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여, 슈트의 무게를 견뎌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8 11: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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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이웃의 귀환…핵심은 멀티버스 세계관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돌아왔다. 신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은 ‘스파이더맨 3기’ 배우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으로 출연하는 세 번째 단독 영화다. 평범한 이웃이자 발랄한 청소년으로서의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스파이더맨 캐릭터는 최근 몇 년 사이 《어벤져스》 시리즈 등을 통해 아이언맨과 유사 부자 관계를 형성하며 MCU 내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직전 작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에서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영웅의 가면을 쓴 악당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에 의해 정체가 폭로된 상황. 《노 웨이 홈》은 바로 그 시점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 방식과 재미가 심상치 않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소니픽처스코리아
ⓒ소니픽처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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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스파이더맨이기에 가능한 것들

스파이더맨만큼 복잡한 역사를 가진 히어로는 없다. 같은 캐릭터를 서로 다른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한 예도 없다. 영화적 태생 때문이다. 시작은 소니 픽처스에서 선보인 샘 레이미 감독,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1~3(2002~07)이다. 큰 성공을 거둔 3부작 이후 감독과 출연진을 교체하는 리부트로 새로운 스파이더맨 시리즈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2(2012~14)도 탄생했다. 마크 웹 연출, 앤드루 가필드 주연의 이 리부트는 애초에 3부작을 염두에 뒀으나 흥행 실패로 3편 제작이 취소된 비운의 시리즈이기도 하다.

문제는 MCU의 등장이다. 마블 코믹스 원작이 탄생시킨 여러 히어로 이야기 가운데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을 소니 픽처스에서 선점한 까닭에, 애초에 스파이더맨 캐릭터는 마블 영화에 출연하지 못할 운명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어벤져스》 시리즈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극적인 타협점이 도출된다. 마블 스튜디오와 소니 픽처스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 등장한 톰 홀랜드 버전의 스파이더맨은 작지만 알찬 출연 분량으로 극의 활기를 책임졌고, 팬들은 소니의 세계를 벗어나 MCU에도 발을 걸친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등장에 환호했다.

이어 등장한 스파이더맨의 새로운 시작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은 청소년 히어로를 독자적 개성으로 내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피터 파커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스타크 인턴십’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며 MCU와의 연결을 공고히 한 것이다. 이는 마블과 소니 간 협상 테이블의 ‘윈윈’이었다. 흥행의 맛을 본 이후 두 회사의 이른바 ‘피터 파커 공동 양육’ 시스템은 한층 견고해진다. 스파이더맨은 이제 소니 픽처스의 배급망을 타고도 MCU의 세계관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 MCU라는 풍성한 모험의 장 안에서,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천방지축 10대 소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과 무게를 깨달아가는 영웅으로 성장 중이다.

《노 웨이 홈》에서는 그 속도가 한층 가속화된다. 정체가 밝혀진 후 피터는 모두의 표적이 된다. 세상을 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동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그를 비난받아 마땅한 살인자로 몰아간다. 여자친구 MJ(젠데이아)와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의 안전과 일상까지 위협받자, 피터는 어벤져스 멤버로 함께 싸웠던 동료이자 전능한 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아가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잊게 만드는 주문을 걸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주문이 꼬여버린 것이 화근. 잘못된 주문은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차원의 모든 인물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번 영화의 핵심은 MCU의 네 번째 장의 핵심이기도 한 멀티버스 세계관이다. 쉽게 말해 각기 다른 차원의 평행우주다. 현재의 차원 속에 내가 있고, 다른 차원에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노 웨이 홈》은 바로 이 개념을 이용해 스파이더맨 시리즈 전체 20년 세월의 합산이라는 놀라운 과업을 이뤄낸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한 장면ⓒ소니픽처스코리아

멀티버스라는 감동적 마법

예고편에 등장했던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의 출연은 시작일 뿐이다. 이 캐릭터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2004)의 상징적 악당이다. 멀티버스 개념을 이용하면, 다른 차원의 악당이던 그가 지금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노 웨이 홈》은 기존 소니 픽처스에서 활약했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인상적 악당들을 소환한다. 2002년 버전의 노먼 오스본, 그러니까 그린 고블린(윌렘 대포)과 2007년 버전의 샌드맨(토마스 헤이든 처치), 심지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악당이었던 ‘도마뱀’ 리자드(리스 이판)와 일렉트로(제이미 폭스)까지 차원의 문을 넘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멀티버스의 개념대로라면 평행우주 안에 스파이더맨 역시 여러 명 존재한다는 얘기가 된다. 말 그대로다. 제작 당시부터 파다하게 돌던 소문대로 1대, 2대, 3대 스파이더맨이 한자리에 모여 ‘팀 스파이더맨’으로 활약하는 진풍경이 이번 영화에서 펼쳐진다. 팬들과의 아쉬운 작별로 시리즈를 떠났던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루 가필드가 다시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새로운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와 함께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들 각자가 시리즈에서 안고 있던 개인적 사연까지 뭉클하게 재연하며 ‘선배 스파이더맨’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또한 세 명의 피터 파커 등장은 그들 캐릭터 자체를 한층 더 온전하고 입체적으로 탐구하게 만든다.

절대적 악당 하나를 상대하는 대신 차원을 넘어온 악당들을 ‘치료’한다는 개념 역시 새롭다. 기존 악당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혹독한 결말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이상주의적 방향을 제시한다. 스파이더맨이 특유의 선한 성정으로 과대망상에 젖은 캐릭터들의 뿌리를 이해하고 구원하는 시도를 감행한다는 아이디어다. 스파이더맨이 유전자 거미로 탄생한 영웅이듯, 이들도 우연히 얻게 된 힘이 잘못 적용되는 바람에 악당이 됐을 뿐이다. 하지만 선한 의도는 누구에게나 같은 결과로 가닿지 않고, 스파이더맨은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영웅의 중력 법칙을 한층 더 무겁게 느껴야 한다.

정리해야 할 것과 캐릭터 자체가 많기에 구성이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희생을 감수하며 돌아갈 곳을 스스로 놓는 선택(노 웨이 홈)을 내리는 파커의 결연한 성장만으로 영화는 다음 스텝을 기대하게 한다. 기존의 모든 세계관을 통합하고 예우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결말. 이보다 더한 팬서비스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슈퍼히어로의 세계는 여전히 끝을 모른 채 진화하고 있다.

스파이더맨의 ‘넥스트 레벨’은?

멀티버스의 개념을 한번 열어젖힌 이상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평행세계와 다양한 스파이더맨의 상황을 보여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와의 통합도 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최초의 슈퍼히어로 영화도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기존 시리즈와 달리,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3부작에서 멈추지 않을 예정이라는 점도 기대를 부추긴다. 이미 새롭게 다음 3부작 추가 제작이 확정된 상태다. 소니와 마블의 합작 역시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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