 쏟은 농사를 한순간에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농가들은 상당히 예민한 상태”라고 했다. 

18일 오전, 전남 나주시 세지면 송제마을 한 육종오리 사육농가에서 의심 사례가 신고되자 청색 방제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방역당국 직원들이 ‘방역상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농장 진입 농로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8일 오전, 전남 나주시 세지면 송제마을 한 육종오리 사육농가에서 의심 사례가 신고되자 청색 방제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방역당국 직원들이 ‘방역상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농장 진입 농로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원인은 오리무중…‘수평 전파’ vs ‘철새’

문제는 AI 바이러스 유입경로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축산당국은 일단 이번 AI 발병 원인을 두고 야생조류 분변이 해당 농장으로 우연히 유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AI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력한 용의자로 대부분 ‘월동 철새’가 지목돼 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이번 송제리 해당 농가는 앞서 11일 AI가 발생한 육용오리 농가와 1.3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더욱이 강진군 신전면 종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이 발생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두 곳 모두 동일 D육가공업체의 수직계열 사육농가다. 같은 육가공업체의 수직계열 입식농가에서 잇따라 AI 의심 사례가 발견되면서 사료 운송 차량 등에 의해 방역망이 뚫린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낳고 있다.

나주의 경우 현재 3개의 대형 육가공업체가 각각 20~50호 농가에 병아리를 위탁 사육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차량이 사료 등을 공급하기 위해 수십호에 달하는 계열 농가에 출입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 또한 가설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AI의 발병 원인은 구체적인 역학조사가 끝나봐야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충북 음성 등 외부에서 발생한 AI가 전남으로부터 전파된 건지 현지에서 자연 발생한 것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처럼 AI바이러스 유입 경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어 앞으로 예방과 방역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나주시 세지면 AI 예방적 살처분 현장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지난해 12월, 나주시 세지면 AI 예방적 살처분 현장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식’ 대책 

의심축이 신고되면 방역당국과 해당 지자체는 대책반을 가동하고 방역대를 설치하고 해당 농장의 가금류 살처분과 예방 차원에서 영향권의 닭·오리를 추가 살처분하는 대책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전남도와 나주시 등은 AI가 신고되거나 확진 판명을 받을 때마다 내놓는 보도자료 말미에 철새가 도래하는 동절기 AI 위험시기를 맞아 가금농가에서는 소독 등 방역조치를 철저히 하고 의심증상 발견시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말 그대로 동절기 AI 위험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천수답식 대책’인 셈이다. 

나주 주민 이 아무개씨는 “AI사태는 수년째 되풀이되는 우리 방역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줬다”며 “고흥에서 나로호가 발사되고 수소가 휘발유를 대신하는 수소시대가 열렸지만 아직도 방역·질병관리 업무는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같이 자연과 사육농가에만 기대는 수준이어서 답답함이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AI 발생 경로와 AI 사태가 왜 매년 반복되는지에 명확한 규명이 없어 살처분→방역 등 ‘천수답식’ 대책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AI발생지역 지자체들은 해당 농장의 가금류 살처분과 예방 차원에서 영향권의 닭·오리를 추가 살처분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는 또 다른 부작용으로도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 발생한 AI ‘경계지역(10km 이내)’ 양계농가의 경우 입식을 놓고 계약업체가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농가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는 AI의 발병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 따른 육가공 업체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주 한 축산 농민은 “회사로부터 위탁 받아 오리를 키우고 있는데, 고병원성 AI 판명나거나 살처분 당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보상금이 감액되는데다 최소 4~5개월 오리를 사육할 수 없어 앞날의 생계가 막막해진다”며 “축산 농가의 피해를 감안해 정부에서 최선의 대책을 세워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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