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캘리포니아에 세워진 한국전 기념비
  • 미국 LA = 김재현 시사저널 미주판 편집국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8 15:3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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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 
미군 전사자 3만6591명 이름 일일이 새겨

자유와 평화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역사는 이를 위해 인류가 지급해야만 했던 엄청난 대가를 기록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71년 전 미국의 청년들은 포연에 휩싸인 한반도로 달려갔다.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번영은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인 지난 11월11일, 캘리포니아주 플러튼시에 있는 힐크레스트 공원에서 한국전 기념비(Korean War Memorial) 제막식이 열렸다.

한국전 참전 기념비 제막식 모습ⓒLA총영사관
11월11일 한국전 기념비 표지석에 선 행사 관계자들(캘리포니아주 플러턴시 힐크레스트 공원)ⓒLA총영사관

바이든 대통령 “전사한 영웅들에게 빚져”

오렌지카운티 한국전 기념비는 단면이 별 모양인 기둥 5개로 이루어졌다. 기념비의 50개 면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591명의 이름을 출신 주별로 구분해 알파벳 순으로 새겨 넣었다. 모든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념비 앞에는 ‘Korean War Memorial’이라는 문구 아래 미 육군과 해병대, 해군, 공군, 해안경비대 문장이 새겨진 대형 표지석을 세웠다. 이 표지석 뒷면에는 기념비 건립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모두 178만 명이다. 이 가운데 4만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는다. 지난 3월 ‘6·25의 예수’로 알려진 군종장교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확인되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렇게 유해로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610명이며, 여전히 7546명은 실종 상태로 남아있다. 이 가운데 5300여 명은 북한 지역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모든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여전히 숙제다.

500여 명이 참석한 제막식 행사에는 기념비 건립 관계자들과 한국과 미국의 군 관계자, 정치인, 한인 동포 외에도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 생존자와 기념비에 이름을 새긴 전사자 가족들도 함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미 정계의 주요 인사들은 기념비 준공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문 대통령은 박경재 LA 총영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이 기념비에 담긴 영웅 한 명 한 명의 숭고한 용기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기념비 건립을 위해 수고한 고(故) 김진오 오렌지카운티 한인회장, 노명수 한국전기념비건립위원회 회장, 이건수 한미동맹재단 명예이사장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뿌리가 되어 한·미 동맹은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동맹으로 발전했고, 오늘 또 하나의 이정표를 굳건히 세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건립위원회 행사준비위원장을 맡은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이 대독한 기념사에서 “우리나라(미국)는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영웅들에게 영원한 빚을 졌다”며 “이 빚을 완전히 갚을 수 없지만, 이 기념비는 헌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친 그들을 기리는 것을 절대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과 정승조 한미동맹재단 회장(전 합참의장)은 연설 말미에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라고 서로 화답하며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LA총영사관
ⓒLA총영사관

김진오·노명수·이건수씨 등이 건립에 헌신

오렌지카운티 한국전 기념비 건립은 남가주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2011년 4월 김진오 회장을 중심으로 건립위원회가 창립되고, 기념비를 완공하기까지 10년 조금 넘게 걸렸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2016년 기념비 건립을 처음 주도한 김진오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은 건립위원회에서는 사업을 포기하고 해산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전사자들을 위로하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김 회장의 유지를 이어가야 한다는 노명수 전 오렌지카운티 한인회장의 집념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건립위원회는 2019년 11월에야 플러튼 시의회로부터 힐크레스트 공원에 한국전 기념비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만장일치로 승인받았다.

장소를 확보하고도 여전히 건립 자금이 문제였다. 한국 정부로부터 초기 사업 예산 72만 달러의 30%에 상당하는 23만7000달러와 행사비 일부를 지원받았지만, 나머지는 미국과 한국에서 뜻있는 분들의 후원으로 채워야 했다. 기념비 공사에 들어간 지난해 8월부터 기금 모금이 급물살을 탔다. 박경재 LA 총영사는 기부자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면서 노명수 회장과 함께 모금운동을 활기차게 전개해 400명이 넘는 한인 동포와 주요 인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현재 사업 결산을 앞두고 건립위원회에서는 기념비 건립에 약 120만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석희 행사준비위원장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기념비 건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한미동맹재단 이건수 명예이사장은 건립기금으로 5만 달러를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한·미 베테랑을 대표하는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과 한미동맹재단 회장인 정승조 전 합참의장을 이번 행사 기조연설자로 세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오렌지카운티 한국전 기념비가 완공되었다. 노명수 회장은 “한국전 기념비가 완공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분께 너무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최선을 다해 한국전 기념비를 관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렌지카운티 한국전 기념비는 한·미 동맹의 역사적인 상징물로 과거를 조명함과 동시에 한국전쟁을 알지 못하는 미래 세대에게 한·미 동맹의 의미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미군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이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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